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30 재보선에서 '이중 당적' 논란으로 후보직을 사퇴했던 이명수 전 충남부지사가 최근 열우당을 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충청지역의 한 언론은 이 전 부지사가 1월말 경 열우당을 탈당했다는 통화내용을 보도해 사실상 이 전 부지사가 열우당을 떠났음을 확인했다.

    이 전 부지사는 건양대 부총장을 지내면서 '행정의 달인'으로 손꼽혀왔고, 충청권을 이끌 차기 유력 인물로 주변의 기대를 모아왔었다. 지난 총선에는 고향인 아산에 자민련 소속으로 출마,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결과는 낙선이었지만, 탄핵역풍과 자민련이라는 소수정당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선자와 불과 3% 격차를 내는 등 크게 선전했었다.

    낙선 후 다시 건양대 부총장이라는 본래의 위치로 돌아갔던 이 전 부지사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5년 2월, 아산에서 당선됐던 복기왕 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이다. 4월에 치러질 재선거에서 이 전 지사는 가장 유력한 후보감이었고 석패한 그에 대한 지역 여론도 매우 좋았다. 당시 여론조사에서 이 전 부지사는 어떠한 경우의 수에도 1위를 고수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다.

    그러나 이 전 부지사는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이 몸담고 있던 자민련을 벗어나 '러브콜'을 보내던 열우당으로 말을 갈아 탄 것. 이 전 부지사의 열우당 선택은 열우당으로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었지만, 4석의 미니정당으로 추락해 겨우 회생의 발판을 만들려 한 자민련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열우당 내에서도 "탄핵에 찬성입장을 밝힌 자를 공천하려 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이명수 불가론'을 내세웠지만 '과반수 회복'이라는 명분에 밀려 결국 이 전 부지사를 공천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열우당에 입당하면서 자민련 당적을 정리하지 않은 것. 결국 후보 등록일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이런 어이없는 실수로 그는 후보등록조차 하지 못하고 탈락하게 된다. '이중 당적'파문으로 열우당은 후보 공천에 대한 내분이 일어났고 야당은 이 일을 호재삼에 여당에 대한 공세를 높였다. 자중지란이 일어난 열우당은 결국 4.30 재보선에서 23:0이라는 치욕적인 수치로 완패하고 만다.

    당시 후보에 등록조차 하지 못했음에도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열우당 후보를 성심 성의껏 지원했던 이 전 부지사가 결국 입당 10개월만에 열우당을 탈당했다. 그는 그동안 열린우리당에 입당을 했지만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표현을 자주 해 열우당에 있으면서의 고충을 남모르게 많이 느낀 듯 하다.

    잘못된 선택 하나로 그는 너무나도 많은 피해를 입고 또 입혔다. 그가 자민련을 박차고 나오면서 자민련은 총선이후 모든 선거에서 전패하고 지금은 원내 의석 1석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정당으로 몰락했다. 그가 들어갔던 열우당은 어떠한가. 이중 당적 파문으로 열우당 지지도는 곤두박질쳤고, 행정수도로 충청권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던 열우당은 아산에서 초기 지지율 5%의 한나라당 후보에게 완패했다. 이 전 부지사 본인도 본의와 관계없이 '철새'라는 오명을 쓰고 그간 쌓아온 능력과 인지도를 모두 잃고 말았다.

    만약 그가 자민련에 그대로 남아 자민련 소속으로 아산에 출마했으면 어떠했을까? 재보선이 치러진 6곳 중 5곳이 지난 총선당시 차점자가 당선된 곳이다. 심지어 행정수도지로 결정된 공주/연기에서도 열우당 출신이 낙선하고 지난 총선 차점자가 당선됐다. 이 전 부지사도 아깝게 3%차이로 석패한 만큼 충분히 재기가 기능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했다면 그가 속한 자민련도 원내 5석으로 국민중심당과의 연대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냈을 가능성이 높고, 또한 앞으로 있을 정계개편소용돌이속에서도 의미있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결국 이 전 부지사의 잘못된 선택은 우리에게 당선만 바라고 정치적 소신을 버린 결과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하겠다. 지금 국회의 1당의 대부분의 구성원은 자신을 키워준 정당을 버리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배신의 원죄를 벗을 수는 없다. 이런 잘못된 도의를 벗어난 정치는 종결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