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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1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나라당의 ‘대선 낙관론’은 이렇다.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세 사람이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해 한 사람으로 단일화만 된다면 5·31 지방선거처럼 반노(反盧)·반열린우리당 정서 때문에 찍어 줄 것이다. 그럴까? 후보 단일화 효과는 결코 극적이진 않을 것이다. 오세훈에게 졌던 맹형규와 홍준표가 깨끗이 승복했던 것처럼, 어느 한 사람이 경선 자체를 거부하며 딴 살림을 차리거나 결과에 불복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3자(者)후보 단일화’의 극적 효과를 믿는 것은 한나라당의 자기도취에 불과하다. 또한 단일화가 된다해도 2002년 이회창의 경우를 보면 승률은 반반이다.
이에 여권은 2002년 ‘이회창 패퇴 방식’ 그대로 나올 것이다. 한나라당 후보에 대한 무차별 약점 날조 공세, 친노 TV 및 매체들의 집중적인 왜곡 보도, 시민단체란 이름의 친노세력 총궐기. 그러면 박근혜는 이회창보다 약점이 적은가. 이명박은? 손학규는? 여권 전체가 ‘시스템’으로 밀어붙이는 무차별 공세에 버틸 맷집은 되는가. 노 대통령도 반노감정을 희석시키기 위해 탈당해 버린다.
바로 고건이 2002년 대선전의 재현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여권의 거대한 힘에 의한 정권 창출을 보아왔던 그가 한나라당의 정권 교체 가능성을 믿고 한나라당에 갈 리가 없다. 어쨌든 집권 세력인 열린우리당을 등에 업고 여기에 민주당을 묶어 ‘반한나라당 지역 연대’로 간다는 목표에서 깔아 놓은 밑그림이 애매모호한 ‘희망한국국민연대’다. 올해 68세인 고건은 ‘출마 정년 문제’ 때문에도 이번엔 반드시 출마한다고 봐야 한다.
한편, 노 대통령 세력은 끊임없이 고건 대안을 찾으며 한명숙, 유시민, 김근태 등 제2, 제3의 인물을 놓고 저울질할 것이다. 선거 막판 여권 후보와 고건 간의 극적인 후보 단일화, 또 한번 매력적이다. 결국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2명의 여권 후보와 싸우다가 막판 단일화에 밀려 허망하게 전사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좌파 15년 집권’이라는 선거 사상 최대의 역전 드라마가 눈앞에서 펼쳐질지도 모른다.
과연 한나라당의 대응책은 무엇인가. 지금부터 어떤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을 막강한 대권 후보를 ‘국민 속에서’ 키워도 어려울 판이다. 그러나 거꾸로 가고 있다. 당 대표를 뽑는 7·11 전당대회부터 대선 주자들이 빠진 ‘마이너 리그’로 치르는 것은 정작 대선 주자들이 내년 6월 후보 경선의 ‘메이저 리그’ 때까지 뒷전에서 상처받지 않고 이미지를 관리하게 하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 이회창과는 달리 여당의 공격을 가급적 적게 받게만 하면 정권을 잡을 수 있다? ‘배부른 보수·우익’의 패배주의적 탁상공론이다. 손 안대고, 피 안 묻히고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 인물이 과연 누가 있는가.
그럼에도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은 1년이라는 그 긴 기간 정면에 나서지 않고 대학 특강이나 돌면서 인기 관리나 하고, 서울 시내에 개인 사무실을 내놓고 중앙당 결정에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세(勢) 싸움이나 준비하겠다는 요량이다. 이것은 웃지 못할 대권병(病)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나라당에는 ‘헝그리 정신’의 야당성이 부족하다.
7·11 전당대회를 앞두고 세 명의 대권 주자 가운데 누구 한 사람 “나부터 마음을 비우고 당대표를 맡아 어떤 상처를 받더라도 정권교체에 앞장서겠다”며 살신성인 정신을 외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의 장래성은 더 지켜 볼 것도 없다. 온갖 풍상을 딛고서라도 반드시 정권을 찾아와 나라를 구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벌써부터 제 각각 청와대 문 앞에 도착한 것처럼 인기관리만 하고 있다. 이러다간 경선 후 패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후보 혼자서 양지에 나갔다가 허망하게 무너지는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다. 대선이 1년반이나 남았는데도 한나라당 안에선 기존 대권후보들과 당당히 경쟁하겠다며 복병처럼 나타나는 ‘서프라이즈(surprise) 후보’ 한 명이 없다. 체질화된 대세론이다. 어느 국민이 그런 죽은 정당과 몸사리는 대선 후보에게 표를 주겠는가. 5·31 이후 국민은 과연 한나라당이 정권을 쟁취할 ‘싹수’가 있는지, 아니면 기득권에만 안주하는 ‘만년야당’인지를 지켜보고 있다.윤창중 /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