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전 이미 신당 윤곽 읽어내… 아들 정호준만은 맘대로 안 되는 게 답답?
  • 난세는 영웅호걸을 부른다. 하나의 체제가 끝장나고 새로운 체제가 수립될 때만큼 영걸이 등장하기에 적기는 없다. 그간 신당 추진 세력에 대권주자급 인물이 없음을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박주선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권주자는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은 이를 함축한 말이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分黨) 국면에 돌입했다. 오랫동안 한국정치사를 억눌러온 친노패권주의·486 세력을 일소하고,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중도개혁·민생실용을 지향하며 국민들로부터 널리 수권 능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신당을 출범시킬 절호의 기회다. 국민의 기대도 높다.

    "친노를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에서 누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도드라진 활약을 보일까. 내년 4월 13일, 친노 문재인 체제라는 구태의연한 체제가 허물어져 내릴 때, 국민은 누구의 업적이 가장 컸다고 손을 들어줄까. 〈뉴데일리〉는 새정치연합의 분당 국면을 맞이해 신당십이걸(新黨十二傑) 기획 연재를 통해 이를 조명해 본다.

    ① 안철수와 선시어외(先始於隗)
    ② 김한길과 기인지우(杞人之憂)
    ③ 박주선과 성중형외(誠中形外)
    ④ 박지원과 백척간두(百尺竿頭)
    ⑤ 천정배와 계명구도(鷄鳴狗盜)
    ⑥ 문병호와 수어지교(水魚之交)
    ⑦ 주승용과 삼인성호(三人成虎)
    ⑧ 유성엽과 일파만파(一波萬波)
    ⑨ 이윤석과 화룡점정(畵龍點睛)
    ⑩ 황주홍과 기렵우인(期獵虞人)
    ⑪ 정대철과 신기묘산(神機妙算)


  • ▲ 신당십이걸 기획열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신당십이걸 기획열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가 4·29 재보선에서 영패한 뒤 책임론에 시달리고, 이에 친노(親盧) 세력은 김상곤 혁신위원장을 내세워 면피용 거짓 혁신으로 맞대응하던 지난해 7월, 야권 한가운데에서 난데없이 폭탄이 터졌다.

    이 당의 정대철 상임고문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한길·안철수 대표 등 현역 의원 20여 명이 신당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며 "신당에 동참할 의사를 밝힌 의원 중 절반은 호남 의원이고 서울·수도권과 충청권 의원도 일부 있다"고 '폭탄 선언'을 한 것이다.

    여기에 "호남에서는 천정배 의원과 박주선 의원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까지는 아니지만 일부 여권 인사들도 합류할 것"이라고 신당의 상세한 '청사진'을 풀어놓았다.

    다만 "신당 참여 의사를 밝힌 의원들이 실제로 탈당에 나서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하게 될 것"이라면서 "박주선 의원의 경우에는 결단의 순간이 임박했다"고 첨언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야권은 벌집 쑤신 듯한 분위기였다. 안철수 의원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정대철 고문을 못 뵌지 한참 됐다"며 "(탈당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김한길 의원도 "금시초문"이라며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선을 그었다.

    거론된 당사자들이 부인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자, 한 친노 성향 매체는 "신당은 조선일보가 만든다"며 연일 탈당설을 보도하고 있는 조선일보를 공격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살펴보면 모든 설계가 다 현실화된 것이나 다름없다. 박주선 의원이 가장 이른 9월 22일에 탈당했고, 이후 12월 13일 안철수 의원, 1월 3일 김한길 의원의 순서대로 탈당이 뒤따랐다. 호남이 신당 지분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것도 틀리지 않은 내용이다. 조만간 현역 의원 20여 명으로 원내교섭단체가 구성될 것이라는 것은 이제 와서는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있다.

    원외에 머무르고 있는 상임고문 한 명이, 아직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점치지조차 못하고 있던 신당의 윤곽을 반 년 전에 정확하게 예측해낸 셈이다.

    한(漢) 고조 유방(劉邦)은 장량(張良)에 대해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워 천 리 밖에서의 승리를 결정짓는다"고 평했었다. 친노당(親盧黨)이 몰락하고 새로운 신당이 들어서는 야권 재편의 정국 속에서 정대철 고문이 행한 역할이야말로 장량에 비견할 만하다. 원외에서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신당을 설계해, 원내의 정치 지평을 뒤흔들어버린 것이다.

    60여 명의 현역 의원이 공고히 뭉친 친노·운동권·486 세력을 뒷배경에 둔 문재인 대표가 정대철 고문에게 완패한 셈이다. 신당 정국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정치적 미래는 완전히 끝장났고, 4·13 총선 이후 사멸하는 수순만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게 중론이다.

  • ▲ 더불어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이 지난해 11월 29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통합신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더불어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이 지난해 11월 29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통합신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대철 고문의 다음 행보는 어떻게 될까.

    지난 4일로 생일을 맞은 정대철 고문은 1944년생이다. 본인이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거나 할 입장은 아니다.

    정대철 고문을 모셨던 관계자는 5일 본지와 통화에서 "정대철 고문과 함께 탈당하기로 한 전직 의원들 중에서 막내가 홍기훈 의원(1953년생)"이라며 "다시 총선에 나가거나 할 사람들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공천이나 정치적 지분 등을 탐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표를 위시한 친노 세력은 "당을 흔드는 사람들은 공천권을 탐하는 세력"이라고 연일 맹비난하지만 '허수아비 때리기'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대철 고문의 '결단'은 무엇 때문일까.

