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은 통일, 월남은 패망… 권력구조 달랐다

[통일 대한민국 초석은 개헌… 어디로 어떻게? - ④]

정도원 기자 프로필 보기 | 최종편집 2018.02.19 08:12:03

31년만에 국가운영원리를 새로 쓰는 문제로 정치권이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국회는 헌법과 선거제도를 묶어 논의하는 헌정특위(헌법개정·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연일 논의의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까지 국회의 논의를 기다려보겠다는 신년기자회견에서의 입장을 파기하고,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에 헌법자문특위를 구성했다. 특위는 내달초까지 대통령이 발의할 헌법안을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개헌 발의가 이뤄지면, 정국은 급류를 만날 것으로 보인다. 개헌 논의에는 무수한 쟁점이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백가쟁명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방향을 잃기 쉽다. 이번 설 연휴는 정치권의 휴지기이기도 하지만 개헌 논의의 쉼표이기도 하다. 이에 본지 〈뉴데일리〉는 △개헌의 주체 △개헌의 시점 △개헌의 대상 △개헌의 방향 등 제쟁점을 연속기획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① 31년만에 새로 쓰는 국가운영원리… 날짜는 6·13?
② 지방분권 개헌, 과연 모두가 합의했나… 분권의 전제는
③ 선거제도 개편 없이 권력구조 개편 없다?
④ 서독은 통일, 월남은 패망… 권력구조 달랐다


▲ 자유한국당 김무성 전 대표최고위원이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추도식에서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로 줄곧 실패한 대통령, 실패한 정권이 이어졌다. 누적된 제왕적 대통령제의 병폐는 점점 극렬한 형태로 그 모순을 노출하고 있다. 이제는 권력구조 개편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됐다.

그렇다면 권력구조 개편은 어떠한 방향으로 이뤄져야 할까.

이를 둘러싸고 개헌론이 본격적으로 분출된 지난 2016년 연말부터 국회 내외에서는 수십 차례의 토론회가 열려왔다.

정치권 관계자들과 헌법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하면, 우리가 택해야 할 새로운 권력구조는 △대한민국이 현재 처한 여건을 반영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치유 △정치성과에 따른 국민의 평가를 상시적으로 반영 △정치과잉현상을 방지하고 경제·사회 전반으로 수평적 권력분산 △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해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권력구조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올해로 건국 70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이 현재 처해 있는 여건은 어떤 상황인가.

1948년으로부터 1961년까지를 식민지와 동족상잔의 참상을 겪은 황무지에서 나라를 일으켜세운 건국기(建國期), 1962년부터 1986년까지를 고도 성장을 이뤄내고 먹고살 기반을 마련한 산업화기(産業化期), 1987년부터 현재까지를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한 민주화기(民主化期)로 구분하면, 이 건국~산업화~민주화의 시기는 두루 묶어서 자유대한민국의 창업기(創業期)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창업기(創業期)를 넘어 수성기(守成期)로 접어들었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당태종이 방현령과 위징을 좌우에 놓고 "창업과 수성 중 어떤 것이 어려운 일이냐"고 물었던 것처럼, 창업기에는 창업기에 맞는 방식이 있고 수성기에는 수성에 적합한 방식이 있다.

창업을 할 때에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와 폐허 속에서 나라를 일으켜세우고 기틀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대형선박이 이안(移岸)할 때,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예인선으로 하여금 일정 기간 동안 끌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이제 선박이 망망대해로 나왔다. 이제는 배를 어디로 끌고가는 것보다는, 배의 내부에서 누군가가 구멍을 뚫거나 뒤엎는 것을 방지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됐다.

창업기에 집중됐던 권력을 수성기에 적합하도록 과감하게 분산해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서 나온다.

영국의 대표적인 우파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이 "이제 우리의 관심은 특별히 어떤 곳을 향해서 항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아무도 배를 뒤흔들지 못하게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헌법학자로 행정안전부장관을 역임한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도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건국기와 고도성장기에는 기능을 했지만, 그 이후에는 한국에서 기능이 소멸했다"며 "유지할수록 부작용만 많고 순기능은 없다"고 단언했다.


▲ 독일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1980년 총선에서 운동권 세력의 대거 등원으로 당내에서 좌경화 압박을 받자, 연정파트너인 자민당의 이탈과 내각불신임결의안 제출로 총선 2년 만에 실각했다. ⓒ연합뉴스 사진DB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30년 넘게 유지하며, 대통령선거를 거듭할 때마다 심각해지고 있는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치유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도 권력구조 개편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독점과 배제의 정치"라며 "독점과 배제의 정치에서 견제와 균형의 민주주의로 이행해달라는 게 국민적 요구"라고 전했다.

