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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성 칼럼]한글을 만든 자와 한글과 문화유산을 지킨 자

한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가운데 목적, 사용법, 원리를 알 수 있는 문자로 유일

김학성 강원대 로스쿨 명예교수·헌법학회 고문 칼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입력 2021-10-08 08:58 | 수정 2021-10-08 10:13

▲ 김학성 강원대 로스쿨 명예교수·헌법학회 고문.

일본인의 영어 발음이 미숙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인데,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모음이 “아, 이, 우, 에, 오” 총 다섯 개밖에 없으니 영어 발음을 제대로 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 발음이 없으니, 영어의 lunch는 란치로 dinner는 디나로 발음한다. 이럼에도 일본사람은 영어를 자기 글(가타카나)로 표현하기를 즐겨하고 그 범위도 상당히 넓다. 가타카나는 암기하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정리해두면 일본을 아는 데 매우 유익하다. 일본사람이 영어에 약하다는 사실에 왜 내 마음이 흐뭇한지 모르겠다. 

한글날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날이다. 1443년 세종대왕은 훈민정음(한글의 옛 이름)을 창제한 뒤, 1446년 반포했다. 새로운 문자를 만들 경우, 문자의 창제목적과 원리를 설명하는 매뉴얼이 꼭 필요한데, 이를 담은 책이 ‘훈민정음해례본(이하, 해례본)’이다. 해례본은 ‘예의’와 ‘해례’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은 글로 한글의 창제목적을, 해례는 한글의 원리를 설명하는 한글의 해설서로,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오랜 세월 동안 해례본이 존재하지 않아 창제의 원리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 일본 어용학자들은 우리 문자를 폄훼하면서, 고대 글자를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거나, 심지어 화장실 창살 모양이 그 기원이라고 하는 등, 한글을 짓밟았다. 해례본은 한글의 말문을 연 열쇠이기에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세종실록에는 해례본을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발견되지 않아 상당히 애를 태운 책이다. 광화문 세종대왕의 좌상을 보면, 대왕의 왼손에 책 한 권이 들려있는데, 바로 해례본이다. 

해례본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은 1940년이다. 당시는 일제강점기여서, 해례본의 발견은 일제에 용납될 수 없는 사건이었다. 사재 털어 국가적 보물을 구입하고 목숨 걸고 지킨 사람이 있었으니, 간송 전형필이다. 간송은 해례본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쳤고, 광복 후에야 세상에 공개했다. 간송은 해례본을 만 원에 매입하였는데 당시 만원은 서울의 큰 기와집 열 채 값이었다고 한다. 간송의 배포와 인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간송의 문화유산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경황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해례본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 챙겨갔고, 혼란스러운 피난길에서도 이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낮에는 품고 다녔고 밤에는 베개로 베면서 한순간도 몸에서 떼어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자기의 재산을 쏟아붓고 이를 지키기 위해 극진한 노력을 아끼지 않은 간송 덕분에, 해례본은 우리에게 전해졌다. 

간송은 해례본 외에도 민족의 얼을 ‘모았다’. 그림, 글씨, 책, 도자기 등은 한 나라의 정신적 기둥이자 자존심이다. 간송은 혼신의 힘을 다해 민족의 얼을 모으고 또 모았다. 민족의 얼과 혼이 서려있는 작품들은 한두 푼으로 구입할 수 없는 것들이고, 또 돈이 있어도 안목과 열정이 없으면 구입할 수 없다. 분명한 역사의식과 과감한 결단력이 있어야 하고, 오랜 인내와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 한다. 또 간송은 민족의 얼을 ‘지키고’, ‘되찾아왔다’. 당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돈에 눈이 어두워 귀중한 문화재를 일본에 팔아넘겼다. 간송은 일본으로 유출되는 서화, 도자기, 불상, 석조물, 서적들을 수집해서 이 땅에 남겼고,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를 다시 이 땅으로 오게 했다. 간송의 되찾는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간송은 최초의 개인 박물관(보화각)을 ‘세웠다’. 28세 때 미술관 터를 구입했고 5년 후 완공했다. 보화각은 ‘빛나는 보배를 모아두라는 집’으로, 민족문화의 보물창고이자 현재 간송미술관 건물이다. 박물관을 세운 이유는 수장품은 힘들 때 매각할 수 있고, 자손에 의해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간송이 수집한 문화유산 중 12점이 국보로, 10점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해방 이후 간송은 예전처럼 문화재를 수집하지 않았다. 조선 사람 누가 모아도 조선 것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장서 정리에 매진하던 중, 6.25 전쟁이 터졌다. 수장품을 놓고 갈 수 없어 빈집에 혼자 몸을 숨겼다. 피가 마르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서슬이 시퍼런 일제 치하에서 서화나 골동에 미친 사람으로 행세하면서 표적을 피했고, 놀림과 비웃음도 참으면서 전 재산을 바쳐 어렵게 모은 수장품인데, 동족에게 수난을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다.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보화각 보물이 평양박물관으로 갈 뻔했는데, 기적적으로 지켜졌다. 1·4 후퇴 때에는 중요 수장품을 기차에 싣고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그러나 수 만권의 책과 도자기까지 가져갈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부산에 보화각의 수장품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고 하니,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1950년 농지개혁을 통해 토지 대금으로 받은 지가증권이 전쟁 중 화폐가치가 떨어져 모두 휴지 조각이 되었다. 간송은 논도 소득도 잃었고, 조금 남은 땅을 팔아서 생활하는 형편이 되었다. 보성학교에 재정 사고가 발생하자, 그 빚을 갚기 위해 가족들까지도 극심한 쪼들림에 시달렸다고 한다. 도자기 한 점만 팔아도 해결할 수 있었지만 남은 재산으로 해결했다. 진정 간송은 민족문화의 수호신이다.

한글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문자 가운데 목적, 사용법, 원리를 알 수 있는 문자로 유일하며, 백성을 위해 군주가 직접 만든 점에서도 세계에서 유일하다. 그래서 훈민정음해례본은 국보를 넘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의 반열에 올라 있다. 한글은 제자(制字)의 원리가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다. 14개의 자음과 10개의 모음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소리가 거의 없을 정도로 과학적이며, 그러면서 독창적이기까지 하다. 세계의 문자 역사를 보면 상당수의 글자가 이웃 나라의 문자를 조금씩 변형하여 사용되었는데, 우리 한글은 탁월할 정도로 독창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만들어주심으로 민족의 자긍심을 높여준 세종대왕과 목숨 걸고 이를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께 다시 한번 머리 숙여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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