    이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체제로는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가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로지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중도개혁 신당을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며, 지난해 11월 29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통합신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의 정대철 고문의 메시지를 곱씹어보라고 귀띔했다.

    이날 정대철 고문은 "저쪽(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이 잘못하는데도 항상 (지지율이) 40%, 우리는 20%밖에 되지 않는다"며 "문재인 대표가 있는 이 당 가지고는 안 되고 리셔플, 재정비를 해서 신당을 만들어가면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동의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신당이 지향해야 할 가치와 비전으로 △문재인 대표는 선거에서 패배해도 안 물러나는데, 그래서는 안 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진영 논리에 빠져서 과도하게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운동권적 강경파와 거리를 두고, 중도우파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중도 정당이 돼야 한다 △늘 야당만 하려면 젊은 사람들만 갖고 해도 되지만, 집권을 하려면 노장청이 같이 가는 정당이 돼야 한다 △위에서 마음대로 전략공천하지 않고, 돈을 내는 당원들이 당의 장래를 책임지는 당원 공천 정당이 돼야 한다 △종북 세력이라고 의심받는 구 통진당 이런 것들과 깨끗이 손을 터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모두 문재인 대표를 위시한 친노패권주의 세력이 당을 장악하면서 생겨난 적폐들인데, 정대철 고문의 계획대로 이러한 적폐들만 해소된다면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정권교체가 가능한 정당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해서 정권 교체가 가능한 수권 신당이 새로이 만들어진다면? 정대철 고문측 관계자는 "고문도 스스로 '나는 반쯤 (정계를) 은퇴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시지 않느냐"며 "신당에서 개인의 기득권이나 지분,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다시 원외로 물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량도 한 고조가 천하를 통일하자 서로 공로를 다투고 봉지를 탐한 다른 공신들과는 달리 "신선이 되겠다"며 홀연히 떠나 은거했다. 이와 같은 이치라는 것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정대철 고문이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있을 것"이라며 "아들인 정호준 의원"이라고 귀띔했다.

  • ▲ 더불어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이 지난해 11월 29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통합신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 더불어민주당 정대철 상임고문이 지난해 11월 29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통합신당추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진DB

    정대철 고문은 신당 정국 속에서 정치 일선에 전면 복귀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되면 "아들이 현역 의원인데 내가 정치를 하겠느냐"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도 지난 2012년 총선에서 아들 정호준 의원의 공천 문제에 세심한 신경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 정호준 의원의 정치적 명운이 신당 정국 속에서 아리송해지고 있다.

    4일 열린 정대철 고문의 생일 모임에서도 당의 여러 원로들이 정호준 의원에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당을) 나가지 않는 것은 모양새가 이상하지 않느냐"며 탈당을 권했다. 그러나 정호준 의원은 "할 이야기가 없어 미소만 지었다"며 "(탈당은)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슬몃 웃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적 미숙함이 안타깝고 안쓰럽다. 4·13 총선에서 친노당으로 전락한 더불어민주당에 국민의 엄정한 심판이라는 불벼락이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인데, 마치 소돔과 고모라에 그대로 남아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꼴이다.

    흡사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명장 조사(趙奢)와 그 아들 조괄(趙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는 것이다.

    조사는 전국시대 조나라의 명장으로, 당대 최강국인 진(秦)나라의 대군을 알여(閼與)에서 크게 격파했다. 그 아들인 조괄은 이러한 아버지를 바라보고 성장하며 어려서부터 병법만 공부해 이론적인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조사는 이러한 조괄을 보며 오히려 답답해했다. 어느 날은 병법에 관해 논쟁을 하다가 조사가 조괄에게 크게 밀렸으나 조사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어떤 이가 묻자 조사는 "전쟁이라는 것은 지면 죽는 것"이라며 "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전쟁을 쉽게 말로 논하니…"라고 말끝을 흐렸다.

    결국 조괄은 훗날 진나라와 조나라 군대가 다시 장평(長平)에서 맞붙었을 때 조나라의 장군이 됐다가 결정적 패배를 당했다. 이 장평 전투에서 조나라의 40만 대군이 모두 몰살당하면서 그 자신 한몸 뿐만 아니라 나라의 장래까지 망쳐버렸다.

    정호준 의원은 정일형 박사~정대철 고문으로부터 이어져오는 3대 정치 명문가의 자손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정치하는 걸 봐왔을테니, 조괄처럼 이론 정치에는 능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문재인 대표 밑에서 청년위원장이라는 작은 감투를 쓰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4·13 총선이라는 큰 전투를 앞두고 있는데 탈당과 같이 큰 문제를 논하면서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원숭이만도 못하게 된다"는 말대로, 낙선은 정치인에게는 고대 전투를 이끄는 장군처럼 패배는 곧 죽음과 다를 바 없다.

    또, 약속한 패배의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친노 세력과 정치적 거취를 함께 하는 한 남는 것은 죽음 뿐이다. 웃으며 이야기할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이 관계자는 "반 년 전에 이미 원외에서 천 리 밖의 여의도 야권의 승패를 결정지은 정대철 고문으로서는 아들 정호준 의원의 정무 판단을 지켜보면서 그저 답답할 것"이라면서도 "부모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라지 않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