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도 공장 준공식은 기업의 큰 이슈"… 反기업 정서 바뀌는 계기 되길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7일 기업인과 대화하는 모습. 이 행사에 삼성에서는 권오현 회장 (당시에는 부회장)이 참석헸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7일 기업인과 대화하는 모습. 이 행사에 삼성에서는 권오현 회장 (당시에는 부회장)이 참석헸다. ⓒ청와대 제공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일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순방 계획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노이다 신공장 준공식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며 "저는 이재용 부회장의 참석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확정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참석 여부는 삼성 측에 확인해달라"고 덧붙였다.

    이날 청와대의 고위 관계자는 기자들에게 청와대가 기업들에 우호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가 굉장히 어려움을 겪을 때 문재인 대통령께서 직접 중국 충칭 공장을 방문·격려했고, 또 롯데나 LG 배터리가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도 문제 해결을 주도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이번 노이다 공장 준공식이 기업에 큰 이슈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흐름에 비춰 문재인 대통령이 준공식에 참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이같은 메시지를 기업에 대한 '태도 변화' 암시로 받아들였다. 진보진영이 민주노총·한국노총 등을 노동자 단체들을 가까이하며 동시에 반기업·반재벌 저격수들을 꾸준히 영입해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날 청와대에서 나온 발언은 그간의 태도와는 확연히 달랐다. 뒤집어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의 대기업 이미지가 여론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잘 인식하고 있으며, 오는 8일 떠나는 인도-싱가포르 순방을 통해 이미지 반전을 꾀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삼성 측은 이런 문재인 정부의 급변한 태도에 당황스러운 기색이다. 사전에 약속된 내용이라면 곧바로 이재용 부회장의 인도 방문 계획이 나왔을 법 한데도,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왜였을까. 몇 가지 유추를 해 볼 수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현 정부 입장에서는 그간 소위 '적폐' 대상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혐의로 기소까지 당했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말을 구매해줬다는 의혹도 받았다. 급기야 지난해 2월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삼성 측의 당혹감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 청와대 브리핑 현장에서도 '문 대통령이 지금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는 게 적절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나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6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청와대가 초청했다는 설에 대해 "그렇지는 않다"며 "일반적으로 해외투자를 하면서 준공식 있을 때 참석하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했다. '경제 행보의 변화냐'고 묻는 질문에도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 외국에서 기업의 힘을 절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이번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계기로 정부가 기업에 겨눈 칼을 거둔 것이라는 시각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재벌 총수 일가의 비핵심 계열사 지분 매각을 요청, 회사 지배구조에 손을 대겠다는 의지를 여전히 피력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 내부거래 실태, 공익법인 실태조사도 내놓았다. 기업들은 과거 순환출자 구조대신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권고받았는데, 최근에는 지주회사가 대주주의 사익 편취 수단이라는 공격을 받고 있다.

    기업을 향한 규제 역시 눈에 띄게 풀리지는 않고 있다. 다른 나라에선 이미 시행되는 우버 택시 같은 사업 모델조차 한국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스스로 규제혁신점검회의를 한 차례 연기시켰던 것도 규제완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판단이 서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런 정부 정책 기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다 보니, "다급한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친기업 제스쳐만 취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반기업 정서를 이어가자니 급한 경제 성과가 눈에 밟히고, 친기업 행보로 전환하자니 자칫 지지층이 실망하는 메시지가 될 수 있어 딜레마에 빠졌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고용동향 지표·통계에서 일자리 증가율이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자 "일자리 수석·경제 수석 등을 교체해 정부의 경제정책에 속도감을 높이겠다"고 한 적이 있다.

    친기업과 반기업 사이를 고민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고할만한 롤모델은 없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 가서는 "53년 전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를 방문했을 당시 격려사에서도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각 나라의 과학·기술·경제·문화예술 분야에서 한국 정부나 기업과 뭔가 같이 해보자는 약속이 수없이 체결됐다"며 "깜짝 놀랐다. 대한민국이 이렇게 컸구나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막상 해외에 나가보니 '기업가가 애국자이고, 기업의 경쟁력이 곧 국력'이라는 것을 노 전 대통령은 절감했던 셈이다.

    경제정책을 전환하기에도 지금 시기가 나쁘지 않다. 지방선거가 이제 막 끝나 큰 선거가 당분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인도 방문을 계기로 정부의 기업에 대한 진정성이 진실로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