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1지방선거에 대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각오가 남달라 보인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민주당의 사활 뿐 아니라 자신의 정치생명도 걸려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집행유예 판정을 받아 의원직 상실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호남 석권의 성과를 거둔다면 ‘민주당 재건’과 ‘호남 맹주’ 두 마리 토끼를 잡아 정치적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 대표는 우선 민주당내 심각한 ‘친(親)한화갑계’ vs ‘반(反)한화갑계’ 갈등에 대한 교통정리에 나섰다. 전남도지사 자리를 놓고 ‘친한(親韓)’인사인 박준영 현 지사와 경합을 벌이고 있는 박주선 전 의원에게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전격 제안한 것이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공천신청자 중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김경재 전 의원은 ‘반한(反韓)’ 인사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 대표와 각을 덜 세우고 있는 박 전 의원을 서울시장 후보로 전략 공천해 ‘반한(反韓)’ 인사들의 중앙당 진출을 막고 당 장악력을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화갑 “중앙무대에 꼭 필요한 박주선, 서울시장 출마해 달라”

    한 대표는 24일 전남도지사 후보 당내 경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박주선 전 의원에게 ‘전격적으로’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제안했다. “중앙 정치에 탁월하고 민주당을 함께 키우는 데 필요한 사람”이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이미 전라남도지사·광주광역시장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 광역단체장 후보에 대해 전략공천 방침을 세웠기에 박 전 의원이 ‘결심’만 한다면 서울시장 후보로 전략 공천된다.

    ‘5·31지방선거 필승’을 향한 정신무장을 위해 중앙당 당직자들이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해병대 극기훈련단에 입소해 2박3일간의 극기 훈련을 시작한 24일, 한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박 전 의원은 중앙무대에 꼭 필요한 사람이고 민주당의 정체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며 “박 전 의원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한다”고 공식 제안했다.

    한 대표는 “민주당이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돼주고 인재를 키우는 정당이 되도록 도와 달라”며 “그렇게 하면 중앙정치의 토대가 마련돼 박 전 의원 개인도 성장하고 민주당도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사상과 철학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며 “박 전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를 진지하게 검토해 용단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한 대표는 먼저 박 전 의원을 만나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한 후 공식석상에서 다시 한 번 제안했으며 ‘박주선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못 박기라도 하듯이 오후 이상열 대변인을 통해 국회 브리핑으로 또다시 강조, 언론에 보도되도록 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박 전 의원이 박 지사와의 여론조사 가상대결에서 30% 이상 뒤처지면서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경선을 통해 상처를 입느니 서울시장 후보로 전략공천 받아 당의 전폭적 지지 아래 선전한다면 정치행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대표가 대변인을 통해 국회브리핑까지 하며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언론 보도에 많이 나가도록 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이야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한 대표가 박 전 의원에게 거의 확답을 듣고 발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주선 “청천벽력 같다, 고민은 되지만 전남지사가 낫지 않나”

    그러나 전남지사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던 박 전 의원은 한 대표의 서울시장 후보 출마 권유를 “청천벽력과 같은 제안”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한 대표가 ‘민주당 재건’이라는 명분을 강조하며 공식 발표까지 한 데 대해 적잖이 당황해 하며 깊은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박 전 의원은 25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전남지사 당선을 위해 '올인'해 왔는데 진퇴양난”이라고 곤혹스러워했다. 그는 서울시장 후보를 거절했을 때 쏟아질 당내 비난과 전남지사 후보 경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는 “자신의 영달과 안위만 생각한다는 비난도 막아야 하고 나를 지지하고 추종했던 사람들의 바람도 충족해야 하고…” 라며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지만 “과분한 제안이기는 하지만 전남지사 쪽으로 입장을 굳히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의원의 한 측근은 “너무나 뜻밖의 제안이어서 한 대표의 진의를 파악해 보고 깊게 생각해 봐야 한다”면서도 “전남지사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에게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하다니… 전남지사는 민주당 이름으로 나가면 당선이지만 서울시장은 출마한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공천신청자들의 반발 움직임도 보인다. 서울시장 후보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인 김경재 전 의원은 “서울시장 후보를 전략 공천한다는 방침에 대해 들은 바 없다. 금시초문이다”며 “입후보한 사람들의 의견도 전혀 들어보지 않고…”라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한 대표 개인의 생각이 곧 당의 입장은 아니다”며 한 대표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김 전 의원은 “박 전 의원이 한 대표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시장 후보 출마 결심을 한다고 해도 당내 경선을 치른다면 더 재미있지 않겠느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