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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7일자 오피닌언면 '오후여담'란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칼로 베이는 것보다 칼집으로 맞는 것이 더 아프다. ‘칼과 칼집론’. 정권은 임기 절반을 넘어 U턴을 하게 되면 권력이라는 칼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말기에 접어든 어느날, 칼 자체가 칼집에서 빠져나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어 버리고 마침내 빈 칼집만 남아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 초조해지고 신경질적이 된다. 권력은 아편이라고 했다. 서슬퍼렇게 휘둘렀던 ‘칼의 추억’을 잊지 못해 빈 칼집이라도 휘두르면서 칼집에 칼이 있는 것처럼 허장성세를 부린다. 김대중 정권이 비판 언론을 겨냥해 세무조사를 벌인 것도 초반이 아닌 중반 이후였다.
권력이라는 칼이 칼집에 얼마나 남아 있는가는 대통령의 국민 지지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통상 대통령 지지도가 40%대인 경우를 ‘안정권’, 30%대를 ‘경계수위’, 20%대를 ‘위험수위’라고 한다. 20%이하이면 칼이 칼집에서 거의 빠져나간 것이다. 그 이하이면 권력을 내놓아야 할 상황이고.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지지도가 30%대로 밀리기 시작하는 정권 말기가 가까워지면 측근들을 전진배치하는 ‘코드인사’를 밀어붙였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기에.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는 달리 정권 초반부터 ‘코드인사’로 일관하고 있다. 지지도가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민심과 정면대결을 벌이며 코드인사로 밀어붙이고, 그러면 지지도가 더 떨어져 칼이 칼집에서 더 멀리 빠져나오는 악순환. 청와대 실세가 인사횡포에 저항하는 유진룡 전 문화관광부 차관에게 “배째라는 거죠. 배째 드리지요”라고 했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칼과 칼집도 구분 못하는 아마추어들의 권력남용. 임기 내내 그렇게 휘둘렀는데도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에나 겪었던 지지도 급락이라는 정권말기 현상이 초반부터 왜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이. 마침내 집권 3년반 만에 3부 요직 등 권부(權府)에 대한 완벽한 코드인사의 실현. 청와대는 물론, 국회의장·대법원장·검찰총장·국방장관·행정자치장관과 수많은 국가 요직들…. 헌법재판관들을 코드인사한 것도 모자라 16일엔 헌재 소장까지 사법시험 동기로 지명했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하루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통합’의 필요성을 국민에게 훈계하지 않았던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