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갑자기 없어진다면?

    이 나라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나하고 원수 진 놈의 수구꼴통 찌라시 녀석들은 지네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만세 부르고 별 놈의 지랄을 다 하겠지?

    대통령은 갑자기 입맛이 씁쓸해졌다. 그래도 대통령은 즐거운 목소리로 옆자리의 낚시꾼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요즘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허허. 모르시는 말씀. 이보오오오. 여기 지금 낚시하는 사람들 가운데 바쁜 사람이 있어 보이오. 다들 시간 죽이러 여기 와 있는 거야.’

    ‘…’

    ‘그래도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낚시하러 나와 있으니 안락한 것이오. 직장없어 매일 등산으로 소일하는 이들도 많아요….’

    ‘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대통령은 조용히 말을 받았다. 대통령은 또 다시 아픈 곳을 찔렸다. 꼴통찌라시들이 그리도 짖어대는 경제문제, 꼴통찌라시들이나 강남의 어느 고급 아파트에서 번듯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교수 패거리, 별 놈의 보수입네 하는 정치 패거리들이 부자 노릇 못 해 먹겠다고 지껄여 댈 때는 기득권 패거리들이 개혁의 쓴맛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서민들이 이야기할 때는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대통령 스스로도 가슴이 갑갑했다.

    내가 이러자고 대통령이 되었던가.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고 7% 경제성장을 이루겠노라고 단언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부패와 반칙의 사회를 바로잡겠노라고 단언하던 자신이 그 위에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은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던가. 대통령은 다시금 가슴이 아파왔다.

    ‘저어어어쪽에 앉은 박 씨는 조그만 건설업하던 양반인데…몇 년전부터 경기가 개판이어서 다 들어엎고 마누라 눈치피해 여기서 낚시로 소일하는 중이오. 그리고 저어어어기 빨간 모자 쓴 양반은 오 씨란 사람인데 어디 조그만 직장 다니다 권고사직으로 밀려나고 마누라도 도망 가 버렸소. 그래서 늘 여기서 소일하지. 내 아마 여기서 죽치고 있는 양반들 사연 일일이 소설로 쓰면 아마 이무녈인가 이문용인가 하는 양반 이상으로 출세할 거요.’

    ‘아….’

    ‘뭐 나도 저 양반들하고 비슷한 개털이외다. 그래도 아들 딸 자식 다 키워 밥벌이는 하니 그냥 그냥 살고는 있소. 몇 푼 모아 둔 돈도 있고. 마누라가 골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밥이라도 해주니 그거 먹고 살고 있소. 내 소일거리는 이거요. 낚시터 앉아서 세월이나 낚는 거. 젠장 염병할 놈의 텔레비 좀 볼려고 해도 별 놈의 젊은 자식들만 나와서 지랄을 해대는 통에 내가 볼 게 없어. 그 놈의 정 뭐라는 케베스 사장 놈 자식은 염병할 놈의 방송만 해대고 별 놈의 시청료는 그리 톡톡 떼 가는지…이 놈의 개털 백성은 이제 텔레비도 못 봐주겠소.’

    ‘예….’

    젊은 녀석들만 나와 염병을 해댄다? 그렇다. 그 말이 옳긴 하다. 그러고 보니 낚시터에 앉은 사람들이 거의 모두 늙수그레한 사람들이다. 적어도 50세가 넘은 중늙은이들인 것이다. 세상이 다 뒤집어지고 으쌰으쌰 팔뚝질하던 세대가 사회의 실세로 대두되고 난 뒤로 기성세대들이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다. 대통령도 그 점을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새로운 세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기성세대들은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젊은이들이 나와서 개혁을 하니 보기 좋지 않습니까?’

    ‘개애애애애혀어어억?’

    옆자리 낚시꾼이 눈을 크게 떴다.

    ‘이보쇼. 어디가서 그런 소리하지 마슈. 맞아죽소. 아가리에 풀칠할 것도 없는 판에 무슨 놈의 개혁인지 개가죽인지….’

    ‘아니 그래도 사람이 돈만 갖고 사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동안 개혁이 진척되어 많은 좋은 결과가 있었지 않습니까? 권위주의 문화도 많이 사라졌고, 대선자금 같은 고질적 부패도 손을 봤고….’

    ‘이 양반…혹시 사위나 아들이 좋은 데 다니는 갑네. 이보쇼. 권위고 개혁이고 아가리에 풀칠할 것이 없는데 그게 다 뭔 소용이오. 그저 우리같은 개털들은 매일매일 그저 아가리 목구녕에 삼겹살 기름칠을 해줘야 사는 맛이 나는 거 아니오. 이런데 동네 정육점에 좀 가보쇼. 삼겹살이 금겹살이라 우리들 개털들은 마음대로 먹지도 못하오. 그 놈의 개혁인지 개판인지…그 놈의 것은 젊은 놈들이 난리 지랄을 해대니 당연히 세상 가는대로 당연히 되었을 것이고. 문제는 이 노오오무우우현이가 온 백성을 개털로 만들어 놨다는 거요.’

    대통령 곁에서 묵묵히 말을 듣고 있던 경호실장이 낚싯대를 꽉 움켜쥐었다. 일이 안 좋은 방향으로 진행되면 대통령을 강제로라도 끌고 청와대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대통령에게 민심이 흉흉하다고 몇 번을 강조했는데 대통령이 또 엉뚱한 토론을 벌이려 하는 모양이었다.

