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절 골프질'로 이해찬 국무총리가 사실상 사의를 표함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잠재적인 여권의 대권주자로 꼽히던 이 총리의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냐는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골프 구설수와 부동산 투기 의혹, 그리고 국회에서의 태도문제 등 여러 부정적 이미지를 쌓아온 상황에서 터져나온 이번 사건이 '실세총리'의 불명예스러운 낙마로 이어진다면,  이 총리에게는 정치적 치명타로 작용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물론 이 총리 자신이 아직까지 '대권의 꿈'을 직접 밝히지는 않았지만 각 언론매체나 여론조사전문기관에서는 항상 그를 '잠재적 후보'로 가정해온 것이 사실이다. 또 여권 일각에서도 2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2위를 차지한 김근태 최고위원이 오는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제 3의 대안'으로 이 총리가 대두될 수도 있다는 분위기였다. 

    정치권은 '3.1절 골프질'이 이 총리의 지난 여러차례 부적절한 골프파문과는 그 수준이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파문이 철도파업으로 인해 국민들의 엄청난 불편이 이미 예고됐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산까지 내려가 골프를 쳤다는 점과 특히 이날 회동이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된 기업인 등과의 모임이었다는 점에서 과거 '골프파문'과는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총리가 골프를 치던 3.1절에 노동부, 건설교통부와 경찰은 파업을 대비해 비상 근무를 하고 있었다. 네티즌들은 연이어 터지는 이 총리의 '골프파문'에 'PGA 총리'라며 조롱을 퍼붓고 있는 상황이다.

    또 사건이 터진 직후 총리실의 해명 역시 많은 내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 총리는 '골프총리'에 '거짓말 총리'라는 비난까지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총리실은 2일 "부산 상공회의소 신임 회장단과의 상견례적인 성격이었으며, 이 총리 외에 다른 공무원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기우 교육부 차관과 동행했으며, 이날 참여한 사람들은 노무현 정권 출범 당시 여권 인사들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했던 인물이 대다수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이날 모임이 '접대성 골프'가 아니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한나라당은 국민들이 배신감, 허탈감까지 느끼고 있다며 잦은 물의를 일으키는 이 총리의 사퇴를 거듭 촉구하면서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6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박근혜 대표의 강도높은 비판에 이어, 김영선 최고위원이 "이 총리가 브로커 윤상림 뿐 아니라 경기도지사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진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과 골프를 치는 등 총리직을 수행하는 게 아니라 대권행보를 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직격했다. 민주노동당도 이날 박용진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국정과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모르는 빈곤한 철학의 한계를 드러냈다"며 이 총리의 사퇴를 주장했다.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줄까 고심하던 열린당은 이 총리의 자진사퇴 양상으로 이어지자 내심 안도하면서도, '실세총리'가 빠진 자리에 예상되는 주도권 다툼과 같은 내분을 의식한 듯 말을 아끼며 자제하는 분위기다. 정 의장은 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총리의 사과는 고심끝에 국민 앞에 겸허한 결정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사퇴를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이 총리와 관련한 당 소속 의원들의 개별적인 의견개진을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앞서 열린당 이광재 의원 역시 한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노 대통령의) 해외순방 후에 결정이 날 것 같다"며 "당·정·청 모두 말을 아껴야할 때"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지난 2004년 6월 군부대 오발사고 희생자를 조문하기 직전, 2005년 4월 강원도 속초·양양지역 산불로 막대한 재해를 입었을 때에도 '식목일 골프 파문', 그리고 7월 남부지방 집중호우에도 제주도에서 골프를 쳐 비난을 자초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중동순방을 기념한 '봉황문양 골프공'으로 구설수에 올랐으며, 올 1월에도 법조브로커 윤상림과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로비 의혹'까지 불러왔다. 봉황문양은 통상 대통령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사용된다.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으로부터 "임기를 같이하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아온 이 총리는 '골프파문' 때마다 "근신하겠다"는 입장표명으로 위기를 간신히 넘겨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