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시원하다!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를 몰래 빠져나온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삼엄한 취재진들의 감시를 피해 서울 교외의 한적한 낚시터로 낚시하러 나온 것이다. 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가기 전 심심할 때면 언제나 나와서 낚시를 즐기던 곳이었다.

    대통령은 낚시터 주변에 도착해 승용차에서 내렸다. 별 놈의 찌라시들이 알면 또 거품을 물겠지만 대통령은 리무진 대신 청와대 비서관의 일반 승용차를 타고 낚시터에 나타났다. 리무진을 타고 돌아다니면 대통령의 행차인 것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은 독일제 고급 선글라스를 쓰고 얼마 전 장만한 최고급 낚시대를 둘러메고 낚시터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갔다. 대통령은 안면이 있는 낚시터 관리인을 만나 인사라도 하려고 낚시터 관리소로 들어갔는데 뜻밖에도 엉뚱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예.’

    낚시터 관리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자가 얼른 인사를 받았다.

    ‘그런데 예전에 계시던 분은 안 계십니까?’

    대통령이 물었다.

    ‘그만 두신지 오래 되셨습죠.’

    ‘예….’

    대통령은 자주 만났던 지인이 없자 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 분 돌아가셨습니다.’

    ‘예?’

    ‘돌아가셨다구요.’

    ‘왜요?’

    ‘…’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대통령은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면서도 사내의 말을 기다렸다.

    ‘손님, 별로 안 좋은 이야깁니다.’

    사내가 말 끝을 흐렸다.

    ‘괜찮습니다. 가까이 지내던 분인데….’

    ‘그 분 아들 내외가 사업 실패로 자살을 했지요. 그 이후에 그 분도 시름시름 앓다가 화병으로 돌아가셨답니다 그려….’

    ‘예?’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그게 얼마 안 되었지요. 바로 작년의 일입니다.’

    대통령은 가슴이 쓰라렸다. 가까운 지인의 불행에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궁궐같은 청와대에 앉아 지인의 죽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대통령은 사내에게 더 말을 거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지인의 죽음도 안타까웠지만 어렵사리 청와대를 나왔는데 무거운 기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사람들이 모여 낚시를 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말 저녁이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낚시터에는 제법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대통령은 낚시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기 위해 기다렸다.

    ‘처음 온 분이오?’

    대통령 옆자리에 앉은 낚시꾼이 대통령에게 말을 걸었다. 대통령 옆에 앉은 경호실장이 낚시꾼을 예리한 눈길로 쳐다 보았다. 경호실장은 대통령 곁에 앉은 낚시꾼을 살펴보고 난 뒤 주변을 다시 둘러 보았다. 지금 대통령 곁에는 경호실장 뿐이다. 그 외에 경호원 두 명이 낚시터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경호원 두 명까지 대통령 곁에 있으면 대통령이 자유롭게 곁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는 데 방해된다고 하여 경호원을 멀리 떼어놓은 것이다.

    꼴통 찌라시들이 알면 특종감이야….

    경호실장은 쓴 입맛을 다셨다. 청와대에서 답답한 일상을 보내는 대통령의 고충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으나 한사코 낚시터로 나오겠다는 대통령의 고집을 뜯어말리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다. 일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경호원 두 명과 경호실장만 대동하고 이렇게 나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그야말로 같이 늙어가는 처지로 쓸쓸한 대통령이 너무 딱하여 낚시터로 나오긴 했으나 후회막급이었다. 대통령의 인상이나 음성이 너무 알려져 있어서 누군가 대통령을 알아보고는 보수신문 지역주재기자에게 전화라도 하는 날에는 상당히 문제가 생길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걱정이 없었다. 경호실장은 이따금 대통령이 무모할만큼 용감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완전히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던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 왔다. 경호실장은 아무래도 대통령은 하늘이 돕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원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대통령 자리에 앉을 여건이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운명의 힘인지 몰라도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장년의 별볼일 없는 정치인을 한국의 대통령으로 바꿔놓았다.

    힘.

    그러나 경호실장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대통령을 만들고 지탱해 준 그 힘이 최근 우르르 빠져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던 대통령의 눈매가 차츰 힘을 잃어간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통령의 어깨는 매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대통령은 요즘 그 어떤 때보다 긴장하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치밀하게 계산을 하고 전략을 짜고 있다. 대통령에게는 또 다른 정치적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창출하지 못하면 아마 야당의 엄청난 정치보복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이런 대통령은 그 혹독한 긴장을 이기지 못해 경호실장에게 어린애처럼 낚시터로 가자고 조른 것이리라. 그 속마음을 알고 있는 경호실장은 떼 쓰는 대통령을 냉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다. 경호실장의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타고 낚시터로 나오는 길의 대통령은 그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 보였다.

    이 양반이 임기 마치고 서도 낚시나 제대로 하러 돌아 다닐 수 있어야 할텐데….

    경호실장은 대통령의 옆모습을 쳐다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한편 대통령은 옆에 앉은 사람과의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마치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던 사람처럼.

    ‘한동안 못 왔었지요.’

    대통령은 처음 왔냐는 옆 사람의 질문에 답했다.

    ‘많이 바빴나 보구료.’

    ‘예. 맞습니다 맞구요.’

    ‘허허허허허.’

    옆자리에 앉은 낚시꾼이 웃었다.

    ‘어이고, 장년의 나이에 바쁘니 부럽소.’

    ‘아니 일 많은 것이 뭐가 부럽습니까?’

    ‘허허허.’

    낚시꾼은 또 웃었다.

    ‘일 많을 때가 좋은 거외다. 쉬지 않고 휴대폰 삐리리 삐리리 울려댈 때가 좋은 것이고….’

    ‘무슨 말씀이신지….’

    ‘일이 많아야 주변의 사람들이 관심도 가져주고 할 거 아니오. 한마디로 사람은 바빠야 한다는 이야기지.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고, 집안이 허어어어저어어언해야 되는 거 아니오. 그런데 내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고…이런 형국이 되면 외롭기 짝이 없쇠다.’

    낚시꾼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 끝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대통령은 그때 문득 자신의 모습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