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정통성의 싸움, 이윤석이 움직이면 끝난다

난세는 영웅호걸을 부른다. 하나의 체제가 끝장나고 새로운 체제가 수립될 때만큼 영걸이 등장하기에 적기는 없다. 그간 신당 추진 세력에 대권주자급 인물이 없음을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박주선 의원이 "신당을 만들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대권주자는 자연히 생겨나는 것"이라고 일갈한 것은 이를 함축한 말이다.

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이 분당(分黨) 국면에 돌입했다. 오랫동안 한국정치사를 억눌러온 친노패권주의·486 세력을 일소하고, 새정치연합을 대체할 중도개혁·민생실용을 지향하며 국민들로부터 널리 수권 능력을 인정받는 새로운 신당을 출범시킬 절호의 기회다. 국민의 기대도 높다.

"친노를 척결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받드는 길에서 누가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도드라진 활약을 보일까. 내년 4월 13일, 친노 문재인 체제라는 구태의연한 체제가 허물어져 내릴 때, 국민은 누구의 업적이 가장 컸다고 손을 들어줄까. 〈뉴데일리〉는 새정치연합의 분당 국면을 맞이해 신당십이걸(新黨十二傑) 기획 연재를 통해 이를 조명해 본다.

① 안철수와 선시어외(先始於隗)
② 김한길과 기인지우(杞人之憂)
③ 박주선과 성중형외(誠中形外)
④ 박지원과 백척간두(百尺竿頭)
⑤ 천정배와 계명구도(鷄鳴狗盜)
⑥ 문병호와 수어지교(水魚之交)
⑦ 주승용과 삼인성호(三人成虎)
⑧ 유성엽과 일파만파(一波萬波)
⑨ 이윤석과 화룡점정(畵龍點睛)
⑩ 황주홍과 기렵우인(期獵虞人)
⑪ 정대철과 신기묘산(神機妙算)

지난 13일,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당시)으로부터 탈당한 이후 야권 재편의 흐름이 한층 복잡다단하게 전개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이 김동철·문병호·유성엽·황주홍 등 탈당파 의원들과 독자적인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통합신당의 박주선 의원, 국민회의의 천정배 의원, 신민당의 박준영 전 전남도지사, 민주당의 김민석 전 의원 등은 일응 이를 견제하면서도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통합신당을 모색하고 있다.

한편에서 안철수 의원이 빠져나간 새정치연합은 당명을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꾸고 "더 단단하고 더 독해져야겠다"며, 신당 세력들을 '명망가 정당' '선거 정당' 등으로 폄훼하는 등 네거티브에 시동을 걸기 시작하고 있다.

◆'DJ 계승' 민주화와 '민주팔이' 좌경화 세력 간의 힘겨루기

이처럼 외견상의 흐름은 복잡하지만 이번에 시도되는 야권발 정계 개편의 본질은 간명하다는 게 야권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대한민국 역사의 정방향에 함께 한 세력과, 이를 거스르고 부정한 좌경화 세력 간의 힘겨루기라는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의 건국과 뒤이은 산업화는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민주화와 그에 따른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 또한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순리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야당이 이러한 순리의 흐름 위에서 이에 기여한 것으로 국민들로부터 인정받는 세력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를 훼방하면서 무임승차한 주제에 이제 와서는 자기 혼자 '민주화'한 양 '민주팔이'하는 좌경화 세력에 머물 것인가"라며 "이를 둘러싼 싸움이며, 결국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수권 가능한 세력으로 인정받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안철수 신당'에 합류한 한 의원도 "(더불어민주당에는) 합리적 중도주의자가 설 자리가 완전히 사라졌다"며 "당 안에 있을 때 친노·486의 패권주의를 척결해야 한다고 좀 더 강하게 외치지 못했던 게 후회될 뿐"이라고 토로했다.

아직 더불어민주당에 잔류해 있는 한 의원도 "국민이 믿고 표를 줄 수 있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2017년에 수권할 수 있는 야당이 건설되느냐, 그들만의 세상에 사로잡혀 아집과 망상 속에서 영원히 수권 가능성이 없는 식물 야당으로 남느냐의 문제"라며 "그래서 거취에 대한 고민이 깊은 것"이라고 털어놨다.

◆벽촌에서 난 이윤석, 건국~산업화 변천 온몸으로 겪은 인물

이러한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석대변인·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고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조직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윤석 의원(전남 무안·신안)의 거취가 주목된다는 지적이다.