정종섭 의원도 "국민 과반수의 지지도 얻지 않은 세력이 (대선에서)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국가권력을 독점해 상대를 배제하고 휘두른다"며 "독점과 배제,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대척점"이라고 한탄했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제도적으로 원내(院內)에서 안정 다수 세력을 확보해야 국정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개선이 불가피하다. 연립내각의 구성을 강제하거나 촉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험한 양 극단의 세력은 배제되고, 정치는 중도실용으로 수렴되며 온건해진다. 수권(受權)을 하기 위해서는 위험한 주장을 스스로 버릴 수밖에 없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집권을 위해 좌경모험주의를 버리고 '제3의 길'을 제창한 것이나,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중도좌파 사민당 출신 총리인데도 오히려 노동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이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극단주의에 부화뇌동해 '튀는 발언'과 정책으로 지지층을 결집해야 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와는 상반된 정치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독일 사민당의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가 실각했던 과정을 되돌이켜볼 필요도 있다.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는 중도좌파 사민당 출신 총리로, 경제적으로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재정확장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과, 정치적으로는 소련·동독 등 동구권과의 화해하는 '동방정책'을 계속해서 추진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는 지켜야할 '선'을 넘어서지는 않았기에, 자유주의 우파 자민당이 연립내각을 통해 원내 안정 의석으로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헬무트 슈미트 전 총리도 연정을 유지하기 위해 소련이 동독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자, 미국의 전략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등 국가안보에서는 양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문제는 1980년 총선 이후에 일어났다. 68혁명 때 좌파운동권으로 활동했던 학생운동가들이 이 시기에 대거 사민당 정치인으로 탈바꿈해서 원내에 진입했는데, 이들은 △부자증세 △대기업 국·공유화 △미국 전략핵 재배치 반대 등 좌경모험주의로 달려갔다.

제왕적 대통령제였다면 이미 1980년 선거에서 결판이 나버린 이상, 당시 유권자가 동의하지 않았던 좌경모험주의적 정책이 마구 추진되더라도 국민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대통령 임기 동안 어쩔 도리가 없이 서독이 망하는 것을 지켜만 봐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서독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사민당과 연립하고 있던 자민당은 이러한 사민당의 운동권스러운 변질을 두고보지 않았다. 자민당은 1982년 연정에서 이탈해 우파정당인 기민당과 함께 내각불신임결의안을 제출했고, 연방의회에서 가결되면서 좌경화로 치닫고 있던 헬무트 슈미트 내각은 1980년 총선으로부터 2년 만에 붕괴됐다.

국민 대다수의 합리적이고 건전한 상식과 유리된 정책을 추진하는 내각에 대해서는, 연립 세력의 이탈으로 인한 내각불신임이라는 방식으로 확실한 '안전핀'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제왕적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라고 하면, 평창동계올림픽을 맞이해 대선 때 국민들로부터 동의를 받지 않았던 각종 대북 저자세 정책이 과연 가능할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구촌 대축제인 평창동계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국민조차 단합하고 통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 구 서독은 1949년 건국 이후 일관해서 의원내각제 권력구조를 유지한 끝에 1990년 공산주의 동독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뤄냈다. 사진은 독일 기민당의 헬무트 콜 전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분단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장면. ⓒ뉴시스 사진DB

국민으로부터 평가받은 정책을 추진하고, 그 성과에 따른 국민의 평가가 다시 국정에 상시적으로 반영되는 피드백(Feedback)이 활발한 권력구조로 개편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빼놓을 수 없다.

마가렛 대처 전 총리는 영국이 1970년대 중반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 파탄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강성 노조의 파업이 끊이지 않자 "영국병을 치유하겠다"는 약속으로 1979년 총선을 치러냈고, 그 결과 보수당이 승리하며 집권했다.

대처 총리는 '대처리즘'이라 불리는 과감한 개혁정책으로 산업구조조정과 강성귀족노조의 영향력 분쇄, 과잉복지 축소를 이끌었다. 이는 총선을 통해 유권자의 동의를 얻은 사안이었으므로 강력한 정책적 추동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 국민들이 1983년과 1987년 총선에서도 계속해서 보수당의 개혁정책을 지지했으므로, 대처 총리는 10년을 총리로 재임하며 개혁을 일정 부분 완수할 수 있었다. 정해진 임기가 없이, 국정운영을 통해 성과를 내면 국민이 이를 평가하고, 성과를 못 내면 언제라도 물러나는 내각제의 장점이 극대화된 사례다.

흔히 의원내각제는 제왕적 대통령제에 비해 정책추진력이 떨어진다고 하지만, 이는 단견이다. 선거 때 내세워 국민의 동의를 받은 정책에 있어서는 내각제도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한다. 다만 애초에 선거 때 쟁점도 되지 않았던 사안을 마음대로 하려 하면, 강력한 제동이 걸릴 뿐이다.

