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신당 합류는 스텝 꼬이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하나
  • 난세는 영웅호걸을 부른다. 하나의 체제가 끝장나고 새로운 체제가 수립될 때만큼 영걸이 등장하기에 적기는 없다. 그간 신당 추진 세력에 대권주자급 인물이 없음을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박주선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권주자는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은 이를 함축한 말이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分黨) 국면에 돌입했다. 오랫동안 한국정치사를 억눌러온 친노패권주의·486 세력을 일소하고,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중도개혁·민생실용을 지향하며 국민들로부터 널리 수권 능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신당을 출범시킬 절호의 기회다. 국민의 기대도 높다.

    "친노를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에서 누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도드라진 활약을 보일까. 내년 4월 13일, 친노 문재인 체제라는 구태의연한 체제가 허물어져 내릴 때, 국민은 누구의 업적이 가장 컸다고 손을 들어줄까. 〈뉴데일리〉는 새정치연합의 분당 국면을 맞이해 신당십이걸(新黨十二傑) 기획 연재를 통해 이를 조명해 본다.

    ① 안철수와 선시어외(先始於隗)
    ② 김한길과 기인지우(杞人之憂)
    ③ 박주선과 성중형외(誠中形外)
    ④ 박지원과 백척간두(百尺竿頭)
    ⑤ 천정배와 계명구도(鷄鳴狗盜)
    ⑥ 문병호와 수어지교(水魚之交)
    ⑦ 주승용과 삼인성호(三人成虎)
    ⑧ 유성엽과 일파만파(一波萬波)
    ⑨ 이윤석과 화룡점정(畵龍點睛)
    ⑩ 황주홍과 기렵우인(期獵虞人)
    ⑪ 정대철과 신기묘산(神機妙算)


    올해 4·29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참패한 뒤, 서울의 한 지역구에서는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호남 원적지 주민이 많이 사는 이 지역구는 2·8 전당대회에서 친노(親盧) 주류 측으로 옮겨탄 다선 중진 의원이 맡고 있는데 "박지원 대표의 낙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 향우회 등을 훑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추석 이후에 나타났다. 추석 이후 문재인 대표에게 분노한 호남 민심이 수도권으로 전파되자 "나야말로 정말 박지원 대표의 낙점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이 등장해 현역 의원은 제쳐두고 자기들끼리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다.

  • ▲ 신당십이걸 기획열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신당십이걸 기획열전.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분당 직전 상종가, 막상 분당되니 '위기의 남자'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분당(分黨) 이전까지 새정치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위상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표에게 이번에는 세게 한 번 붙자고 전해라"고 했다는 말 그대로 2·8 전대에서 친노패권주의에 두려움 없이 맞섰던 박지원 전 대표는 '여론조사 룰 해석 변경' 탓에 근소한 표차로 분루를 삼켰지만 단숨에 비주류 진영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주류 인사들이 '박지원 대표의 낙점'을 운운하며 그 권위에 기댈 정도의 위상이 된 것이다. 문재인 대표도 당의 위기가 심화될 때마다 박지원 전 대표와 독대하며 돌파구를 모색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 박지원 전 대표의 '여름날'이 갔다. 분당 직전의 내홍 상황에서 상종가를 쳤던 박지원 전 대표의 위상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당이 본격적으로 깨져버리자, 되레 설 자리가 협소해졌다는 지적이다.

    ◆문재인은 '묻지마독주' 안철수는 '거리두기'

    문재인 대표는 '기왕 깨진 당'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남은 식구들끼리 똘똘 뭉쳐서 보란듯이 잘 살아야 한다"며 주류 일색의 당직 인선을 하는 등 아예 독주 체제를 굳혔다.

    탈당한 뒤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는 안철수 의원은 17일 광주 방문에서 박지원 전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오자 "10대 혁신안에 이미 명시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에 있던 시절 제시했던 10대 혁신안에는 부패 혐의로 기소만 돼도 공천에서 배제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박지원 전 대표는 특가법상 알선수재·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상고해 현재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금귀월래 멈추고 정국 구상… 최종 결단은?