이윤석 의원은 전남 무안군 삼향면 용포리의 벽촌에서 태어났다. 하루에 버스가 단 두 번 들어오는 작은 마을이었다. 부친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목포교도소에서 교도관으로 일하다 6·25 남침으로 마을이 인민군에 의해 장악되자 즉결처분을 당할 뻔 하기도 했다.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오던 날, 이윤석 의원은 "지금 생각하면 삼십촉 백열등이 무에 그리 밝았을까마는, 호롱불만 보던 어린 소년에게 전등은 새로운 세상"이었다며 "전기가 들어오던 날, 감격한 마을사람들은 잔치를 벌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여수에 산업단지가 들어서고 공장이 생기자, 이윤석 의원은 여수에 가서 일을 하게 됐다. 이후 월급으로 냉장고를 사서 고향집으로 가져왔다. 그는 "배달트럭에 냉장고를 싣고 고향집으로 향하니 스스로가 정말 자랑스러웠고, 이런 게 금의환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슴이 벅차올랐다"며 "시골길이 좁아 용달차가 집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마을의 뽕나무거리 앞에 멈추자, 삽시간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어머니는 춤을 추듯 달려왔다"고 회고했다.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뒤이은 공산주의 세력과의 싸움에서의 일가가 고초를 겪고, 이후 산업화의 낙수 효과를 온 몸으로 맛본 인물이 이윤석 의원이다.

◆민주화 투신하면서도 '좌경화 운동권'과는 일찌감치 선 그어

그리고 민주화. 이윤석 의원은 대학에 다니던 시절 "당시 학생운동권은 투쟁을 통한 혁명을 주장하기 시작했다"며 "운동권 학생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어김없이 사회주의 이념이 언급됐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이 말하는 혁명 논리에 동의할 수 없었다"며 "소위 말해서 '의식화'되지 않았던 것이고, 생각과 판단도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그 시절부터 좌경화 세력과는 일찌감치 선을 그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한 길과도 거리를 둔 것은 아니었다. 신민당의 직선제개헌추진운동본부의 전국 순회 연설에 함께 하던 이윤석 의원은 신순범 전 의원의 권유로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 가담하게 된다. 민추협에서 이후 평민당 부총재가 된 손주항 전 의원과 만나 김대중 전 대통령(DJ)에게까지 인연이 닿게 된다.

민추협이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 같은 재야 민주화 세력까지 '기성 정치인' '개량 세력' '투항파' 등으로 몰아붙이며 국민 정서와 유리된 극렬 투쟁만 고집하던 좌경화 세력과 달리 실질적인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에 기여했다.

민추협을 함께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YS)과 DJ는 이후 갈라섰고, 그 때문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이 또한 민주화의 '소프트 랜딩'(연착륙)에 기여했다는 나름의 평가가 있다. 이후 YS는 "호랑이 굴에 들어가 호랑이를 잡겠다"는 자신의 말대로 3당 합당을 통해 현재의 여권에 합류,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실시 등의 공적을 남겼다. DJ는 '산업화 세력'인 김종필(JP)·박태준 전 국무총리와의 폭넓은 통합과 연대를 통해 1997년 수평적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DJ 고향 무안·신안서 김홍업·한화갑 꺾을 정도로 인정

이 모든 과정에 함께 한 인물이 이윤석 의원이다. 어느새 하나둘씩 DJ·민추협과는 아무 관련도 없이 극렬 좌경화 운동했던 사람들로 하나둘씩 자리가 채워져가는 더불어민주당에서 몇 안 되는 손님(客) 아닌 '주인'격의 인물이다.

1987년 평민당 후보로 대선에 나섰던 DJ가 패배한 뒤 해단식에서 이중재 선거대책본부장이 DJ를 맹비난할 때, 이에 반발해 연단에 있는 이중재 전 의원에게 달려들었던 것도 그였다. DJ가 1990년 10월, 13일간 단식한 결과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가 이뤄졌을 때 이에 부응해 1995년부터 전남도의원으로 활약, 최연소 전남도의회 의장에까지 오르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확립했던 것도 그였다.

이윤석 의원의 민주 적통(嫡統)은 지역구민과 당의 원로·거물들이 두루 인정한다. 그의 지역구인 전남 무안·신안은 DJ가 태어난 곳이다. 민주 적통성에 다른 어디보다도 민감한 곳이다. 다른 곳도 아닌 DJ의 고향에서 그는 18대 총선에서 DJ의 아들인 김홍업 전 의원을, 19대 총선에서는 '리틀 DJ'라 불리던 한화갑 전 대표를 연이어 꺾고 재선 국회의원이 됐다.

◆권노갑도 눈시울 붉어져 탈당 고민하는데

DJ의 분신이라 불리는 권노갑 상임고문과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이윤석 의원이 1995년 전남도의원으로 당선된 이후로는 항상 깍듯하게 '이 의원'이라고 불러주는 권노갑 고문이지만, 심중의 깊은 말을 할 때는 "어이, 윤석이…"라고 호칭할 정도로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권노갑 고문이 이윤석 의원에게 "윤석이…"라고 호칭했을 때는 "김대중 정신을 배워야 해. 꼭 그렇게 하소"라고 당부할 때였다. 그토록 '김대중 정신'을 강조하는 권노갑 고문조차 탈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권노갑 고문은 28일 안철수 의원과 회동했다. 그 자리에서 안철수 의원은 "신당을 통해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중도개혁 정당으로 가겠다, 중산층과 서민 중심의 정치를 하겠다"는 확약을 했다고 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중도개혁' 모두 DJ가 생전에 지향했던 정치 철학이다. 항상 '김대중 정신'을 고민하는 권노갑 고문은 이에 "따뜻하게 화답하며 격려해줬다"고 전했다.