    ‘노무현이가 온 백성을 개털로 만들었다구요?’

    대통령이 차분하게 물었다.

    ‘그렇소. 내가 어디 틀린 말 했소? 잡아 갈테면 잡아가 보시오!’

    대통령은 또 다시 가슴이 저렸다.

    ‘차차 잘 될 겁니다.’

    대통령은 아주 조용히 말했다.

    ‘나 죽고 난 다음에 잘 되면 뭘 하오.’

    낚시꾼이 냉소적으로 말을 받았다. 침울해진 대통령은 입을 닫았다.

    ‘이보오. 아직 댁은 노무현이 지지하는 모양인데…우리 서로 솔직해 집시다. 나도 실은 아들 놈, 딸년이 하도오오오 노오무현이 찍어달라고 난리 지랄을 해대는 통에 그 놈 찍었소. 솔직히 나도 노무현이가 좋았쇠다. 그 놈의 이회창이 놈은 생전 고생도 안 해본 뺀들거리는 얼굴을 허고…그 놈의 쌀쌀 맞아 보이는 인상 때문에 영 정이 안 가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에라 모르겠다. 자식 놈 이기는 부모가 어딨냐하고는 노무현이한테 옛다 먹어라 하고 찍어줬지. 그런데 이게 뭐요. 뭐 동북아 중심국가를 만드네 뭐네 큰 소리는 땅땅 쳐놓고 이게 뭐냔 말이오. 여기 지금 죽치고 앉었는 중늙은이들한테 물어보쇼. 노무현이를 어찌 보는지. 아마 여기 죽치고 앉었는 양반들 가운데 노무현이 찍어준 양반 많을 거라고. 그런데 노무현이가 여기 있는 양반들한테 실망을 얼마나 많이 줬나. 말도 지 멋대로 하고! 돈은 못 벌고!’

    대통령은 아예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럼 차기에는… 한나라당이 대권을 잡겠네요?’

    ‘그것도 몰라…하여간 그 놈의 자식들은 꼭 그야말로 이회창이 아들 딸 자식 같은 놈들이 디글디글 모여 있어가지고…평소에는 국민이 어떻고 나불나불 잘하는데 뭐 가만있다가 이따금 별 괴상한 짓을 잘 하더라고요. 젠장 왠 미친 놈이 물난리났는데 골프를 치러 댕기질 않나. 그럴 시간 있으면 집구석에서 마누라하고 허리 운동이나 냅다 허든지.’

    ‘…’

    ‘영, 한나라당 놈의 자식들은 그 뭐냐…인간미가 없단 말이오. 노오오무현이가 말은 지랄맞게 하고 깽판이나 치는데 그래도 그 못난 놈은 정이 간단 말이야. 불쌍해. 요즘 레미덕인지 미더덕인지 하는 것에 걸려가지고 집안에 틀어박혀 밥만 꾸역꾸역먹고 지내는 걸 보면 딱하단 말이오. 그런데 이 놈의 한나라당 놈들은 딱할 게 없어. 배떼기에 기름이 잔뜩 꼈거든?’

    ‘요즘 박근혜 의원이 인기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건 사실이지. 다 늙어 혼자 살고…애비 에미 다 억울하게 잃고…딱한 여자여. 왠 또라이 놈 때문에 죽을 뻔하기도 하고 말야. 아니 그런데 뭐 그렇다고 해서 그 여편네가 아직 대통령 될 그릇은 아냐. 그저 그래도 불쌍하게 보일 따름이지. 그래도 한동안 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잖소. 세상 공평한 것인데 지 애비에 이어 대통령을 지가 또 해먹어? 그건 별로여. 그 여편네는 의원이나 몇 번 더 해먹다 지 애비 업보나 갚아야지. 지 애비가 큰 일 한 양반이지만 업보도 컸지 않소.’

    ‘이명박 씨도 요즘 잘 나가던데.’

    ‘그 양반이야 뭐…그 놈의 청계천 때문에 떴지. 그래도 그 양반은 뭔가 한 가락 할 것 같기는 하더라고. 그런데 그 양반도 영 정은 안 가는 양반이야. 뭔 놈의 잘난 척은 그리 해대는지…그리고 그 양반은 털면 먼지 많이 날 거요…먼지가 없어야 찍어주지….’

    ‘손학규 씨도 요즘 뜨는 모양이던데.’

    ‘소오오낙규? 난 그 양반은 잘 모르는데? 경상도지산가 경기도지산가 하던 것 같던데 그 양반 대통령 나온다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그 양반은 잘 모르더만.’

    ‘정동영이나 김근태같은 여당 사람들은 어떠합니까?’

    ‘그런 잔챙이들은 할 말도 없소.’

    ‘그럼 고건 씨는요.’

    ‘그 양반은 그저 나중에 총리 감투나 한번 더 덮어 쓸 양반으로 보이오.’

    ‘노무현이는 어찌 될 것 같습니까?’

    ‘노오오오무우우현이?’

    낚시꾼이 되물었다.

    ‘예.’

    ‘그…노무현이야 깜빵행이여.’

    까아아아암빠아아아앙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