    새정치연합 관계자의 표현대로 "당에 남아 있기도, 나오기도 어려운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로 인한 고심이 깊었음일까, 박지원 전 대표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대한 시기에 입원해 투병했다. 지난 15일 구토와 어지럼증으로 입원한 박지원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 "스트레스? 안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8년간 1년 52주 중 50주를 해오던 금귀월래(金歸月來 : 금요일에 지역구인 목포로 내려가 월요일에 서울로 올라옴)를 중단한 박지원 전 대표는 건강 문제로 입원한 것을 기화로 간만에 휴식을 취하며 정국 구상을 가다듬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는 20일 "나에 대해 이런저런 보도가 많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고 슬몃 여유를 내비쳤다.

    알듯 모를듯한 말로 여운을 남기기는 했지만, 박지원 전 대표의 '여름날'이 끝나고 코트깃을 여며야 할 '정치적 겨울'이 찾아온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과연 박지원 전 대표는 어떠한 길을 택하게 될까. 정치권 관계자들은 △신당 합류 △새정치연합 잔류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 등 세 가지로 전망했다.

    ◆신당 합류?

    새정치연합 관계자는 "이번 주에도 1~2명의 의원이 추가 탈당할 것 같은데, 역시 수도권은 아니고 호남 의원이 될 것 같다"며 "분당이 여전히 호남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신당의 원내교섭단체 구성 여부 등을 고려할 때 박지원 전 대표의 거취는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전 대표의 거취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지역구가 동일 생활권에 걸쳐 있는 전남 무안·신안의 이윤석 의원은 물론 김영록 의원(전남 해남·완도·진도)과 박혜자 광주시당위원장 등이 모두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는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이러한 현실정치에서의 영향력과 세(勢)를 감안하면 촉박한 일정 속에서 신당 창당을 추진하는 안철수 의원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영입해야 할 대상인 셈이다. 안철수 의원은 21일 정치세력화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내외에서 내게 연락하는 분들도 있고, 여기 계신 (김동철·문병호·유성엽·황주홍) 의원분들께 연락하는 분들이 있고, 내가 연락을 드려야 할 분들도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서 '내가 연락을 드려야 할 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10대 혁신안과 모순, 스텝 꼬여

    문제는 스텝이 꼬였다는 점이다. 새정치연합에서 10대 혁신안을 내걸고 문재인 대표와 각을 세웠고 상대를 "혁신을 거부한 세력"으로 몰아붙이며 탈당한 안철수 의원의 입장에서는, 10대 혁신안 중 '부패 혐의로 기소된 자'에 해당하는 박지원 전 대표와 선뜻 손을 덥썩 잡기가 곤란해진 게 사실이다.

    친노와 신당 세력 쌍방에서 이 점을 안철수 의원의 '약한 고리'로 보고 공격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점도 부담이다.

    한 친노 원외 인사는 "안철수는 박지원부터 내쳐라"라고 일갈했고, 천정배 의원은 "뉴DJ를 모아 새정치연합 의원과 경쟁시켜 시민들에게 실질적인 선택권을 드리겠다는 게 내 공약이었다"며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나와서 신당을 한다고 하면 내가 약속한 것이 어떻게 돼야 하는지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된다" "안된다" 신당 세력도 사견 갈려

    이 점에 있어서는 신당 세력들도 혼란스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른바 '안철수 신당'에 승선하기로 한 의원은 박지원 전 대표의 합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건 노 코멘트"라고 말을 잘랐다. 그러면서도 사견을 전제로 "대법원에서 아직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니까 부패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고 말했다.

    반면 역시 '안철수 신당'에 승선하기로 한 다른 의원은 "박지원 전 대표가 (당에서) 나오기는 할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받기는 어려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호남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전국으로 줄기와 가지를 뻗는' 야권 통합신당을 위해 안철수 의원과 박지원 전 대표 사이에서 물밑 중재에 나서는 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의원은 "중재를 할만한 거물급이 잘 안 보인다"고 탈당이 거론되거나 이미 탈당한 몇몇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 의원은 박지원 전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고, □□□ 의원은 안철수 의원을 설득할 만큼 관계가 깊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김유정·전현희 전 의원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김유정·전현희 전 의원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정재훈 기자

