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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인선 문제를 놓고 한때 극한 위기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던 당·청간 갈등이 사행성 성인게임인 ‘바다이야기’ 등의 파문을 둘러싼 책임문제와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를 놓고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르면 연말쯤 본격적인 정계개편 움직임이 예고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이같은 당·청간 갈등 재연 조짐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당·청간 갈등 기류는 우선 사립학교법 재개정 여부를 놓고 열린우리당이 민생·개혁 입법 처리를 위해 전향적으로 사학법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본격화될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열린당은 24일 밤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 ‘사학법은 재개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23일 밤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청 4인 회동에서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나라당에 사학법 처리를 양보해서라도 민생·개혁법안 처리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당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정부 후반기의 주요과제인 사법·국방개혁 입법과 민생 법안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당에 정치력 발휘를 주문한, 사실상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 대한 당의 양보를 요청한 것이지만 당이 이를 거절하면서 또다시 당·청간 이견이 노정되고 있는 셈이다.
이와 함께 ‘바다이야기’ 파문을 둘러싼 책임문제를 놓고서도 당․청간에 이견이 심각하다. 열린당은 민심 이반을 우려해 ‘명백한 국정 실패’로 규정하면서 정부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 청와대는 우선 책임소재를 가리는 ‘선(先) 조사 후(後) 사과’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 입장에선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는 것도 모자라, ‘바다이야기’ 의혹을 둘러싼 여권 인사 연루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파문 확산을 우려한 조기 대응을 강조한 것이지만, 청와대 입장과는 분명한 차이를 내보였다는 점에서 이 문제가 당·청간 갈등의 촉매가 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실제로 당 일각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게이트는 없다고 하지만 만에 하나 불똥이 튀는 날에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는 등의 말도 나오면서 위기상황 대처 방식을 놓고 당·청간의 이견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분위기는 25일 열린당 확대간부회의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김근태 의장은 이날도 "우선 정책방향을 잘못 설정하고 상황관리를 잘못한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시급히 국민에게 머리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장은 또 한명숙 국무총리가 지난 22일 문화관광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사과성 발언'을 이미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리가 다시 한번 분명하게 대국민 사과를 하는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압박했다.
또 김한길 원내대표는 "문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경우처럼 정부 부처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대단히 추한 모습"이라며 질타하고 "정부 당국이 분명하게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은 지난 23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도 ‘발본색원(拔本塞源)’ ‘파사현정(破邪顯正)’ 등의 표현을 써가면서까지 “이미 당리와 당략을 떠난 사안이고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라면서 강경한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김 원내대표도 “정부는 정책실패의 심각성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도박성 게임이 방방곡곡에 퍼져서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가게 만든 정책실패에 대해서 정부는 공식적으로 정중하게 대국민 사과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서민피해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책임도 무겁다”고 한 바 있다.당·청간 이같은 갈등 재점화 조짐에 대해 당내 한 친노 의원은 “의원들이 너무 노 대통령의 심중을 모르는 것 같다. 정말 고생을 모르고 하는 소리들”이라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당내 반발 기류에 불편한 심경을 피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