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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보길 칼럼] 한글날....이승만....국보1호는 이것이다

"한문만 쓰는 이들은 다 썩고 나쁜 물 들어 더 바람것 없어...백성들을 '한글 교육'으로 일깨워 독립운동해야"
국보1호는 일본총독부가 정한 숭례문 대신 '훈민정음해례본'으로 바꾸어야.

입력 2021-10-08 11:38 | 수정 2021-10-09 07:24

“.....이 책을 전적으로 한글(국문)로만 기록한 것은 전국의 인민들이 읽기 쉽게 하기 위해서이며...(중략)...우리나라 중등 이상의 사람들이나 한문을 웬만큼 안다는 이들은 거의 다 썩고 나쁜 물이 들어 더 이상 그들에게 바랄 것이 없으며....(중략)....내가 오직 바라는 바는 무식하고 천하며 어리고 약한 형제자매들이 이 책에 흥미를 가져서 스스로 흥기하려는 마음이 생겨 행동하고 남을 인도하여 아래에서부터 변화하여, 썩은 데서 싹이 나고 죽은데서 살아나기를 원하고 원하노라.”         
         건국4237년 6월29일 한성감옥에서  죄수 이승만 기록

길게 인용한 이글은 이승만이 1904년 감옥에서 몰래 저술한 옥중저서 [독립정신] 서문의 끝부분이다.
국내출판은 엄두도 못낸 불온서적 [독립정신]은 미국 유학때  LA서 출간, 당시 독립 운동가들에게 성서와 같은 필독 교과서요, 조선왕국 최고의 근대 정치사상서, 대한민국 건국 설계도였다.
“한문을 안다는 이들이 거의 썩어서 바랄 것이 없어 인민들의 행동을 위해 한글로만 썼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잡는다. 즉 독립운동은 다수 인민의 힘으로 해야 한다는 '노예해방 자유론'이다.
그랬다. 세종이후 독립운동 때까지도 식자층은 한글을 외면하고 한문을 선호하였다.
김구의 ‘백범일지’도 한문으로만 메모한 것. 스스로 ‘상놈’이라 고백한 김구 역시 한글 작문은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가 해방후 중국서 가져온 한문 노트를 일류 소설가 이광수에게 맡겨서 춘원이 쉽게 풀어 읽기 좋게 윤작하였고, 부록 ‘나의 소원’은 백범 노트에 없는 것을 이광수가 자기 생각을 정리하여 덧붙인 창작이란 것이 연구자들의 통설이다.

▲ 20대 유학자 이승만이 1904년 한성감옥에서 한글로만 저술한 [독립정신] 표지ⓒ뉴데일리DB

◆ 이승만의 한글운동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20살에 배재학당에 들어가 ‘자유’를 발견하자 청년 유학자 선비 이승만은 미국 같은 나라를 만들려면 ‘백성의 한글교육’이 필수임을 절감한다.
한국최초의 학생회 ‘협성회’ 회장이 되자 순한글의 주간지 ‘협성회보’를 만들고 ‘독립신문’에 기고한다. 최초 일간지 순한글 ‘매일신문’ ‘제국신문’을 창간, 계몽운동에 올인하였다. 
감옥에서 몰래 쓴 논설 수백편도 한글, 번역서 [청전일기]도 한글, 망명후 하와이에서 저술한 [한국교회 핍박], 월간지 [태평양잡지], 일기, 모든 연설문, 선언문, 결의문 등 독립운동 기록 일체가 한글 전용이다. (미국 판매용 [JAPAN INSIDE OUT]만 영문 저작)
더구나 최초의 新體詩(신체시), 옥중에서 편찬하던 최초의 ‘영한사전’에서 한글단어의 ‘품사’를 정하였던 것도 귀중한 연구자료이다. 
글로벌 정치가 이승만만큼 다앙하고 광범한 역사가 문필가 저술가 언론인이 독립운동가들 중에, 아니 세계 대통령 중에 몇명이나 되나?
대한민국 건국후 ‘한글날’을 정하고 ‘한글전용법’을 제정, 맞춤범 간소화, 문맹퇴치운동, 6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한다. 해방때 80% 넘던 문맹율은 이승만이 사퇴할 때 10% 아래였다. 그때 교육받은 국민과 유학생들이 돌아와 70년대 산업화를 성공시킨다.
요컨대 이승만의 한글사랑은 국민국가 독립강국을 세우는 문명화의 도구, 근대화의 무기였던 점, 백범 등 다른 운동가들이나 순수 한글학자들과 차원이 다른 스펙트럼이다. 

▲ 일본총독부가 '조선고적1호'로 지정한 숭례문은 그대로 국보1호가 되었다.ⓒ뉴데일리DB

◆ 1940년에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解例本)]이 국보70호,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나라 말씀이 중국에 달라...’라는 세종대왕 어록과 세계 문자중 가장 뛰어난 한글의 뜻과 용법 등을 교육용으로 설명한 이 책이 <국보 1호>가 되어야한다는 여론은 지금도 끓고 있는 중이다. 
‘국보 1호 남대문’은 다 알려진 대로 일본 총독부가 제멋대로 정한 ‘조선고적 1호’에서 유래한다. 조선고적 2호 동대문은 '보물1호'가 된다. 일인 전문가들도 찬탄하는 수많은 문화재 중에 왜 하필 숭례문과 흥인지문이 1-2호일까. 
그 성문들은 일본에게 역사상 잊을 수 없는 영광의 ‘개선문’이기 때문이다. 스승으로 떠받들던 선진국 조선을 정복한 임진왜란, 일본장수 두 명이 입성하여 한양을 함락시킨 두 문은 일본인들의 수천년 열등의식을 단숨에 씻어준 ‘반도 탈환’ 기념탑인 셈이었다.
반도 탈환? 한반도 삼국시대 종말과 함께 '작은집' 열도에 건너가 '일본'이란 국호를 정하고 일본백제 '나라'로 통합한 고대사를 그 후예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랜동안 '일본 고대사의 수수께끼'라고 덮어 얼버무리는 부분들인데, '고사기' '일본서기'엔 암호처럼 살아있다. . 
굳세게도 일본은 초등학교 역사교과서에 명치유신 때 조작한 반도 정복사 ‘임라 일본부’를 정사인양 교육시키고, 독도 영유권을 끈질기게 주장하는 배경에는 침략적 영토야욕은 물론이고 역사적 우월감 찾기 목적 역시 작지 않다고 본다. 일제 총독부가 까뭉갠 우리 고대사를 지금이라도 속히 복원 교육해야할 이유이다. 
★그러기에 국보 1호부터 당장 바꿔야한다. 궁색한 핑계나 창피한 정치쇼 ‘죽창가’ 말고 진정 되찾아야 할 우리정신부터 회복하기 바란다.  [국보70호]와 [국보1호]를 그대로 맞바꾸기만 하면 될 일이다. 
예산 타령? ‘화천대유’ 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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