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에 나는 데일리서프 칼럼을 통해 ‘손석희 대통령 후보’ 가능성을 예견한 바 있다. 물론 손석희 아나운서의 인생을 생각해 볼 때 열린우리당 대통령 후보 내지는 중도-진보진영 대통령 후보다.

    그런데 이런 상상의 1단계가 맞아 떨어졌다. 손석희 아나운서가 문화방송에 사의를 표한 것이다. 내가 당시 ‘손석희 대통령 후보’ 가능성을 예견했을 때 주변의 사람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제 손석희 아나운서는 더 이상 문화방송 소속의 방송인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곧 ‘정치인 손석희’로 변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손석희 열린우리당 대통령 후보의 공포

    우리 보수인들은 무엇보다 2007년 대선에서 손석희 파워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손석희 열린우리당 대통령 후보다. 열린우리당에서 손석희 아나운서를 대권후보로 내면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쌓아 둔 비교우위는 일거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거기에 찬조연설 인사로 영화배우 문근영 씨가 나온다. 그리고는 방송에 나와 ‘통일과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민주개혁세력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한다. 이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20대의 열린우리당 몰표는 뻔하다. 문근영 씨의 가족사나 출신 지역 등으로 보아 찬조연설 인사로 나올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 외에도 인기 높은 강금실 변호사나 영화배우 문성근 등 역시 대중성 높은 인사들이 열린우리당 주변에 포진중이다.

    정리해보면 ‘열린우리당 대통령 후보 손석희’에 찬조연설 내지는 대선 지원팀으로 강금실, 문근영, 문성근 세 사람이 가세하면 2007년 대선 판도는 다시금 한나라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것이다.


    한나라당은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기억하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는 것이 있다. 월남전 당시 미군 고위 장교 스톡데일이라는 사람이 하노이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낙관주의자들과는 달리 현실을 냉정하게 봄으로서 포로 생활의 고통과 고문을 이겨내고 많은 동료 병사들을 살아남게 해서 고향으로 돌려 보낸 인물이다.

    그래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란 말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스톡데일 패러독스’란 언제나 자신이 바라는 것에 대한 믿음은 잃지 않으면서도 눈 앞에 닥친 냉혹한 악조건을 분명히 직시하고 극복하는 방안을 항시 대처해야 고난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는 한나라당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금 한나라당은 무엇을 해야 하나. ‘손석희 신드롬’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문근영-강금실과 같은 인물들까지 가세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손석희 대통령 후보가 텔레비전에 나와 ‘개혁과 진보’를 말하고 문근영 씨가 ‘통일’을 말하며, 강금실 변호사가 ‘여성권익 증진’과 ‘민주’를 이야기할 때 우리 보수진영과 우리 대권 주자들은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 참으로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손석희인가?’를 분석하라

    그러나 한국 보수진영이나 대권주자들은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표는 ‘선진화’를 말한다고 할 것이고, 이명박 시장은 ‘경제성장’을 말한다고 할 것이며, 손학규 경기지사는 ‘실용’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의’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빼앗긴 보수사회에서 선진화를 이야기하고 경제성장을 이야기하며, 실용을 이야기한들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고작해야 기존 한나라당 지지층만 호응할 따름이다.

    지금 한나라당과 보수진영, 그리고 보수 대권주자 진영은 왜 ‘손석희 바람’이 부는지 분석해야 한다. 도대체 국민은 왜 ‘손석희’를 사랑하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손석희 아나운서가 ‘정의’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가 바로서지 않으면 ‘질서’가 있을 수 없으며 질서없이 ‘개혁’이 있을 수 없고 ‘통일’이 있을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무엇을 원하나. 정의로운 이미지를 가진 참신한 인물을 원한다.

    물론 세상사를 정의와 불의, 선과 악으로 나눠 보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중들은 쉽게 ‘정의’와 ‘불의’로 세상사를 판별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무턱대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이런 속성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한나라당과 보수진영 역시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시급히 궁리해야 할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노무현 후보가 정의를 대변한다고 믿었다. 병풍 논란과 한나라당, 보수사회에 대한 거부감 속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악의 세력, 사대주의 세력, 기득권 세력, 민중을 착취하는 세력의 대통령 후보로 많은 젊은이들에게 지목되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열성적인 소수의 힘으로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이 되었다. 지금 내 눈에는 2007년 대선도 2002년 대선의 재판이 되는 것이 너무나 생생히 그려진다.

    이제 제발 한국 보수진영은 깨어야 한다. 대권이 손아귀 안에 들어있다는 발상은 망상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대중들에게 악의 세력으로 지목 당해 있다는 점을 기억하길 바란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간단하게 답할 수 있다.

    이 땅의 민중들은 여전히 보수사회를 위해 지갑을 열기를 기피하고 있지 않은가. 보수사회를 위해 민중의 지갑이 열리는 날이 보수진영이 정권을 탈환하는 날인 것이다. 이 진리를 느끼지 못하면 ‘대권탈환의 날’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