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15% 요구 땐 성과급 재원만 45조원파업 카드는 보상 투쟁 넘어 공급망 리스크성과급 투명화하되 미래 투자 여력 남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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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진 기자
메모리 슈퍼사이클이 삼성전자 노사 갈등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자 성과급 요구도 급격히 커졌다. 삼성전자 노조는 초과이익성과급(OPI) 상한 폐지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번 만큼 나누자”는 것이다.성과를 낸 직원에게 보상해야 한다는 원칙은 부정하기 어렵다. 삼성 내부에서 성과급 산식이 불투명하다는 불만이 누적된 것도 사실이다.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제도화한 뒤 삼성 직원들의 비교 심리가 커진 흐름도 이해할 수 있다.문제는 규모와 방식이다.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치 300조원을 기준으로 15%를 적용하면 성과급 재원은 45조원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연구개발 투자액 37조원과 주주 배당금 11조원을 합친 48조원에 육박한다. 역대 최대 인수합병인 하만 인수가 9조4000억원의 4.8배 수준이다. 이 정도 금액을 현금 보상 공식처럼 고정하자는 요구는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기업의 투자 체력과 주주 환원, 협력 생태계를 동시에 건드리는 문제다.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큰 산업이다. 지금은 AI 서버와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메모리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지만 이 흐름이 영원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삼성전자는 이미 메모리 불황의 대가를 치렀다. 2023년 DS부문은 14조879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그럼에도 전사 기준 흑자를 지킨 것은 DX부문 14조3847억원, 삼성디스플레이 5조5665억원, 하만 1조1737억원 등 비반도체 사업의 이익이 DS 적자를 상쇄했기 때문이다.이 구조를 외면한 채 “올해 많이 벌었으니 15%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삼성전자 전체 포트폴리오의 작동 원리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호황기 DS부문의 성과만 떼어 현금으로 극대화하자는 논리는 불황기 회사 전체가 손실을 떠안았던 구조를 설명하지 못한다.더구나 메모리 가격 급등은 삼성 내부에서도 이해관계를 갈라놓고 있다. DS부문에는 호재지만, 스마트폰·가전·TV를 맡는 DX부문에는 원가 부담이다. D램과 낸드 가격 상승은 스마트폰, PC, 노트북, 디스플레이 등 전방산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일각에서는 스마트폰 부품 원가에서 메모리 비중이 기존 20% 수준에서 40%까지 커질 수 있고, 올해 스마트폰 시장이 최대 10% 이상 역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삼성전자는 메모리만 파는 회사가 아니다. 완제품, 디스플레이,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협력사, 주주, 지역경제가 얽힌 거대한 산업 플랫폼이다. 노조가 이 구조를 외면할수록 성과급 요구는 공정한 배분이 아니라 특정 부문의 초과 이익 독식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더 우려스러운 대목은 총파업 카드다. 노조는 다음 달 21일부터 6월7일까지 18일간 총파업 가능성을 예고한 상태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라인은 일반 제조업 라인처럼 멈췄다가 곧바로 다시 돌릴 수 있는 설비가 아니다. 공정 중인 웨이퍼는 시간, 온도, 화학 처리 조건에 민감하다. 라인이 흔들리면 재공품 손실, 장비 재세팅, 수율 정상화, 고객 납기 차질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일부 전문가들은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생산 차질 규모가 최대 30조원에 달하고, 하루 손실 추정액만 약 1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손실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신뢰다. 반도체 고객사는 가격 못지않게 공급 안정성을 중시한다. 엔비디아, AMD, 빅테크 고객들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성능의 칩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전제로 제품 로드맵을 짠다.삼성전자가 파업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신호만으로도 고객은 대체 공급선 검토에 나설 수 있다. 한 번 공급망이 바뀌면 되돌리기 어렵다. 노조가 “더 많이 달라”며 택한 파업 카드가 장기적으로는 자신들이 일하는 생산기반과 고객 신뢰를 훼손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사측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전자는 성과급 산식을 더 명확히 공개하고,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 매년 실적이 날 때마다 노사가 줄다리기를 반복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보상 기준이 불투명하면 성과급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불신의 씨앗이 된다.다만 해법이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떼어내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사업부 실적, 개인 기여도, 미래 투자 여력, 주주 환원 계획을 함께 반영한 기준이 필요하다. 100조원을 벌었을 때와 300조원을 벌었을 때 같은 비율을 적용하는 것은 동기부여가 아니라 재무 부담이 될 수 있다.보상 구조도 구간형으로 바꿔야 한다. 이익 규모가 커질수록 지급률을 조정하고, 현금 일시 지급에만 기대기보다 주식보상, 이연성과급, 장기 인센티브를 섞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그래야 호황기에는 성과를 나누고, 불황기에는 투자 체력을 지킬 수 있다.지금 삼성 노조가 던져야 할 질문은 “올해 얼마를 더 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다. “우리가 멈춰 세우려는 생산라인이 누구의 미래를 떠받치고 있느냐”다. 성과급 산식의 투명화와 보상 체계 개편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요구가 파업과 일률적 현금 배분으로만 귀결된다면, 공정한 성과 공유라는 명분은 급격히 약해진다. 국민 눈에는 호황을 앞세운 고소득 노조의 기득권 투쟁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메모리 호황은 삼성전자 직원만의 성과가 아니다. 경영진의 투자 결정, 엔지니어의 기술 축적, 협력사의 납기 대응, 주주의 장기 자본, 정부의 산업 인프라, 국가 차원의 반도체 생태계가 함께 쌓아 올린 결과다. 그렇다면 과실의 배분도 단기 현금 보상에 갇혀서는 안 된다. 미래 투자, 주주 환원, 협력 생태계 안정, 공급망 신뢰라는 더 넓은 계산서 위에서 따져야 한다.삼성 성과급 논란의 본질은 불황이 와도 무너지지 않을 보상 원칙을 만들 수 있느냐다. 성과급은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미래까지 당겨 써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