    ◆새정치연합 잔류?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새정치연합 의원실 관계자는 "박지원 전 대표가 새정치연합에 남을 수도 있다"며 "호남 민심 이반을 차단하기 위해 전북 순창에까지 내려갔던 문재인 대표가, 박지원 전 대표를 끌어안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경우 박지원 전 대표 뿐만 아니라 이른바 '박지원계'로 분류되는 여러 의원들에 대한 공천(公薦)이 약속되는 게 전제가 돼야 한다. 다만 문재인 대표가 지금까지 보여줬던 정치력과 최근의 행보로 볼 때, 이러한 통합 노력을 보여줄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문재인 대표는 지난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15주년 행사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혁신위가 마련한 공천 혁신안에 따라 확실하게 시스템 공천을 하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공천 과정에서 계파적 이해관계, 과거처럼 나눠먹기 식의 이러한 공천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총선기획단장으로 유력시되는 최재성 총무본부장도 평소 "20대 총선은 야당이 향후 10년, 20년의 야당 정치를 이끌고 갈 인적 흐름을 만드는 장"이라며 대대적인 '인적 쇄신'을 주장해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천에 대한 담보가 보장돼야 하는 정치적 결단이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대표 사이에서 성립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는 것이다.

    ◆탈당한 뒤 무소속 출마?

    새정치연합에서 탈당한 한 의원은 "박지원 전 대표도 머잖아 탈당할 것"이라면서도 "('안철수 신당'에 합류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독자 행보를 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새정치연합에 남기도, 그렇다고 신당에 합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니만큼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20대 총선 이후 전개될 정계 개편의 과정을 지켜볼 것이라는 예상이다.

    박지원 전 대표는 지난 18대 총선에서도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받으려 했으나 당시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부정·비리 전력자 공천 배제' 원칙을 굽히지 않아 공천심사조차 받지 못하자, 이에 반발해 탈당해서 무소속으로 당선됐었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지난 9월 23일 "하급심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공천 신청 자체를 하지 말라"고 '총기 난사'를 하자, 박지원 전 대표는 "공천이 없으면 민천(民薦)이 있다"며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강력히 시사하기도 했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열린 호남 의원단 회동에서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전 원내대표가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모처에서 열린 호남 의원단 회동에서 공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데일리 이종현 기자

    ◆무소속 출마하면 각자도생은 어쩌나

    만일 박지원 전 대표가 민천(탈당 후 무소속 출마)이라는 선택을 하면 개인적인 승산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광주타임즈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11~14일 유·무선 임의전화걸기 방식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응답률 4.8%로 최종 응답 1037명), 4·13 총선 목포 국회의원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박지원 전 대표는 40.6%의 지지를 받아 경쟁 그룹인 정의당 서기호 의원(17.0%), 국민회의 유선호 전 의원(10.9%), 새누리당 박석만 당협위원장(5.0%)을 압도했다.

    문제는 무소속 출마를 할 경우 박지원 전 대표 개인은 목포에서 4선의 고지에 오른다고 해도, 정치 행보를 함께 해오던 다른 의원들은 어떻게 되느냐는 의문이 남는다. '무소속 연대' 형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년 4·13 총선에서 호남은 다야(多野) 후보 난립 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각자도생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어서 야권 전체에 미치는 박지원 전 대표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할까

    그 어떤 선택도 쉬운 길이 아니라는 점에서 박지원 전 대표는 백척간두(百尺竿頭)와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상황에서 절묘한 정치력을 발휘해 위기를 돌파할 경우 '총선 후 대선 전'의 정계 '빅뱅'이 예상되는 국면에서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지원 전 대표는 18대 총선에서도 낙천(落薦)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맞이했었지만, 보란듯이 4·9 총선에서 당선돼 복당하고 이후 최고위원과 원내대표 등 당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본래 백척간두는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위기 국면을 가리키는 숙어이지만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라는 말과 한 쌍으로 쓰이기도 한다.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라 발 하나 제대로 딛고 있기 어려운 위기 상황인 것 같은데도, 다시 거기에서 한 발을 더 내딛어 위로 향한다는 뜻이다.

    야권 관계자는 "총선 전까지는 야권이 하나로 통합되기 어려운 국면이 돼가고 있다"며 "총선 이후 대선 전까지 야권에서 여러 가지 암중모색이 전개되는 등 정계의 '빅뱅'이 예상되기 때문에, 박지원 전 대표가 이 위기 상황에서 총선만 넘긴다면 오히려 더 중요한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