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안 변호인단 의견서… "납치극으로 위장해 달라" 北 외교관 요청받고 침입"외교관 부인 탈출하면서 계획 틀어져… 현지 경찰 도착하자 '망명 안 한다' 말 바꿔"
  • ▲ 2019년 2월 22일(현지시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서는 '자유조선' 회원 크리스토퍼 안 씨.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9년 2월 22일(현지시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에 들어서는 '자유조선' 회원 크리스토퍼 안 씨.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반 김정은 단체인 ‘자유조선(구 천리마민방위)’이 2019년 2월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은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을 위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자유조선’은 2017년부터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을 비롯해 북한사람들의 탈북을 도운 단체다.

    북한대사관 소속 외교관 “탈북하고 싶다. 납치극으로 위장해 달라”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이하 북한대사관) 침입과 관련해 미국 당국에 체포된 사람은 ‘크리스토퍼 안’이다. 크리스토퍼 안의 변호인단은 최근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자유조선’이 북한대사관을 습격한 이유와 당시 정황을 상세히 소개했다고 중앙일보가 전했다.

    안 변호인단에 따르면, ‘습격’은 북한대사관 관계자들이 먼저 연락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배신행위가 발각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보복당할 수 있다”면서 “납치극을 벌여줄 수 있느냐”고 ‘자유조선’에 먼저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인 ‘자유조선’은 계획을 세우고, 2019년 2월22일(이하 현지시간) 습격을 실행했다. 에드리언 홍 창과 안 등은 이날 오후 4시40분쯤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한 외교관이 문을 열어줘 대사관에 진입했다.

    북한대사관에 들어간 ‘자유조선’ 일행은 외교관과 그 가족을 결박했다. 안은 당시 오른손을 다친 상태여서 이를 돕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는 것이 변호인단의 설명이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는가 싶었지만 오후 5시12분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북한 외교관의 부인 조선희 씨가 대사관 2층 창문을 통해 바깥으로 뛰어내린 것이다. 조씨는 마침 대사관 앞을 지나던 차를 세워 휴대전화의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습격사건을 알렸다. 

    당시 조씨는 “괴한이 대사관에 침입해 사람들을 죽인다. 사람들을 먹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 경찰 현장 도착하자 바뀐 분위기… “망명 안 하겠다”

    조씨의 말을 들은 남성은 즉각 경찰에 신고했다. 오후 5시50분쯤 스페인 경찰 3명이 북한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대사관에 있던 사람들은 경찰이 초인종을 누르기 전까지는 조씨의 탈출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현지 경찰이 도착하자 대사관 사람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안 변호인단의 의견서에 따르면, 대사관에 있던 북한사람들은 고통스러워했다. 이어 전화벨이 울리자 북한사람들은 계획이 들통났다고 확신했다. 조금 뒤 에이드리언 홍 창이 안에게 “북한 외교관들이 마음을 바꿨다. 이들은 귀순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결국 ‘자유조선’ 측은 오후 9시4분, 대사관 차량과 우버(Uber·차량공유서비스) 차량에 나눠 타고 대사관을 빠져 나갔다. 이어 오후 9시22분쯤 자신들을 현지 대학 유학생이라고 밝힌 북한사람 3명이 대사관에 도착했다. 안은 “이들은 현지에 파견나온 북한 정보요원일 것”으로 추정했다.

    “스페인 경찰, 북한 외교관 진술만으로 범죄인 인도 요청”

    이 같은 북한대사관 습격 사건의 전말을 소개한 안 변호인단은 “스페인 경찰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사건 이후 북한 외교관과 가족 6명, 대학생이라는 사람 3명이 스페인 경찰에서 진술했는데, 이때 대사관 최고위직인 서모 씨가 배석했다고 변호인단은 주장했다. 서씨가 지켜보는 상황에서 김정은정권을 향한 충성심을 과장해 표현한 증언이므로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주장이었다.

    안 변호인단은 “통상 이런 사건은 북한 외무성과 보위부를 통해 권력 최상층부에 보고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곧바로 가족을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한다”는 북한전문가의 말을 인용한 뒤 “오랜 기간 해외에서 납치·살인을 자행한 북한정권이 정적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 문제이지, 스페인 사법절차상 공정성의 문제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안이 2017년 2월 김정남이 피살된 뒤 김한솔과 그 가족의 마카오 탈출을 도운 만큼, 그가 미국을 떠날 경우 김정은정권의 암살 표적이 될 것이므로 인도주의에 따라 범죄인 인도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변호인단은 호소했다.

    신문이 전한 변호인단 의견서를 미국 연방법원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다. 안의 범죄인 인도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는 오는 4월9일 열린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자유조선'이 납치를 가장한 외교관 망명을 위해 대사관을 습격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번에는 해당 외교관들이 위험해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