대처 총리도 10년을 재임하자 오만해졌음인지 유럽통합과 세제 개편을 마음대로 하려 했는데, 이 두 가지 사안은 1987년 총선에서 쟁점이 되지 않아 국민의 평가를 받은 적이 없었던 사안이었다. 이를 무리하게 독단적으로 추진하려던 대처 총리는 1990년 실각했다. 이 또한 내각제의 장점이 발휘된 사례로 거론된다.

지금 권력사유화와 국정농단이 발단이 돼서 치러진 지난 조기 대선에서 수립된 정권이, 정작 당시에는 쟁점이 되지 않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했던 정책까지 마구잡이로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의원내각제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로 당연히 내각과 의회가 동시에 물러난 뒤에 다시 총선을 치러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영기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촛불(집회)에서 나온 구호는 '권력사유화 국정농단 박근혜는 하야하라'였는데 그거 말고 또 있었느냐"며 "원전도 없애야겠다는 둥 최저임금을 어떻게 한다는 둥 이런 것을 촛불정신이라는데, 촛불을 (문재인정권이) 하이재킹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권력분산을 정치권 내에서의 권력분산에 머물지 않고, 경제·사회 각 분야로 분권해 정치과잉현상을 해소하는 것도 권력구조 개편의 중요한 과제로 지적된다.

지금은 모든 권력이 제왕적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데, 복잡해진 현대사회에서 대통령이 모든 것을 만기친람(萬機親覽)할 수 없으니 결국 소수 측근들이 전횡을 하게 된다. 단순 임명직이라 아무런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청와대 비서 중의 실장이 대기업 총수를 마음대로 오라가라 할 정도로 정치과잉이 심각한 상황이다.

국무위원인 장관들의 민주적 정당성을 증대시켜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하고, 대통령 주변에 집중돼 있는 권력을 헌법기관인 국무회의와 내각 각료에게로 분산해야 한다. 대통령 하나 세워내면 인생 고칠 생각으로, 유력 대권주자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정치낭인들을 일소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국회 헌정특위 위원인 한국당 안상수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분권형 개헌을 거부하는 것과 관련해 "막상 해보니까 너무 좋지 않은가 싶어 밑에서 비서하는 친구들이 '(분권형) 개헌하지 맙시다'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종섭 의원은 "대통령이 자기자신을 미국식 대통령이라고 생각했을까, 혹시 국왕이라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라며 "나는 (역대 대통령들이 스스로를) 국왕이라 생각했다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나아가 "국왕이 아니라면 그렇게 국정을 운영했을 수가 없다"며 "(대통령이 되면 마치 국왕처럼 권력을) 독식하기 때문에, 한 사람 만들어내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출세도 하고 돈도 번다"고 개탄했다.

마지막으로 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해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권력구조를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로 통일을 이뤄낸 사례가 없다. 월남은 1967년 헌법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평했던 4년 중임 정·부통령제를 채택했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로 흐르면서 결국 적화됐다.

반면 1949년 이래 일관해서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서독은 마침내 1990년 공산주의 동독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대표는 "통일 이전까지는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가야 하고, 통일 이후에 순수내각제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는 현실은 정반대라는 비판이 나온다.


▲ 자유월남(남베트남)은 4년 중임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1967년 헌법에서 채택했다가 결국 공산주의 월맹에 패망했다. 사이공의 대통령궁 앞에 진주한 월맹군 전차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이처럼 △대한민국이 현재 처한 여건을 반영 △국론분열과 사회갈등을 치유 △정치성과에 따른 국민의 평가를 상시적으로 반영 △정치과잉현상을 방지하고 경제·사회 전반으로 수평적 권력분산 △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해 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이에 대응한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헌법에서 총리의 존재의의는 '방탄총리' 외에는 없다. 국정최고책임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내각총사퇴와 의회해산을 거쳐 언제든 다시 선거를 치르면 되는 의원내각제와는 달리, 제왕적 대통령제에서는 아무리 대통령이 국정을 그릇 운영해도 임기 동안에는 끌어내릴 수가 없으니 대신 총리가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역할 외에는 달리 존재의의가 없다.

국가원수(Head of State)로서의 대통령과, 행정수반(Head of Government)으로서의 국무총리를 완전히 분리해내, 원내 다수 의석을 형성한 세력이 행정수반인 총리를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정종섭 의원은 "제왕적 대통령이 겸임하고 있는 국가원수와 행정수반을 대통령과 수상(首相)으로 나눠서, 행정수반을 수상에게 넘기는 것"이라며 "원내 다수 세력이 실패하면, 내각불신임해서 총사퇴시키고 국회는 해산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행정부도 국민에게 책임을 지고, 국회도 마찬가지로 국민에게 책임을 다시 묻는, 그야말로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책임정치를 하자는 것인데 왜 안 되느냐"며 "내각은 확실하게 총선을 통해 국민이 구성하고, 국정을 잘못 운영하면 내각불신임과 국회해산으로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가자"고 덧붙였다.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도록 하면, 자연스레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세력은 원내 다수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극좌·극우의 양 극단 정치를 피하고 국민의 건전한 법감정과 상식에 맞는 방향으로 수렴하는 정치가 이뤄지게 된다.

