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설의 신비' 간직한 열차 관광 성지… 'V 프로젝트'로 100년만에 대대적 업그레이드
  • ▲ 해발 1322m의 벼랑 같은 산 하더 쿨룸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맥. 가운데 보이는 설산이 4158m 높이의 융프라우다. 산 아래 보이는 마을이 스위스 중부의 소도시 인터라켄.
    ▲ 해발 1322m의 벼랑 같은 산 하더 쿨룸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맥. 가운데 보이는 설산이 4158m 높이의 융프라우다. 산 아래 보이는 마을이 스위스 중부의 소도시 인터라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동경 8도선을 따라 500㎞를 남하하면 긴 눈썹 모양의 호수 두 개가 나란하다. 왼쪽이 브리엔츠, 오른쪽이 툰 호수다. 그 사이 조그마한 마을 인터라켄. 가냘프게 흐르는 아레강(江)으로 두 호수(라켄)를 이어주는(인터) 스위스 중부의 소도시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지중해 쪽으로 수직 남하한 여정은, 4/5 지점에서 이미 국경을 넘는다.   

    해발 567m의 고지이지만 높이를 체감할 수 없다. 그보다 훨씬 높은 산들의 육중한 행렬이 멀리 마을 앞을 막아선 탓이다. 해발 3000~4000m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산들의 끝없는 행렬, 알프스 산맥이다. 그러나 호수 사이의 작은 마을 인터라켄에 발 붙인 채로는 알프스의 거대한 위용을 파악하지 못한다. 물러서야 보인다.  

    지난 24일(현지시간), 인터라켄의 뒤를 배산(背山)으로 지키는 해발 1322m의 병풍 같은 절벽, 하더 쿨룸에 올랐다.  

    게르만 전사들에게 무력감 안겼던 '스위스 알프스'의 심장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열차 이체(ICE)를 타고, 동경 8도선에 충실한 레일로 자정 무렵 인터라켄에 도착한 다음날이었다. 수직에 가까운 하더 쿨룸의 급경사를 '휘니큘러'라는 이름의 열차형 케이블카를 타고 단숨에 올랐다. 유럽의 남쪽을 활처럼 길게 막아선 알프스가 육중한 모습을 드러낸다. 좌우의 끝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회색 암반과 흰색 설산으로 번갈아 치솟아오른 봉우리들이 하늘을 끝없이 찔러댈 뿐이다. 압도하는 풍경…, 자연의 아름다움은 곧잘 숭고로 넘어간다.    

    잠시 넋 잃은 여행객의 정신은, 알프스의 긴 행렬에 당황한 채 1500년의 세월을 돌이키고 말았다. 유럽에 문명과 비(非)문명이 뒤섞였던 시기. 그 때도 저 산맥을 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중부유럽의 숲속에서 수렵과 사냥으로 일관하던 게르만인들이다. 그들도 알프스 저편의 문명에 한 번쯤은 침투하고 싶었다. 로마가 일군 세계제국에 동화되고 싶은 꿈을 꾸었다. 황금빛 올리브유와 붉은색 포도주를 맛보게 해줄 ‘대이동’을 꿈꾸었다. 

    그러나 2019년의 여행객들처럼, 남하에 남하를 거듭하며 호수 사이 마을 인터라켄에 도착했을지 모를 일군의 게르만 전사들은 알프스 산맥 앞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거대한 장벽, 넘을 수 없는 곳, 넘어서는 안 되는 곳―. 더운 여름에도 눈 덮인 채 하늘과 맞닿은 알프스의 고봉들은, 그들의 눈에 범해선 안 되는 신(神)들의 거처였다.  
  • ▲ 해발 3454m 융프라우요흐에서 바라본 알레취 빙하 발원지의 풍경.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절정의 풍경이다.
    ▲ 해발 3454m 융프라우요흐에서 바라본 알레취 빙하 발원지의 풍경.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절정의 풍경이다.
    '처녀' '성모'의 산 융프라우, 그 '불가침'의 풍경

    그 신들의 거처 중에서도 유난히 장엄한 성산(聖山)이, 하더 쿨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융프라우다. 해발 4158m, 만년설에 덮이고 구름을 한참 아래로 깐 채 순백의 광대한 빙하를 산허리로 흘려대는 거대한 산. 스위스알프스의 중심에 우뚝 솟은 융프라우는 1500년 전 게르만인들에게 최초의 신비와 경이를 맛보였을 것이다. 처녀, 성모를 뜻하는 융프라우(Jungfrau) 외에 다른 이름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눈 덮인 풍경을 육안으로 확인한 이들은, 풍경이 내뿜는 불가침(不可侵)의 명령에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그저 숙연해야 했다.   

    그러나 융프라우가 거느린 알프스 산들의 행렬을, 게르만인들은 끝내 넘어서지 않았던가. 대이동을 결행하고 마침내 성공까지 하지 않았나. 동행한 기업인 송진 동신항운 대표에게 물었다. 젊은 시절부터 융프라우와 운명 같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이다. 

