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르릉! 드르릉!

    잠 자던 노 대통령은 영부인이 코 고는 소리에 놀라 잠을 깼다. 원래 영부인이 코를 잘 고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영부인이 코 고는 소리는 청와대를 다 날려버릴 듯 했다. 대통령은 짜증이 나서 영부인을 노려 보았다. 영부인은 세상 모르고 단잠에 빠져 있었다.

    이러어어어어언!

    대통령은 입에서 막말이 튀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대통령은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보았다. 가뜩이나 요즘 마음이 심난해서 잠도 잘 안 오는 판에 간신히 잠이 들었더니만 이 놈의 여편네가 드르릉 코를 골아대는 바람에 잠이 다 깨버렸다.

    아예 각 방을 써?

    안돼. 그럼 안되지.

    각 방을 썼다간, 무슨 신문이니 무슨 뉴스니 하는 온갖 찌라시들이 몰려와서 난리 굿을 칠게 뻔하다. 특히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그 빌어먹을 놈의 찌라시는 한미공조도 망쳐 놓더니만 마누라 관리도 못한다고 생 지랄을 할 게 뻔하다.

    대통령은 아예 귀를 틀어막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그래도 코 고는 소리는 계속 들렸다. 짜증이 나서 미칠 노릇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영부인의 코를 지그시 틀어막았다가 놓았다. 그랬더니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이고, 이제 좀 사아아아알마아아아안하다!

    대통령이 베게로 머리를 푹 파 묻은 순간 이제는 이런 소리가 들렸다.

    빠드드드드드득!

    엥? 이건 또 뭐야?

    빠드드드드드득!

    영부인이 이 가는 소리 였다.

    이러어어어언!

    대통령은 화가 나서 영부인의 얼굴을 쥐었다가 놓았다. 그랬더니 이 가는 소리가 없어졌다.

    으이그!

    내일 당장 주치의를 불러다 영부인 소음방지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해야 겠다. 이 인간 때문에 도통 잠을 잘 수가 없으니 심기안보가 엉망개판이다. 주치의가 안된다고 하면 영부인 건강관리 대책위원회라도 만들라고 지시해야 겠다.

    대통령이 다시 억지로 잠을 청하는데 이제는 영부인이 대통령의 몸 위로 제 다리를 척 걸쳐 놓았다.

    아이고, 이제는 아주 가지가지 한다.

    대통령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슬그머니 영부인의 다리를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영부인이 또 다시 다리를 올렸다. 대통령은 아예 심술이 나서 다리를 팩 내팽겨쳐 버렸다. 영부인이 옆으로 픽 뒤집어졌다가 이제는 아예 대통령을 발로 뻥 걷어 차버렸다. 대통령은 영부인의 발차기 때문에 침대 밖으로 굴러 떨어져 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이제 아주 막 가자는 거지?

    대통령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때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두루루루루루루루우우우우우웅!

    빠아아아드드드드드으윽!

    이제는 아주 탱크 지나가는 소리를 내는 구나. 거기에다 기관총 사격까지!

    내가 졌다. 졌어.

    됐습니다. 됐고요.

    대통령은 화가 나서 잠옷차림으로 침실 문을 닫고 밖으로 걸어 나왔다. 침실 문을 닫는 대통령 뒤로 영부인의 우렁찬 코 고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루루루루루우우우우우웅!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머무는 곳은 따로 있다. 그곳은 바로 대통령 관저인데 대통령이 머무는 곳이 원래는 청와대 본관에 있었으나 대통령의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느껴 지난 90년에 신축한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 안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터벅터벅 잠옷차림으로 대통령 관저 밖으로 걸어나왔다. 대통령이 한밤중에 잠옷차림으로 청와대 경내를 돌아다닌다고 하면 또 별 놈의 찌라시들이 씹어댈 것이 뻔한 일이었지만 대통령은 거의 막 가자는 심정으로 그냥 청와대 경내로 나왔다.

    찍을 테면 찍어 보라지.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를 혼자 휘적휘적 걸어 다녔다. 그때 갑자기 대통령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외롭다!

    권력자의 외로움, 그것도 레임 덕으로 무너져 가는 대통령은 외로웠다. 인의 장막 아래 있으나 정작 자신의 고통과 고민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는 외로움. 사실 이런 외로움이야 이 땅의 중-장년 남자들은 누구나 느끼는 문제였다.

    대통령은 청와대 경내를 걸으며 자신이 이제 불과 1년 반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이 곳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이 청와대를 떠나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대통령은 요즘 이 문제로 고심을 거듭하고 있었다.

    뭔가 해 보겠다고 많은 일들을 벌였다. 조직도 많이 만들고 온갖 인사들도많이 끌어 들였다. 그런데 뭐 하나 속 시원하게 이뤄진 것이 없다. 물론 골치 아픈 일들이야 몇 개 해결했다지만 국민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줄 뭔가가 없었다.

    아!

    대통령은 가슴이 아팠다. 마음이 쓰라리고 아팠다. 하지만 이것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 사람이 대통령 주변에는 너무 없었다. 그리고 털어놓아 봐야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도 없었다.

    대통령은 터벅터벅 본관 쪽으로 걸어갔다. 대통령이 본관 쪽으로 걸어가자 본관의 파란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색!

    대통령은 못내 그 파란 색이 마음에 걸렸다.

    하필이면….

    대통령은 솔직히 그 파란 지붕을 다른 색으로 도색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예 청와대란 이름도 뜯어 고치고 싶었다. 하필이면 왜 파란 색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빨간 색으로 바꾸면 또 온 나라가 난리가 날 거고, 노란 색으로 바꿔도 세상이 뒤집어 질 것이다.

    그럼, 보라색으로 바꿔?

    대통령은 피식 혼자 웃었다. 한편 대통령이 본관 쪽으로 걸어가자 본관을 지키던 경비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경례를 붙였다. 대통령은 넙죽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고는 본관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