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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8일자 오피니언면 '광화문에서'란에 이 신문 김창혁 국제부 차장이 쓴 '브르타뉴 어부의 기도'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전에도 분명히 봤던 영화인데 왜 저 장면이 기억에 없는 걸까. 더구나 마지막 장면인데….
카메라는 백악관 특보로 나온 케빈 코스트너의 눈을 따라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조그마한 동판을 비췄다.
‘오, 신이시여. 당신의 바다는 더없이 크고, 제 배는 더없이 작습니다(Oh, God. Thy sea is so great and my boat is so small).’
영화 ‘D-13(원제 Thirteen Days)’에 나오는 케네디 대통령의 동판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1962년 케네디 대통령과 동생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이 제3차 세계대전으로 치달을 뻔했던 13일간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막 해결한 직후의 장면이었다.
찾아보니 그건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어부의 기도’였다. 동판은 실제로 어느 해군 제독이 선물한 것이고, 케네디 대통령은 동판에 새겨진 그 기도문을 즐겨 인용했다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인 ‘어부의 기도’. 영화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얼핏 짐작이 갔다.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 잠시 의아해했던 ‘기억 상실’의 원인도 곧 규명됐다. 미국을 향해 호통 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겹쳐지지 않았으면 아마 그 장면은 또다시 기억의 저편으로 그냥 흘러갔을 것이다.
대통령은 쉽게 교만해지기 쉬운 자리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김영삼 대통령의 오랜 친구였던 김윤도 변호사는 “(김 대통령이 취임한 지) 딱 1년이 지나니까 세상에 자기가 모르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투가 되더라”고 했다. ‘평생 선생님’이었던 김대중 대통령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가 목회자들을 앉혀 놓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철학을 ‘결딴’내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대통령도 되기 전의 일이었으니….
할 수만 있다면 노 대통령에게 브르타뉴 어부의 기도를 선물하고 싶다. 그리고 두 가지 제안을 했으면 한다.
먼저 싱가포르처럼 ‘스승 장관(Minister Mentor)’을 뒀으면 한다. 대통령이 직접 장관들의 멘터 역할을 하려다 보니 자연히 말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하늘을 찌를 것처럼 교만해지는 것 아닌가 싶다.
야당을 향해 대연정까지 제안했던 노 대통령이니 그다지 놀라운 역발상은 아닐 것이다. 노 대통령 자신에게도 멘터가 필요하다.
그 다음으로 빌 클린턴 행정부 때의 윌리엄 페리처럼 초당적인 대북정책 조정관(Coordinator)을 영입했으면 한다. 1998년 북한의 금창리 비밀 핵시설 의혹이 제기되면서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파 간 갈등은 ‘위험수위’로 치달았다. 그때 행정부와 의회가 합의한 게 바로 여야가 모두 동의하는 인물에게 정책 재검토를 맡기자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클린턴 행정부 1기 때 국방장관을 지낸 페리였다.
두 가지 모두 기도하는 어부의 마음이 돼야 가능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