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가리는 인상 주지 말아야… "문턱 없다"는 분명한 신호 줘야 한다
  • 난세는 영웅호걸을 부른다. 하나의 체제가 끝장나고 새로운 체제가 수립될 때만큼 영걸이 등장하기에 적기는 없다. 그간 신당 추진 세력에 대권주자급 인물이 없음을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박주선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권주자는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은 이를 함축한 말이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分黨) 국면에 돌입했다. 오랫동안 한국정치사를 억눌러온 친노패권주의·486 세력을 일소하고,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중도개혁·민생실용을 지향하며 국민들로부터 널리 수권 능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신당을 출범시킬 절호의 기회다. 국민의 기대도 높다.

    "친노를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에서 누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도드라진 활약을 보일까. 내년 4월 13일, 친노 문재인 체제라는 구태의연한 체제가 허물어져 내릴 때, 국민은 누구의 업적이 가장 컸다고 손을 들어줄까. 〈뉴데일리〉는 새정치연합의 분당 국면을 맞이해 신당십이걸(新黨十二傑) 기획 연재를 통해 이를 조명해 본다.

    ① 안철수와 선시어외(先始於隗)
    ② 김한길과 기인지우(杞人之憂)
    ③ 박주선과 성중형외(誠中形外)
    ④ 박지원과 백척간두(百尺竿頭)
    ⑤ 천정배와 계명구도(鷄鳴狗盜)
    ⑥ 문병호와 수어지교(水魚之交)
    ⑦ 주승용과 삼인성호(三人成虎)
    ⑧ 유성엽과 일파만파(一波萬波)
    ⑨ 이윤석과 화룡점정(畵龍點睛)
    ⑩ 황주홍과 기렵우인(期獵虞人)
    ⑪ 정대철과 신기묘산(神機妙算)


  • 전국시대 북쪽 끝에 위치한 소국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은 왕위에 오르자 새롭게 훌륭한 인재를 등용해 부국강병을 꾀하고자 했다. 대신 중에 곽외(郭隗)를 불러 새로운 인재를 등용할 방책을 묻자, 곽외는 죽은 천리마를 500금을 주고 산 일화를 소개했다.

    옛날 한 임금이 천리마를 1000금을 주고 사겠다고 널리 알렸으나 3년이 지나도록 팔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에 죽은 천리마의 뼈를 500금을 주고 사니, 그 소문이 퍼져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천리마를 3필이나 얻게 됐다.

    곽외는 이 일화를 소개하면서 "우선 나부터 재상(宰相)으로 등용하라"며 "나같은 사람도 재상이 됐다는 소문이 퍼지면 필시 천하의 인재가 연나라로 모여들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소왕이 이를 받아들여 곽외를 재상으로 임명하자, 과연 악의(樂毅)·진개(秦開)와 같은 인재들이 연나라로 몰려들어 강대국인 이웃 제(齊)나라를 쳐부수기에 이르렀다.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해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한다. 국민이 바라는 신당이 만들어진다면 친노·486의 숙주로 전락한 새정치연합을 대체하고, 한국 정치를 병들게 한 친노 바이러스를 일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이 과연 잘 될는지 의구심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안철수 의원은 지금보다 대중적인 인기가 훨씬 컸던 시절에도 신당을 창당하면서 사람을 가려받다가 잘 안 되자 이를 접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추동력이 떨어진 상황인데, 옛날의 악습을 여전히 갖고 있다면 잘 될 턱이 없다.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실패는 그 자신만의 화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야권에는 종래부터 친노패권주의 척결을 주장하며 신당 창당을 준비해오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통합신당의 박주선 의원, 국민회의의 천정배 의원, 신민당의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 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안철수 의원이 탈당을 하면서 이들 신당들이 전부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됐다. 안철수 의원의 실패는 그동안 차근차근 친노 심판을 준비해오고 있던 이들 모두의 실패가 될 판이다. 자칫하면 남이 잘 차리고 있던 밥상을 안철수 의원이 뒤엎어놓을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신당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려면 앞서 소개한 연소왕과 곽외의 고사로부터 유래한 선시어외(先始於隗)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이 15일 부산 방문에서 던진 메시지를 보면 아직까지는 그런 자세를 갖추지 못한 것 같아 우려스럽다.

