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의 개헌 ‘방향은 아몰랑, 날짜는 6·13’?

[통일 대한민국 초석은 개헌… 어디로 어떻게? - ①]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2.18 13:24:36

31년만에 국가운영원리를 새로 쓰는 문제로 정치권이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국회는 헌법과 선거제도를 묶어 논의하는 헌정특위(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연일 논의의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까지 국회의 논의를 기다려보겠다는 신년기자회견에서의 입장을 파기하고,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헌법자문특위를 구성했다. 특위는 내달초까지 대통령이 발의할 헌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이뤄지면, 정국은 급류를 만날 것으로 보인다. 개헌 논의에는 무수한 쟁점이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백가쟁명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방향을 잃기 쉽다. 이번 설 연휴는 정치권의 휴지기이기도 하지만 개헌 논의의 쉼표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 〈뉴데일리〉는 △개헌의 주체 △개헌의 시점 △개헌의 대상 △개헌의 방향 등 제쟁점을 연속기획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① 31년만에 새로 쓰는 국가운영원리… 날짜는 6·13?
② 지방분권 개헌, 과연 모두가 합의했나… 분권의 전제는
③ 선거제도 개편 없이 권력구조 개편 없다?
④ 서독은 통일, 월남은 패망… 권력구조 달랐다


▲ 국회 헌정특위 위원인 자유한국당 안상수 의원은 6·13 지방선거와 개헌국민투표의 동시실시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놓지 않으면서도, 권력구조 개편을 제외한 개헌 시도는 있을 수 없다고 단호히 선을 그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 시점을 6·13 지방선거와의 동시투표로 못박았다. 시간이 없다면서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난달 신년기자회견에서는 합의가 어려운 권력구조 개편은 제외하고, 이견이 없다는 지방분권과 기본권 등의 내용으로 개헌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청와대·여당의 대야(對野) 공세의 초점은 이처럼 시점에 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를 실시해 개헌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것이다. 각 정당이 공통으로 공약한 게 아니었느냐는 말도 빠지지 않는다. 대선후보였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이러한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개헌 시점이 과연 내용이나 대상, 방향에 우선할 수 있는 것이냐는 점이다. 예를 들어, 개헌의 내용이 퇴행적이라면 빠르든 늦든 시점에 관계없이 그러한 개헌은 안될 말이다. 먼저 국회에서 합의가 이뤄질 수 있고,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개헌안이 마련돼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셈이다.

대선 시점에 개헌이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의 공통 공약으로 도출될 수 있었던 것은 개헌의 방향이 당연히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분산에 초점이 있을 것이라는 점에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치러지는 대선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누적된 모순이 폭발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예정보다 빠르게 갑자기 치러졌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한 대통령 권력의 분산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개헌이 이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권력구조 개편을 제외한 개헌안이 발의된다고 하면, 애초에 공약을 했던 상황과는 전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애초의 약속은 실효된다고 봐야 하니, 청와대·여당의 공세는 허공을 향한 주먹 휘두르기라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다.

이와 관련해, 강경한 개헌론자인 김성태 원내대표도 "제왕적 권력의 연장을 꿈꾸는 개헌안을 6·13 지방선거에 (국민투표에) 부칠 수는 없다"며 "마치 지방분권만이 모든 개헌을 다 이야기하는 것처럼 호도되는 작금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런 측면에서 보면 개헌의 내용과 방향에 관계없이 무조건 6·13 지방선거와 동시국민투표는 안 된다고 고집하는 태도도 옳지 않다. 권력구조 개편의 방향만 올바르다면 지방선거와 동시투표도 가능한 것으로 여지를 열어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보면 개헌의 시점은 개헌의 내용에 종속된 변수가 된다. 권력구조 개편에 있어서 전향적인 개헌안이 마련된다면, 한국당의 많은 의원들도 지방선거와 동시투표를 꺼릴 이유는 없을 것이다.

곽진영 건국대 교수는 "(개헌국민투표의) 시기는 예민한 문제"라면서도 "효율성과 비용이라는 측면에서는, 함께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물론 "대의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의원내각제가 원형"이라는 지적은 빼놓지 않았다.

국회 헌정특위 위원인 한국당 3선 중진 안상수 의원은 이와 관련해 "날짜를 지방선거에 맞추자는 것은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라고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대통령제 권력구조가 (개편 합의가) 안 되면 지방분권과 기본권만 통과시켜보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기자회견에서 6·13 지방선거와 동시국민투표를 하려면 3월에 발의가 돼야 한다는 정치 스케쥴을 제시했지만, 이는 현행 헌법 규정은 물론 현행 헌법과 동일한 규정에 따라 개정된 과거의 개헌 사례와도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6월 13일에 치러지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해서는 3월까지 개헌안이 발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로드맵' 제시에는 '팩트'가 잘못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당 일각에서도 잘못된 시각을 갖고 결과적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동일한 오류를 범하는 견해도 보인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최근 밝힌 견해도 그 중 일부다.