동교동계의 일원으로 지난 28일 먼저 탈당한 김희철 전 의원도 권노갑 고문과의 만남에 대해 전하기도 했다. 탈당에 앞서 권노갑 고문과 상의하던 김희철 전 의원은 "권노갑 고문이 '어찌됐든 간에 김대중 정신을 갖고 통합하기 위해 노력을 했는데, 문재인 대표를 몇 번이나 만나도 말이 통하지 않고 잘 안 되더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우리가 우선해야 할 것은 김대중 정신을 이어받는 것인데…"라고 하던 중 말이 문득 끊어지자, 고개를 숙인 채 숙연히 듣고 있던 김희철 전 의원이 의아해 고개를 들어보자, 권노갑 고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권노갑 고문은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이 정도로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윤석 의정보고회에서도 탈당 요구 빗발쳐

야권에서는 권노갑 고문을 비롯한 동교동계 인사들이 '김대중 정신'을 저버린 문재인 대표·친노패권주의 세력과 결별해 내년초 '중대결단'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윤석 의원은 지난 19일부터 지역구에서 의정보고회를 진행했다. 19일에는 무안농협, 22일에는 장산농협, 23일에는 지도읍 북신안농협에서 의정보고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도 "언제 문재인당을 나오려느냐" "언제 탈당할 것이냐"는 성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DJ의 분신' 권노갑 고문도, 민추협 시절부터 DJ 세력과 정치 운명을 함께 해온 이윤석 의원에게도 설 자리조차 남겨놓지 않는 게 패권주의 친노 계파의 독선과 독주, 전횡과 폐쇄성이다.

문재인 대표와 친노패권주의 세력이 장악한 더불어민주당을 완전히 등진 호남 민심, 그리고 권노갑 고문과 박지원 전 원내대표조차 탈당으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는 상황… 이러한 상황만 놓고 보면 그 또한 당장이라도 탈당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야권 관계자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고, 결국 아마 거취를 결정하긴 결정할 것"이라며 "택일은 두 가지 길 모두에 희망이 열려 있을 때 하는 것인데, 문재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에는 더 이상 희망도 그 무엇도 없고, 그저 절망만이 가득할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대중 정신'에 비춰 중대결단 내려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윤석 의원이 아직까지 결단을 못 내리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마 안철수 의원도 썩 미더운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아직까지 머뭇거리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의원실 관계자들은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과 합당했던 직후 보여줬던 아마추어리즘과 미흡한 리더십, 그리고 6·4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 보여줬던 그릇된 정무적 감각 등을 입에 올리고 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양측이 '통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게 신당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신당 관계자는 "안철수 의원이 지난해 독자 창당을 추진하다 접었을 때와는 최근 확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아직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며 "주변의 쓴소리를 보다 폭넓게 들으며 더 통크게 행동하고, 중도개혁과 민생실용을 원하느 모든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신뢰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문재인 대표를 반면교사 삼아 끊임없이 달라져야 한다"며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윤석 의원을 향해서는 "DJ도 JP·TJ(박태준 전 국무총리)와 연립해 정권을 창출했다"며 "지금의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대표가 절대로 정권을 창출할 수권 능력이 없는 식물 야당으로 전락한 이상 좌고우면이 더 길 것이 없고 '김대중 정신'에 비춰 행동하면 된다"고 평했다.

◆신당이라는 용에 눈동자 그려넣을 사람

남북조 시대(南北朝 時代) 남조 양(梁)나라 수도 금릉부(金陵府)의 사찰 벽에 화가 장승요가 용(龍)을 그리면서도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았다. 뭇 사람들에게 "눈동자를 그리면 용이 날아가버릴 것"이라고 말하자, 이들이 비웃었다. 이에 눈동자를 그려넣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면서 용이 벽을 박차고나와 하늘로 날아올라버렸다는 것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어원이 된 일화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을 잠식해버린 패권주의 친노 세력은 "안철수 대표는 공동창업주이기 때문에 탈당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지난 13일 안철수 의원은 탈당했다. 그러자 "뒤따라 나가는 의원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야권의 심장부' 광주광역시에서 더불어민주당의 과반이 무너졌다. 이제 또 "더 이상 나가는 의원은 없을 것"이라지만 과연 어떻게 될까.

김희철 전 의원은 28일 탈당 기자회견을 한 뒤 본지와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더불어민주당에 DJ와 특별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은 전부 떠나고 친노만 남았다며 "빈껍데기만 남은 정당"이라고 일침했다.

그말대로 이윤석 의원만 움직이면 끝난다. 이제 당 안에서 몇 안 남은, 민추협·평민당 시절부터 DJ와 특별한 인연을 간직해 온 의원이기 때문이다. 내년 4·13 총선에서 제1당 혹은 제1야당으로 승천할 '통합 야권신당'이라는 용에 마지막 눈동자를 그려넣을 사람, 이윤석 의원의 결단에 야권의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