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지소미아 조건부 유예의 법리적 검토…"자동 연장으로 2020년 11월 22일까지 유효"
  • ▲ 이헌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공동대표·자유와 법치를 위한 변호사연합 집행위원).ⓒ뉴데일리DB
    ▲ 이헌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공동대표·자유와 법치를 위한 변호사연합 집행위원).ⓒ뉴데일리DB
    문재인 정부(현 정부)는 8월 22일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등 협정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면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종료를 발표했다. 그런데 현 정부는 2019년 11월 23일 0시를 기해 발효될 예정이던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일본의 반도체 3개 품목 수출규제와 관련해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도 일시 정지하기로 했다. 현 정부의 발표로는 “언제든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기세등등하던 현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나 통용하던 ‘국익’을 내세워 지소미아의 종료를 발표했는데, 느닷없이 지소미아의 종료를 조건부로 유예했던 것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던 지소미아 종료에 관한 국익은 지금 조건부 유예의 시점에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지소미아 종료 유예, '우호적 중재' 기대와 다른 미국 압박 탓

    현 정부는 대법원의 일제 징용판결에 의해 야기된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따른 한일갈등에 관해 미국 정부의 우호적 중재나 개입을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 정부의 기대와는 반대로 미국 정부측의 ‘실망, 강력한 유감’, ‘지소미아 종료로 득보는 곳은 중국·북한’이라는 등 거센 반응과 함께 미국 의회의 결의를 포함한 지소미아 연장에 대한 강력한 압박과 이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해 지소미아의 종료를 조건부로 유예한다고 발표했다고 보여진다. 최근 발생한 탈북선원 강제북송과 한·아세아특별정상회의 북한 김정은 초청 무산, 김정은 지시로 일어난 창린도 해안포·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대한 사실상 무대응·무대책 등에서 드러낸 굴종적 대북 태도와 더불어 현 정부의 무모하고 무능한 외교·안보 수준을 여지없이 드러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현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정지 발표에 대해 주요 언론은 ‘유예’라거나 ‘조건부 연장’이라고 하고, 미국 국무부는 ‘갱신’이라고 표현했다. 일본 정부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지소미아와 수출 규제는 별개의 문제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소미아에 관한 한일 양국 간의 발표 내용과 시기에 대한 입장 차이가 빚어지고, 현 정부 관계자는 "수출 규제의 원상회복을 위한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지소미아를 종료할 것"이라며 "우리가 결정하면 언제든 종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현 정부 측의 야당 시절 거센 반발 하에 2016년 11월 23일 체결된 지소미아는 유효기간을 정하지 않거나 5년으로 정한 다른 국가들과의 지소미아와 달리 그 유효기간을 1년으로 정했다. 존속기간의 정함이 있는 계속적 계약관계는 그 기간이 만료되면 계약이 종료하고, 그 계약에서 계약 갱신 또는 존속기간 연장에 관해 별도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약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계약이 갱신되거나 존속기간이 연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법리는 유효기간을 정한 조약과 같은 지소미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것이다. 지소미아 제21조 제3항은 "기한 만료 90일 전 협정 종료 의사를 서면 통보하지 않는 한 자동으로 1년 연장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소미아는 1년 단위로 연장되던지, 일방의 종료 서면통보로 종료되던지 두 가지 중 하나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여기에 현 정부의 지난 8월 종료 통보는 그 효력 정지로 효력이 발생하지 않게 됐으므로, 한일 양국의 합의가 없는 한 지소미아는 종료되지 않은 채로 자동으로 1년이 연장돼 2020년 11월 22일까지 유효한 것으로 볼 것이다.

    현 정부는 일본 정부가 현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에 관한 조건부 유예에 대해 이해를 표했다고 공언하지만, 현 정부는 지난 8월 지소미아 종료에 관해 “미국에 이해를 구했다”고 거짓말한 전례가 있었고, '일본 정부가 이해했다'는 것은 일본 정부와 합의했다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동하면 이것을 주겠다"는 식으로 당사자 일방의 의사에 의존해 조건을 정하는 것은 다른 당사자가 원하는 경우에 한해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조건 실현이 불가능한 사실을 내용으로 하는 불능조건은 무효이거나 그 조건 자체가 존재하지 아니한다. 일본 정부와 합의를 하지 않은 이상 현 정부가 언제든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식의 일방적 조건이거나 그 실현이 불가능한 조건으로서 무효일 것이므로, 현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현 정부가 원하면 언제든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고 볼 여지는 없다고 할 것이다.

    한편 현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통보에 관한 효력정지는 현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공식 통보하는 바에 따라 그 효력이 정지되고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현 정부가 2020년 8월 22일 이전까지 지소미아의 효력을 종료한다는 식으로 그 효력정지의 효력을 소멸하는 통보를 하는 경우에는 그 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고, 2020년 11월 22일까지 연장된 지소미아 협정에 따라 기한 만료 90일 전 협정 종료 의사를 서면 통보하는 경우에 해당해 2020년 11월 22일에 그 협정의 효력이 종료되는 것으로 볼 것이다.

    조약 효력 가진 지소미아… 기한 지난 文정부 종료 통보 효력 없어

    조약과 같은 계속적 계약관계에 있어 계약의 종료는 장래를 향한 효력이 있을 뿐이고 소급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 아니므로, 현 정부의 효력정지 소멸 통보로 종전 지소미아의 종료일인 2019년 2월 22일로 소급해 종료될 수는 없다. 또한 일본 정부와의 별도 합의가 없는 한 현 정부의 지소미아 효력정지 소멸 통보 이후 90일이 경과한 이후에 지소미아가 종료된다고 볼 수도 없다.

    “계약은 지켜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근대법 법 원리와 같이 지소미아와 같은 조약도 준수돼야 하고, 국가간 협정이 일단 성립된 이후에는 일방 국가가 마음대로 종료시킬 수는 없다. 지난해 10월 30일 일제 강제징용피해자 판결에서 대법원이 판시한 바와 같이, 조약은 전문·부속서를 포함하는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에 비추어 조약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돼야 한다.

    한일 양국이 체결한 지소미아의 문언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대한 해석이나 일반적 법 원리에 의하더라도, "지소미아에 관해 우리가 결정하면 언제든지 종료가 가능하다"거나 '외교적 승리'라는 현 정부 관계자의 말은 현 정부의 ‘무모·무능’에 이어 ‘무지’한 외교·안보 수준 뿐만 아니라 ‘무법’한 법 의식의 민낯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갈등의 원인이 된 일제 징용피해자 사건의 소송대리인으로 활동했던 바가 있고, 2012년 이명박 정부가 한일 지소미아를 추진하는 데에 대해 "세상에 영토분쟁을 일으키는 상대에게 군사비밀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얼빠진 나라가 있느냐"며 "지소미아 체결이 강행된다면 내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협정 폐기를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한변의 헌법소원이 현 정부에 의해 장악된 헌법재판소로부터 각하 결정이 됐지만, 지난 8월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면서 헌법 제89조에서 정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치지 아니하는 등 헌법을 위반한 사실도 밝혀졌다. 대부분 국민들을 분노하거나 걱정하게 하는 조국 사태와 공수처설치 등 패스트트랙 입법의 정점에 문재인 대통령이 있는 것처럼, 개탄스럽고 혼란스러운 이번 지소미아 사태의 정점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