김문수 전 지사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서 헌법개정과 관련한 현행 헌법 제129조와 제130조 조항을 거론한 뒤 △20일 이상의 공고 △60일 이내의 의결 △30일 이내의 국민투표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이를 단순합산해 개헌에는 110일 이상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60일 이내 의결 △30일 이내 국민투표는 그 자체의 문맥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그 기간을 꽉 채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헌법 제129조에 규정된 공고도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긴 하지만, 공고 중에 언제든 국회에서 의결할 수 있고 20일의 공고 기간이 도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 제130조 1항에서 헌법개정안이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할 것을 규정했을 뿐, 공고가 끝난 날로부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헌법개정에 관한 현행 헌법 128~130조는 제5공화국 헌법 129~131조와 내용이 동일하다.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문수 전 지사의 주장대로라면 제5공화국 헌법을 지난 1987년 국회에서 개정할 때도 그 정도 시간이 걸렸어야 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5공화국 헌법의 개정 과정은 1987년 9월 18일, 국회에서 민정당·신민당·민주당·국민당의 4개 원내교섭단체의 합의에 의한 개헌안의 공동 발의가 있었다. 사흘 뒤인 21일 국무회의가 열려 개헌안의 공고가 결정됐다.

공고된 개헌안은 공고한 날로부터 21일이 도과한 10월 12일에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후 국회 의결로부터 보름이 경과한 27일에 국민투표가 실시돼 통과됐다. 헌법 규정에 따라, 각각 '60일 이내'에 의결했고,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했기 때문에 헌법 절차에 전혀 위배된 것이 없다.

개헌안의 발의로부터 국민투표까지 한 달 아흐레만에 끝났다. 6·13 지방선거 때 동시국민투표를 한다고 가정하고 역산해보면 개헌안은 5월초까지만 발의돼도 충분하다. 3월까지 발의해야 한다고 서두를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법률가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설혹 몰랐더라도 청와대 참모들이 과거의 개헌 사례와 소요된 일정을 정리해서 보고했을텐데, 굳이 3월 발의를 서두르는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치적 스케쥴을 보더라도 대통령은 적어도 4월말까지는 차분히 국회 헌정특위의 논의를 기다려볼 일이다. 개헌의 주체는 역시 국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발의하는 개헌안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정해구 정책기획위원장이 자문한 헌법안은 우리 사회에 격론을 불러일으키면서 국론분열만 가중시킬 위험성이 높다.

개헌안은 누가 발의하더라도 결국 국회 재적 3분의 2 이상 의원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국회 헌정특위 논의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3개 원내교섭단체의 합의가 이뤄진다면 국회 의결은 담보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반면 국회에서 전혀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한다면, 오히려 부결이 담보되는 셈이다. 야당이 이미 개헌저지선을 확고히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는 사태는 국정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개연성이 크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이 갑자기 정해구 위원장을 통해서 헌법자문특위를 정부 주도로 구성하고 가동한 것은 생뚱맞다"며 "대통령이 나서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야당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도 "대통령 중심의 개헌 논의는 불행한 일로 결국은 국회 중심의 개헌론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했다가 실패하면 정치적 중심에 서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했다.


▲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개헌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받은 정해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은 과거 저술 전력으로 미뤄볼 때, 헌법안 마련에 적절한 인물인지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정해구 위원장이 구성한 헌법자문특위 위원 면면과 관련해서도 벌써부터 코드 논란이 쏟아지고 있다. ⓒ뉴데일리 공준표 기자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자문한다는 정해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장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이러한 우려를 부추긴다.

정해구 위원장 본인부터가 과거 전력을 감안하면 부적절한 인사로 의구심을 사고 있거니와, 설 연휴 직전인 13일 꾸려진 헌법자문특위의 면면을 살핀 복수의 매체에서는 벌써부터 '코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헌법자문특위의 정부형태 분과위원장으로 선임된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와 총강·기본권 분과위원인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014년 헌법재판소의 구 통진당 해산심판사건 변론 당시 위헌정당으로 결정돼 해산된 통진당 측의 참고인으로 나섰다.

국민참여본부 위원으로 선임된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에도 참여했었고, 참여연대가 자체적으로 발표한 개헌 주장에도 관여했다. 논란을 일으킨 자문안마다 전부 이름을 올렸던 셈이다.

이렇게 구성된 헌법자문특위는 이미 국민의 뜻과는 완전히 무관한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특히 '사회주의헌법' 논란을 일으켜 이미 국민 상당수의 거부 반응을 야기한 개헌특위 자문위 안에 관여했던 인사가 여러 가지 형태로 다시 헌법자문특위에 들어가게 된 것은, 헌법자문특위가 개헌안에 국민의 공감대를 담는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러한 구성으로 이뤄진 헌법자문특위는 국회에서 의결될 수 있는 헌법안을 만들 가능성은 전혀 엿보이지 않고, 오히려 대통령 발의 개헌안 자문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 사회의 금기에 균열을 내려는 여러 급진적인 시도가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정책기획위원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개헌안을 만들라고 지시받은 개헌 주도자 정해구라는 사람은 지난 1997년에 쓴 책에서 '해방의 시점에서 요구되는 혁명의 내용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 혁명'이라며 '소련군이 진주한 북한에서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미군이 점령한 남한에서는 미군의 반혁명정책에 의해 결국 좌절됐다'고 서술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혁명에 성공했다니 돌은 사람 아닌가"라며 "대한민국이 미군 밑에서 혁명에 좌절한 나라라고 하는 인간이 10차 개헌안을 만드는 것부터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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