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정계의 누군가는 이렇게 치고 나와야 한다. 치고 나와야 영웅 비슷한 것이라도 된다. 영웅 없이는 우파 정계는 소생할 길이 없다
  •  자유-우파 진영이든 진보-좌파 진영이든 서로 정반대이면서도 한 가지 점에서만은 똑같은 고민과 성찰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게 잘 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정치의 한 차원 높은 발전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꼭 그렇게 돼야 할 일이지만, 글쎄다.




     그게 뭔가? 진보-좌파가 원리주의-소아병주의-확증편향(確證偏向)에 더 이상 매몰되지 말고, 좌파 나름의 자기교정을 통해 시장-기업-이윤-한미동맹-자유체제 수호에 적대만 하지 말고, “그것도 적절히 선용(善用)하겠다”는 식으로 생각을 바꿨으면 하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 그렇게 어려워 안 된 다는 것인가? 참 고집불통도 저 쯤 되면 ‘국보급(?)“이다.

     자유-우파는 반면에 도덕적-법률적 물의를 종종 일으키는 일부 구(舊) 기득권층(이들은 보수도 아니다)에 대해선 진보-좌파보다도 먼저 신랄하게 비판하고, 기업 활성화를 통한 성장을 전제한 것이라면 보편적 복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선택적 복지에는 통 큰 자세로 임했으면 한다. 소외가 있는 곳에 체제 안정이 터 잡기란 어려운 까닭이다.

     문제는 이런 상호 접근은 대한민국이 깨져나가지 않으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인데도, 주로 좌파 집권세력 내부 원리주의자들의 독선적-독단적 혁명노선 때문에 그런 절충이 막히고 있는 게 우리네 사상계의 현실이다. 우(右) 쪽의 사려 부족에도 물론 그만한 탓은 있겠지만.

     좌파 원리주의 실권파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올드 레프트(old left)적 반(反)제국주의론-계급투쟁론-‘닫힌 민족주의’에 집착해 실용주의적 우(右) 클릭을 마치 배신이요 타락인 양 배척한다. 진짜 수구꼴통이다. 러시아도 중국도 베트남도 버린 '오로지 고전적 사회주의 하나만'을 고집해서인지, 그래서 두뇌가 너무 굳어버려서인지, 이유와 원인은 알 수 없다.

     더 웃기는 건 대기업 고급간부로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연봉을 가져가는 자들이 생각은 자기들 대학 동기생 386-586처럼 한다는 것이다. 리무진 좌파, 캐비어 좌파인 셈이다. 결국 오늘의 정(政)-관(官)-재(財)계에 풍미하는 ‘좌파 증후군’은 가난한 투사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넉넉한 기득권 세력이 만든다는 야기다. 위선도 이만저만한 위선이 아니다. 이들이 앞으로도 15년~20년은 더 해먹을 것이다. 귀족노조도 이 기득권 권세(權勢)의 거대한 한 축(軸)임은 물론이다.

     올드 레프트 수구꼴통이 장악한 이 기득권 독식(獨食) 구조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이들이 오늘의 진짜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이라 할 수 있다. 비정규직, 청년실업자, 부양가족 없는 노인과 소년소녀 가장, 장애우, 장기 취준생, 각종 시설 수용자, 각종 노예계약 피해자, etc, etc 들이 바로 그들이다.

     ‘성찰적 진보’와 ‘혁신적 자유-우파’는 그래서 이 위선적 구(舊)좌파 586 기득권 세력의 독식 구조를 타파하고 시장경제와 경쟁력 있는 자유기업 제도를 최대한 격려함으로써 앞에 예거(例擧)한 진짜 사회적 약자를 상승(上昇)의 사다리에 올려주는 ‘참 진보’를 위해 허심탄회한 협업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에 이런 ‘성찰적 진보’와 ‘혁신적 자유-우파’는 있는가? ‘성찰적 진보’는 수적으로는 약해도 있는 건 분명하다. 대한민국을 존중하는 진보주의자 주대환 씨 같은 입장, 김대호 사회디자인 연구소 소장 같은 입장이 그래 보인다.

     자유-우파 쪽은 어떤가? 자유-우파 쪽엔 그런 노선에 대한 이해 자체는 있다. 그러나 자유-우파 쪽의 문제는 ‘웰빙 증후군’이다. 이것 때문에 우파 유권자들까지 우파 후보를 배척하고 “옛기 엿 먹어라” 하고 보수궤멸로 가버렸다. 더불어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져도 그 이탈한 표가 우파(자유한국당)로는 오지는 않는다.

     우파 정계가 민심의 용서를 받을 정도의 빠른 자기혁신을 할 수 있을지는 지금으로선 확신할 수 없다. 혁신 안 하면 다음 총선에서 전멸한다. 그 땐 끝, 끝, 끝이다. 알아서들 할 일이다.

     사는 길이 무엇인지, 죽는 길이 무엇인지는 뻔하다. 다만 사람들이 탐-진-치(욕심과 어리석음)에 눈이 가려 죽는 길이 사는 길인 줄 착각하고 그리로 가는 것이다. 이게 이승 ‘삼사라’ 에서 중생(衆生)이 사는 모양새다. 그러나 한 나라를 이끌겠다는 정치 엘리트임을 자임한다면 그렇게만 살아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우파 정계여, 개인적 욕심을 버리십시오. 자기(ego)를 버리세요. 그 방법밖엔 우파 정당이 살 길이 없습니다. 보수 유권자들까지 당신들의 웰빙 근성을 알아차렸읍니다. 젊은 신인들에게 맡기겠다고, 나는 그것을 위해 밀알처럼 떨어져 죽어 한 줌 밑거름이 되겠노라고 비장하게 고백하세요. 그러면 우파 정당도 살고 당신도 영원히 삽니다. 이미 많이 하던 사람이 “내가 무엇을 하겠다”고 하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김문수 전(前)경기도 지사에게 했더니 아직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논리가 부족했던 모양인가? 그러나 우파 정계의 누군가는 이렇게 치고 나와야 한다. 치고 나와야 영웅 비슷한 것이라도 된다. 영웅 없이는 우파 정계는 소생할 길이 없다.

     요는 뭔가? 대한민국 살리고, 김정은 세상 막자는 것 아닌가? 목표를 단순화시키자. 결단도 단순화시키자. 수단도 단순화시키자. 이 시대 한국 자유-우파에 필요한 것은 조선조 문신(文臣) 양반 당쟁가(黨爭家)들의 복잡한 셈법이 아니라, 진정한 무인(武人) 충무공의 순발력 있는 직감(直感), 단심(丹心), 자기 내던짐이다. 자유-우파 내부에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의 격정토론이 있기를 대망한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2018/8/19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