  • ▲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안철수 의원은 이날 부산에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과는 정치를 같이 할 수 없다고 열거하다가 "수구 보수의 편에 선 분들은 곤란하다"며 "수구 보수가 아닌 합리적·개혁적 보수와는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메시지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로 안철수 의원이 아직도 사람을 많이 가린다는 점, 둘째로 사람을 가리는 기준이 객관적이지 못하고 불투명하다는 점, 셋째로 정작 오겠다는 사람을 향한 신호는 없고, 사람이 없는 방향으로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 안철수 의원은 예전의 '신참자 효과'를 받던 시절과는 상황이 다르다. 13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밝힌대로 "나침반도, 지도도 없는 허허벌판에 나서서" 제1야당 새정치연합 친노패권주의 세력이라는 크고 굳건한 성(城)을 함락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허허벌판에 굳이 함께 풍찬노숙하겠다고 손들고 나서는 사람도 드문 마당에, 오겠다는 사람을 이런 저런 기준으로 가려받는다는 인상이 들면 장정 한 명이라도 모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같이 할 수 있는 '합리적·개혁적 보수'와 같이 할 수 없는 '수구 보수'를 가르는 기준도 불분명하다. 우리나라에 현재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수구 보수'로 규정하고 있는 현역 정치인은 없다. 그러면 수구인지 합리·개혁인지는 안철수 의원 본인이 판단하겠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3년이 지나도 천리마 한 마리를 구하기가 어렵게 된다.

    임금에게 천리마를 팔러 간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가다가 천리마가 병이 들어 죽을 수도 있고,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막상 팔았는데 임금이 "이 말은 800리 밖에 가지 못하니 천리마가 아니다"라고 하면 돈을 못 받을 수도 있다. '임금을 속인 죄'를 뒤집어써서 감옥에 가지 않으면 다행이다.

    탈당 또한 정치인으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건 큰 결단인데, 찾아간 '안철수 신당'에서 기준도 불분명한 '수구'라고 낙인 찍어 받아주지 않겠다면 오갈 데가 없어진다. 그러한 리스크를 안고 탈당하거나 안철수 의원과 함께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지금 안철수 의원과 같이 할지 여부를 진지하게 고심하고 있는 사람들은 새정치연합의 호남·비주류 의원들이다. 그런데 이날 부산 방문에서는 이들을 향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았다. "어서 탈당하라"는 직접적인 촉구도, "문턱이 없다"는 간접적인 시사도 모두 좋았겠지만, 그 어느 것도 없었다.

  • ▲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 ⓒ뉴데일리 정상윤 기자

    이러다보니 탈당하려던 사람들도 주춤거리고 있다. 차량들이 줄지어 늘어서 신호대기하고 있는 교차로에는 오라는 것도 말라는 것도 아닌 애매한 황색등만 점멸시켜놓고, 오겠다는 차량이 한 대도 없는 엉뚱한 '보수' 진영을 향해 청신호와 적신호를 번갈아가며 켜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탈당한지 불과 사흘 밖에 안 됐는데, 벌써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성공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이 번져나가고 있다.

    야권 신당 관계자는 "안철수 의원이 문재인 대표와 싸우다 (당에서) 나왔지만, 둘이 본질적으로는 동종혐오(同種嫌惡)를 보인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며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갈등이 '양초의 난'이라 불렸듯이, 안철수 의원의 정치력과 정무 감각, 포용력으로 이게 (야권 대통합 신당이) 가능할지 회의적"이라고 토로했다.

    안철수 의원은 어찌됐든 대선의 문턱까지 가봤던 전국적인 인물이다. 성벽 옆에 작은 오두막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제1야당이라는 큰 성을 아예 함락시키고 거기에서 친노를 축출해 완전히 야당을 대체·재편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는 신당 세력에게 있어서는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그처럼 중심적인 역할을 해줘야 하는 만큼, 문재인 대표가 보여줬던 독선과 선민의식, 편협함 등을 만일 안철수 의원이 신당 진영에서 보여주면 오히려 모두가 다 끝장나게 된다. 기회인 동시에 위기인 셈이다.

    통합신당을 추진 중인 박주선 의원은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야권 신당은 일단 호남에 굳건히 뿌리를 내려야 한다"며 "그 이후에 줄기와 가지를 전국으로 무성하게 뻗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17~18일 양일간 진행될 전주·광주 방문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일단은 호남과 비주류 의원들을 향해서 청신호를 켜서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고, 세를 키운 다음에 개혁적 보수든 합리적 중도든 기치를 내걸면 비로소 합류를 검토하는 보수 인사들도 생길 것이다.

    본인 스스로 탈당 기자회견에서 "허허벌판에 나선다"고 했는데, 허허벌판에 비바람을 피할 천막 하나 없이 "합리적·개혁적 보수와 같이 하고 싶다"고 하면 누가 손을 들고 나선단 말인가. 일단 기왕 같이 하겠다고 손들고 나선 사람들을 널리 모아 기둥도 세우고 서까래도 올려 번듯한 집이라도 지어야, 오겠다는 사람들이 더 생기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