행정수반인 총리는 정해진 임기가 없이 수시로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적 평가에 따라 내각불신임과 의회해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자신의 지지층만 결집하기 위한 극단적 행보가 자연스레 견제된다.

또, 언제 어떤 식으로 연립을 재구성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야당을 적(敵)으로 돌릴 수 없고 진정한 의미에서 국정의 파트너로 대해야만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하물며 자신의 내각을 지탱하고 있는 원천인 여당을 적으로 돌리거나, 당권을 전횡하려 하는 시도는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와는 운니지차(雲泥之差)의 국정운영이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가능해지는 셈이다.

정종섭 의원은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리켜 "많은 사람들이 장관들 이야기도 듣고 야당 비판도 들으라고 하지만, 대통령은 듣지를 않는다"며 "그러다가 나중에는 '나는 국민만 보고 가겠다'고 하는데, 그런 국민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을 국민생각이라 생각하면서 가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나아가 "(역대 제왕적 대통령들이) 야당을 국정파트너라 하지만, 내심 파트너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급기야 여당이 대통령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여당조차 적으로 돌리는 정치"라고 비판했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도 "지금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양극화인데, 양극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타협과 협상이라는 시대정신"이라며 "내각제 권력구조와 다당제를 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한국당이 먼저 과감하게 제안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정해진 임기가 없이 상시적인 국민의 국정평가를 통해 잘하면 계속하고 못하면 언제든 다시 선거를 치를 수 있는 방향으로 권력구조가 개편되면,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의 정권초기 권력집중과 정권중후반기 권력공백이 모두 방지된다.


▲ 일본은 의원입각이 헌법으로 제도화돼 있어, 설령 총리라 할지라도 제왕적 총리처럼 국정을 전횡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권력이 분산돼 있다. 사진은 개각 이후 아소 다로 재무상,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등 유임된 핵심 의원각료들과 함께 하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의 모습. ⓒ뉴시스 사진DB

국무위원인 내각 각료, 즉 장관의 의원입각을 제도화함으로써 국무위원이 독자적인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성문헌법으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은 헌법 제68조 1항 단서에서 국무위원의 과반수는 국회의원으로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실제의 운영에서는 각료 전원을 의원으로 하는 게 헌정의 상례로 돼 있으며, 최후의 비(非)의원 장관은 지난 2012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내각에서의 방위대신을 맡았던 모리모토 사토시(森本敏)가 마지막이었다.

불문헌법으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도 내각 각료의 거의 전원을 하원의원으로 구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돼 있다.

지금은 장관이 그저 임명직이고 심지어 인사청문회만 거칠 뿐 국회의 임명동의조차 필요없다보니, 전혀 민주적 정당성이 부여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열면 다들 하명(下命)하는 말씀을 받아적기에 바쁘다.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 국무위원을 구성하게끔 함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이나 제왕적 총리의 등장 우려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의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대통령비서실의 힘을 빼고 이들에 의한 국정농단을 방지할 수 있다.

선거에 나가 국민에 의해 평가받을 자신은 없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모시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든 뒤 대통령비서실에나 들어가 인생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으로 '로또긁기'식 정치인생을 살고 있는 정치낭인들을 정치권에서 일소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국무위원(행정안전부장관)을 지냈던 한국당 정종섭 의원은 "국무회의는 대통령이 말하면 장관들은 그냥 다 따라적는 자리"라며 "권력은 (청와대) 수석들이 호가호위로 다 휘두른다"고 털어놨다.

이어 "대통령을 왕이라 생각하니, 소수 측근 세력들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며 "부패할 수밖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제왕적 권력을 철저히 분산하면, 제왕적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권력이 '대통령 선거'라는 1회성 이벤트를 통해 일거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적(敵)의 손아귀에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상황도 제도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는 "대한민국 통치의 기본원리인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는 국가정체성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는 헌법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100번, 1000번을 집어넣는다고 지켜질 수 있는 게 아니라,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세력이 일거에 모든 권력을 수중에 쥐는 상황을 제도적으로 방지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위험성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제왕적 대통령의 자리를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적(敵)이 일거에 차지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위험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리켜 "말이 제왕적 대통령제일 뿐, 옛날의 제왕보다 더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대통령이 휘두를 수 있게 돼 있는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제도적으로 지켜내기 위한 분권형 개헌에 착수할 뜻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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