    ― 신기하네요. 3000~4000m 높이에 눈까지 덮인 산을 어떻게 넘었을라나요? 
    ― 산맥 요소요소에 그들만의 패스(pass)가 있었던 거죠. 아무리 높은 산이어도 계곡이 있게 마련이죠. 장벽의 틈 같은.... 그 틈들이 대이동의 경로가 된 거죠. 그런 패스로 통하는 마을을 중심으로 나중에 민박과 금융도 발달했다 하고요. 
  • ▲ 융프라우 지역의 고지대를 서서히 운행하고 있는 열차의 모습.
    ▲ 융프라우 지역의 고지대를 서서히 운행하고 있는 열차의 모습.
    100년 전 '아이거 북벽' 뚫고 터널 내... 3500m 설산에 '유럽 最高'의 역 

    1500년 전 게르만인들이 경외와 증오와 허탈로 쳐다보았을 융프라우―. 중부 유럽을 힘과 몸집으로 석권했던 강인한 사나이들을 멀리 우회시켰던 융프라우를, 지금은 누구라도 쉽게 오른다. 열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해 융프라우 턱밑까지 치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게 스위스인들이 ‘유럽의 정상(Top of Europe)’이라고 자랑하는 융프라우요흐의 기차역이다. ‘요흐(Joch)’는 ‘산등성이’란 뜻이다. 융프라우 철도의 종착역이 자리잡은 융프라우요흐는 성산 융프라우의 정상으로 통하는 마지막 등성이다. 해발 3454m, 바로 아래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인 알레취 빙하의 장관이 펼쳐진다. 

    가장 험난한 루트를, 가장 대담하게... 융프라우 철도의 건설 방식

    험지를 오르는 산악인들의 마음가짐은 결연하고 절박하다. 프로 산악인들의 속내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가장 험난한 루트를,
    최소한의 장비만 갖추고,
    가장 대담한 방식으로 오른다―.  

    해발 3454m로 치고 올라간 융프라우 철도의 건설 과정도 전문 산악인들의 결연함과 닮았다. 

    고지대에 해당하는 인터라켄에서 쳐다볼 때조차, 하늘로 치솟은 설산 융프라우에 철도를 건설하는 일은 불가능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19세기 말 스위스의 한 기업인이 엄청난 발상을 하고 만다. 융프라우 옆으로 나란한 아이거(북벽의 조난사고로 유명한 그 산이다)와 묀히의 암벽에 터널을 뚫어, 열차를 융프라우 정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었다. 비현실적인 꿈과 함께 최초의 융프라우 철도 스케치를 남긴 아돌프 구레르 첼러는 1899년에 죽었지만, 그의 ‘몽상’은 1912년 실현된다. 

    4000m 높이의 아이거와 묀히의 암벽을(가장 험난한 루트를), 지금으로 치면 원시적인 19세기 말의 폭약으로 뚫어(최소한의 장비만을 갖추고), 우회 없이 터널을 통해 정상까지 치고 올라갔다(가장 대담한 방식으로 오른다). 유럽의 정상으로 향하는 융프라우 철도는 그렇게 완성됐다. 
  • ▲ 융프라우 철도 관광의 출발지인 인터라켄 동역. 이 조그마한 역에서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 융프라우 철도 관광의 출발지인 인터라켄 동역. 이 조그마한 역에서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유럽의 정상' 융프라우로 향하는 기차를 탄다.
    2020년 말 첨단 케이블 설치... 1시간 남짓이면 도착

    알프스의 설경 한가운데로 곧장 진입하는 융프라우 철도(www.jungfrau.co.kr)의 연간 이용객은 2012년 철도 건설 100년을 넘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간 100만 명을 돌파했다(2016년 집계). 관광객들은 일반 기차와 톱니 기차를 번갈아 타고, 아이거의 북벽을 관통해 성스러운 빙하의 산으로 올라간다. 호수 사이 마을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해 2시간 정도 걸린다. 융프라우요흐 위에서의 관광을 포함해 왕복 5~6시간 걸리는 융프라우 철도여행을 통해, 여행객들은 알프스가 품은 정취와 신성에 매료되고 만족한다.  

    그러나 융프라우 철도의 태생적인 몽상과 대담한 결행은 지금도 새롭게 진행 중이다. 2020년 12월을 목표로 ‘V-케이블웨이 프로젝트’가 가동 중이다. 최첨단 케이블카 설치를 통해 융프라우요흐의 마지막 간이역인 아이거글렛쳐(암벽을 관통하는 터널이 시작되는 곳이다)에 이르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겠다는 것이다. 

    100년 전 기상천외한 발상과 육중한 결행으로 탄생한 융프라우철도가 이제 시간과 싸움을 벌인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통한 시간 단축 이후에도, 열차로만 이뤄진 전통의 융프라우 여행을 선호하는 이들이 여전할지 모른다. ‘V-케이블웨이 프로젝트’에 열광해 게르만인들도 넘보지 못한 융프라우의 빠른 접수를 원하는 이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하늘로 치고 올라가는 융프라우 철도의 끝엔 지상에서 꿈꾸지 못할 풍경이 있다. 해발 4000m의 희박한 공기 속에서 순백의 눈과 은빛 빙하와 거친 암반과 강렬한 태양광이 서로 밀치고 껴안으며 만들어내는 절경을, 사람들은 황홀감에 젖은 채 만난다.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진군하려던, 그러나 넋 잃고 우회로를 찾아야 했던 게르만들의 아주 오랜 꿈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