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8일자 오피니언면 '강천석칼럼'란에 이 신문 강천석 논설주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벅찬 상대라도 운이 좋으면 한 번은 이길 수 있다. 두 번 연속은 운만으론 안 된다. 실력이 받쳐줘야 한다. 세 번째, 네 번째 연속 승리에도 운을 끌어다 설명하려는 건 선수와 감독에 대한 결례다. 실력이 있어야 운도 따라붙는 법이기 때문이다.

    도쿄의 1차 대일전에서 우익수 이진영의 슬라이딩 캐치를 “일본선수의 안타성 타구가 ‘기적처럼’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고 해서 큰 망발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본 주자 이와무라를 홈에서 태그아웃 시킨 2차전의 호송구에 다시 ‘기적’이란 말을 갖다 대는 건 실례다. 그건 어디까지나 실력이다. 이승엽의 첫 번째 홈런은 ‘방망이가 잘 맞았다’ 해도 되지만 두 번째 홈런은 ‘방망이를 정통으로 맞췄다’고 해야 옳다. 마찬가지로 4게임 10이닝 무실점이란 박찬호의 호투도 제 대접을 해줘야 한다. “일본야구 수준이 한국보다 한 발 앞서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한·일전에는 전력 이외의 부분이 작용한다. 오늘은 우리가 해냈고 내일은 후배들이 해낼 것이다.” 주장 이종범의 코멘트다. 일본 주장 스즈키 이치로는 “불쾌하네요. 오늘은 내 야구 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이라고 했다. 양측 주장의 장외 대결에서도 한국측 타구가 더 어른스럽고 멋진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오래 전에 김영덕과 장명부라는 투수가 있었다. 재일동포로서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이다. 전성기를 넘기고 건너온 이들은 처음보는 변화구로 한국타자들의 방망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런 야구선수 시장의 개방화 덕분에 한국 야구는 한 단계 뛰어올랐다. 그때만 해도 선진 일본 야구와 한국 야구의 수준차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이번에 한몫 톡톡히 해낸 박찬호 최희섭 김병현 서재응 등 메이저리거들은 개방화에 이은 세계화 야구 세대들이다.

    스포츠도 경제처럼, 국내산업을 보호한답시고 쳐뒀던 울타리를 낮출수록 체질은 강해진다. 김성근과 장명부의 한국 야구 진출에 높은 세금을 물리고, 국내 야구 보호라는 구호 아래 박찬호와 김병현의 메이저리그 길을 가로막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야구도 우리 교육처럼 키 작은 야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영화가 배우들만의 잔치가 아니듯이 야구도 선수들만의 잔치는 아니다. 더그아웃 속 감독들 간의 두뇌 경쟁이기도 하다. 그런 눈엔 우리 김인식 감독은 맹물처럼 싱겁다. 도대체 그에게 ‘야구 이념’이나 ‘선수기용 코드’란 게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김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라는 ‘자율 야구’는 알아서들 열심히 하라는 것이니 이념이라 부를 만한 것이 못 된다. 선수 기용도 자기만의 색깔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사실은 설익은 야구 이념의 부재와 코드 없는 선수기용 원칙이 연전연승의 밑거름이었다. 만일 김 감독이 ‘양극화 해소’니 ‘평준화 사수’니 하는 이념을 내걸어 성적이 제각각인 위·아래 선수를 마구 뒤섞고 ‘코드 용병술’로 기울어 말 잘 듣는 선수만 그라운드로 내보냈다면 어떻게 됐을까. 승리는커녕 팀 내 불화를 막는 데도 쩔쩔맸을 것이다. 김 감독 대신에 교육부총리에게 한국대표팀을 맡겼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평준화 원칙에 따라 모든 선수는 2이닝 이상 출전할 수 없다’ ‘선수 선발은 타율보다 내신을 우선한다’ ‘규정된 단체연습 시간 이외의 개별 연습은 금지한다’. 그랬더라면 한국 야구는 연전 연승은커녕 초전에 박살이 났을 것이고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감독 이야기’가 대신 세계의 뉴스가 됐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번 야구 월드컵의 승전보를 일구는 데 정부의 기여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닌 셈이다. 문화관광부 체육국 아래 ‘야구과’를 신설해 야구전담 공무원을 두지 않았던 것이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다. 야구과 직원들의 일거리란 으례 규제와 간섭으로 선수와 구단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빼앗아 가는 것이기 십상이었을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