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추구하는 가치, 이념, 비전이 뭔가?… 한국당은 '존재의 이유'부터 밝히라
  • ▲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에 참석해 회의를 하고 있는 김성태 의원과 배현진 서울 송파을 한국당 당협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 준비위원회에 참석해 회의를 하고 있는 김성태 의원과 배현진 서울 송파을 한국당 당협위원장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선언한 사람은 바로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이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결정문을 직접 낭독했던 그가 갖는 정치적 상징성은 상당하다. 그리고 사실상 자유한국당을 오늘의 '암흑의 터널'로 불러들이는 초대장을 읽어내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자유한국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적잖은 한국당 지지자와 국민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략 어떤 취지와 배경에서 나온 아이디어인 줄은 짐작하겠으나 그럼에도 '무리하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치권 경력이 전무하고, 평생을 법조인으로 살아온 이 전 재판관에 제1야당의 운명을 맡겨보겠다는 발상은 애초부터 설득력이 없다. 

    취재 결과 실제 이 전 재판관이 진지한 차원에서 검토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 정도의 파격적 인물이 와야만 한국당을 옭아매는 '탄핵 프레임'을 벗어던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나온, 말 그대로 '아이디어' 수준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 전 재판관 말고도 거론되는 도올 김용옥 교수, 외과의사 이국종 교수 등도 아마 비슷한 맥락에서 언급된 이름들일 것이다. 본인들도 나설 생각이 없을 것이고, 한국당도 적극적으로 영입을 추진하려고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누구든 예외없이 자유롭게 비대위원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전례없는 정치적 위기를 맞은 한국당에 심폐소생술 정도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그 누구인들 마다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로부터 직접 지원 및 추천을 받겠다는 시도도 나름대로 보완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당 비대위 구성을 둘러싸고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은 비대위의 필요성과 역할이라는 본질에서 다소 멀어져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계속해서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집권여당이 아무리 승승장구하더라도, 그럼에도 대한민국에는 반드시 건강하고 튼튼한 보수우파 정당이 필요하다. 정치가 올바르게 굴러가기 위한 필수 조건은 견제와 균형이며, 반대 세력의 철저한 감시다. 

    추구해야 할 가치, 이념, 비전 있어야

    국민들이 지난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을 외면한 이유가, 결코 보수우파 정당의 '소멸'을 바랐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자유한국당이 제대로 된 야당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실망감에서 비롯된 심판적 성격이 강하다. 투표 자체를 거부한 보수우파 유권자의 마음을 한국당은 잊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한국당 비대위에게 주어진 역할은 비교적 명확하다. 한국당이 다시 제1야당으로서, 그리고 제대로 된 보수 우파 정당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권력의 실타래를 이해할 수 있어야하고, 한국당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이념에 대해서도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다시 국민들이 자유한국당에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자유한국당이 얼마나 심각한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적폐 청산'이라는 서슬퍼런 칼을 휘두르는 이 정권과, 합리적 비판 세력에 대해서도 무분별한 테러를 일삼는 과격 지지자들의 압박 속에서 그 누가 선뜻 한국당의 선장 자리를 받아들이겠는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비대위원장으로 오면 좋겠다는 말에 한 한국당 관계자는 "세무조사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할걸요?"라고 답하기도 했다. 결코 가벼운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은 본질에서 멀어져선 안 된다. 이제 더 이상 국민들에게 엄청난 놀라움과 신선함을 선사할 수 있는 카드라고 할만한 것도 많이 남아있지 않다. 그리고 과연 한국당 지지자와 국민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 한국당을 이끌어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파격과 신선함만으로 돌파할 수 있는 성격의 위기가 아니다. 정체성과 존립이 달린 문제다. "왜 당신들이 대한민국에 필요해?"라고 물었을 때 그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오지 않는다면 이번 비대위 역시 한국당의 처절한 몰락의 한 과정의 한 장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