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 대형 뮤지컬로 가득한 국내 뮤지컬계에 한국인 특유의 정소로 도전장을 낸 뮤지컬이 있어 화제다. 故 이청준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서편제'가 바로 그 주인공. 뮤지컬 '서편제'의 연출이자, 지난해 제15회 한국뮤지컬대상시상식에서 연출상을 수상한 이지나 감독을 만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어차피 누군가 해야한다면, 제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 뮤지컬 '서편제' 연출 이지나 ⓒ 뉴데일리
    ▲ 뮤지컬 '서편제' 연출 이지나 ⓒ 뉴데일리

    뮤지컬 '헤드윅', '록키 호러쇼', '대장금', '그리스', '오페라의 유령' 등 공연계의 우먼파워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녀지만, 처음부터 '서편제'의 연출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감'. 이미 대중들의 머리 속에 각인된 이청준 원작 소설과 한국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의 성공이 부담됐다. 또한, 현 시대에 우리 관객들이 원하는 작품이라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가 아닐까라는 고민 역시 한 몫 했다. "결국 하늘의 계시를 받고 결정했어요"라며 웃어보이는 그녀의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 ▲ 뮤지컬 '서편제' 포스터 ⓒ 뉴데일리
    ▲ 뮤지컬 '서편제' 포스터 ⓒ 뉴데일리

    뮤지컬 '서편제'는 우리가 가진 가난에 대한 증오로 우리의 전통조차 가난의 유물이라 여겼던 한국인의 잃어버린 정체성을 이야기 한다. 이제는 우리의 잃어버린 전통성을 회복할 시간이며 무조건적인 사대주의는 벗어버릴 때가 왔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또한 전통성을 지키고 있는 예술에 대한 예우이고 원작과 이청준 작가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서편제'를 뮤지컬 무대에 올리는 것에 대해 "무대에서만 구현할 수 있는 작품, 무대의 존재가치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겁니다"라고 당당한 포부를 밝혔다.

    작가와 배우들을 설득할 때 어려움도 있었다. 그들을 움직인 그녀의 한마디는 "어차피 누가 하든 할거야. 그런데, 우리가 안하면 진짜 망쳐버릴것 같아." 였다. 결코 가볍지 않은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그녀는 극을 만들어 가며 세삼 '서편제'가 얼마나 보람찬 작품인가에 대해 깨닫는다. '얼마나 잘 만들 수 있길래 도전했어?', '원작을 망치지마'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두고봐라'라는 심정으로 매일 연습에 들어간다.

    배우들의 캐스팅에 있어 실제 판소리가 가능한가가 관건이었다. 뮤지컬이 서양음악을 근간으로 하고 있고, 그에 판소리를 입히는 작업. 판소리 극은 아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서편제'라는 작품에 있어 큰 실례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연출은 "주인공 송화역은 순조로웠어요. 하지만, 실제적인 티켓 파워를 지닌 남자 배우들의 경우 판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도 적었고 실제 작품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어려웠어요."라고 털어놨다.

  • ▲ 뮤지컬 '서편제' ⓒ 뉴데일리
    ▲ 뮤지컬 '서편제' ⓒ 뉴데일리

    뮤지컬 ‘서편제’ 주인공 송화 역에는 소리꾼 이자람과 뮤지컬계의 ‘디바’ 차지연이 캐스팅됐다. 송화 아버지 유봉 역에는 JK 김동욱, 서범석, 홍경수 오빠 동호 역에는 크로스오버 테너 임태경, 김태훈 등이 등장한다.

    신뢰가 가는 배우들의 캐스팅이지만, 대중들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은 이름들이다.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을까. "물론, 장기 공연이기 때문에 흥행에 대한 부담은 있었어요. 그렇지만, 연출로서 흥행을 위한 스타캐스팅은 안된다고 생각했죠" 이 연출이 고집스런 얼굴로 말한다.

    제작사의 권유로 '스타'들을 기용하려 하기도 했다. 이 연출은 "모두들 엄청난 티켓파워를 가진 이들이었다."라며 "그런데, 결국 작품이 '서편제'라니 다들 알아서 거절해줬다. 그때 사실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소리의 진정성을 찾는 작품이기 때문에 가창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의 캐스팅이 나에게는 최적의 스타 캐스팅이다"라고 출연진들에 대한 자부심을 엿보인다.

    뮤지컬적 캐릭터인 ‘동호’는 판소리를 떠나 자신의 소리를 찾았지만 자기 자신이기에 버릴 수 없는 본질인 정체성의 상징인 송화(판소리)를 찾는다. 말하자면 동호는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시대에 맞게 현명한 현실주의자처럼 나름대로 잘 적응을 하려고 하는 캐릭터다. 이 연출은 상상력과 이미지의 극대화, 각 인물들의 매력과 송화라는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존경에 중점을 뒀다고 말한다.

    뮤지컬 '서편제'는 1시간 40분 공연 중 15분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1막 20곡, 2막 14곡이 삽입된다. 배우들의 가창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연이다. 무대에 오르는 인원은 어린이 합창단을 포함해 총 35명. 주요 인물들은 트리플과 더블 캐스팅으로 이뤄졌다. 흔히, 공연계에서 스타마케팅을 위해 활용하는 방식. 하지만, 뮤지컬 '서편제'는 다르다. 

  • ▲ 뮤지컬 '서편제' 연출 이지나 ⓒ 뉴데일리
    ▲ 뮤지컬 '서편제' 연출 이지나 ⓒ 뉴데일리

    이 연출은 "판소리를 하는 국악인들의 목을 보호하기 위해서예요."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번 작품을 끝내고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데 배우들에게 데미지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원칙. 작품만큼이나 배우들에 대한 애정 역시 각별하다.

    불황이라는 공연계에 23억을 들인 국산 창작물이다. 피앤피컴퍼니와 청심이 공동제작이 나섰다. 하지만, 청심이 통일교 재단의 기업이기 때문에 종교적 색채에 대한 우려감도 적지 않다. 이 연출은 이에대해 "뮤지컬이란 장르는 늘 상업성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부담보다는 마음이 편했어요. 제작비가 많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단역과 스탭들에게도 좀 더 나은 게런티를 지급할 수 있게 됐고요. 기업의 성격이 어떻든 관계 없이 창작 뮤지컬에 국가가 아닌 개인이 투자해 준다는 것에  감사하죠."라고 말했다.

    연말쯤에는 전국 순회 공연을, 내년에는 일본과 중국 시장 진출도 추진한다. 그녀는 뮤지컬 '서편제'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말한다. 만일, 이번 작품을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한국 창작 뮤지컬계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누구도 다시금 이러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만 같다는게 이 연출의 설명이다.

    뮤지컬 '서편제'는 내달 14일부터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