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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윤창중 논설위원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박근혜의 비상(飛上). 정치인은 테러의 사선을 넘어야 영웅이 되어 카리스마의 옷을 입는다. 김영삼의 초산 테러사건(1969년), 김대중의 도쿄 납치사건(1973년)은 무엇을 말하는가. 박근혜는 병원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이미 정계의 최강자로 부상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스스로 놀랄 것이다.
무자비한 자상(刺傷)에 고통의 본능을 억제하는 농축의 절제미는 ‘2% 부족한 영남 공주’를 옛말로 만들어 버렸다. 박근혜의 급성장, 이것이 5·31 지방선거의 첫번째 정치적 의미다. 두번째 의미는 노무현 정권의 지역기반이 ‘전라북도판 자민련’ 정도임을 확인한 데 있다. 박근혜의 비상과 노 정권의 ‘전북 정당화’라는 두 의미는 5·31 이후 정계개편을 놓고 일어날 한국 정치의 평지풍파를 예견하게 할 수 있는 키워드가 된다. 왜 그럴까?
박근혜가 막강해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피습의 유탄을 맞은 것은 한나라당 내 경쟁자들이다. 이명박과 손학규가 유탄을 맞은 것이다. 박근혜보다 작아보이는 상대적 왜소화의 피해자들이다. 5·31 저녁 선거개표가 시작되면 한나라당은 ‘박근혜 중심당’으로 개편되어 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국회의원들은 지독한 반노(反盧)정서의 존재를 거듭거듭 확인하면서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 생명은…’이라며 탄식할 수밖에 없다.
그 첫번째 시나리오가 열린우리당 의원 중 광주·전남 출신 중심으로 민주당에 백기투항하는 사태다.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다음 선거에서 재선이 힘들다고 확인한 비호남 출신 의원들이 막강해진 한나라당에 흡수되고, 나머지 소수 열렬파 의원들과 전북 출신 의원들만이 열린우리당에 잔류하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내부 붕괴(implosion)’라는 최악의 수순을 밟게 될지도 모른다. 2002년 대선 때 자민련 의원들이 이회창 대세론에 편승해 한나라당에 대거 달려갔던 것처럼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지역에 따라 유력 대권주자 중심으로 셈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계개편을 막든, 아니면 밀어붙이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내에선 이런 강자가 없다. 정계개편이란 말이 아니라 ‘힘의 정치’의 냉철한 속성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번에 지역정서 확인을 통해 신승하게 되는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에 몰려 갈 이유도 없다. 5·31 이후 열린우리당 주도의 정계개편 주장은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오히려 건재를 입증한 한화갑 민주당이 열린우리당의 명줄을 잡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고건이 일단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간 뒤 민주당과 합당하느냐, 아니면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이탈자의 옹립 수순을 밟으며 민주당에 들어가 정계개편을 주도하는 것을 선택하느냐는 정계개편의 풍향을 좌우할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의문은 노 대통령이 ‘고건당’이 만들어지면 색깔이 비슷한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를 꺾을 수 있다고 보느냐이다. 그럴 리가 없다.
과연 노 대통령은 어떻게 나올까.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되 때가 오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결단을 내릴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 정권 재창출을 기필코 이룰 수 있는 사실상의 ‘신당 창당’을 시도할지도 모른다. 민주당과의 합당? 노 대통령이 그런 길을 택할 리가 없다. 보수·우익후보를 상대로 각을 세워 경쟁할 수 있는 ‘좌파 정당’을 허허벌판에 신도시 건설하듯이 창당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박근혜의 부상을 놓고 안락한 경쟁을 벌이며 최소한의 리모델링 정도의 밋밋한 개혁으로 시간을 허송하는 사이, 여권에서는 국가보안법 폐지, 한미합동군사훈련 축소 또는 중단 등을 외치며 좌파·반미 세력을 포함한 전통적 지지세력의 재규합에 나설 가능성이다.
전통적 지지세력을 재결집하는 데에만 성공하면 ‘30%+α’의 지지로도 재집권할 수 있다. 보수·우익표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다. 여기에 개헌, 남북정상회담 카드 등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안에 몇몇이 남아 있는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대선후보도 진보적 인사로 세운다. 대실패로 끝날 도박이 될 수 있지만 노 대통령으로서는 열린우리당의 내부 붕괴를 이런 식으로 막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5·31 이후 침묵을 깰 것이다.[[윤창중 /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