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년간 자전거 가해사고 2만7000건과속·헬멧 의무는 '권고'뿐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 청소년 유행서울시, AI 과속감지 도입 … 법 개정은 번번이 무산
  • ▲ 지난 18일 오후 서울 한강공원 일대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김상진 기자
    ▲ 지난 18일 오후 서울 한강공원 일대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김상진 기자
    폭염이 한풀 꺾이면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지만, 안전 의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보행자가 많은 서울 한강공원 등에서 헬멧 등 안전장비 없이 자전거도로를 빠르게 주행하거나 브레이크가 '픽시 자전거'를 거리에서 타는 모습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도로교통법 등에 따르면 자전거도로에서 자전거를 운행하는 사람은 헬멧을 착용해야 하고, 시속 20km/h 이내로 주행하도록 권고되고 있지만 현행법상 처벌 규정이 사실상 전무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본보가 한국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최근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간 자전거 가해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연평균 5400건 이상 꾸준히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5667건이던 사고 건수는 2023년 5146건까지 줄었지만 2024년에는 5571건으로 다시 증가했다. 일시적인 감소세는 코로나19로 인한 외출 자제와 이동 제한의 영향으로 해석되며 실제로는 실질적인 사고 저감 효과가 없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5년간 자전거 운전자에 의해 발생한 총 교통사고는 2만7286건에 달하며 사망자 383명, 부상자 2만9694명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수는 2023년 64명으로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2024년 75명으로 다시 늘어나 사고 규모와 인명 피해 모두 뚜렷한 감소세보다는 일시적 등락을 반복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 한강공원 일대에 설치된 자전거 속도 권장 입간판. ⓒ김상진 기자
    ▲ 한강공원 일대에 설치된 자전거 속도 권장 입간판. ⓒ김상진 기자
    ◆20km/h 제한, 권고사항 … 시민들 "과속 자전거 무서워"

    자전거 교통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과속이 꼽힌다. 현행법상 개인형 이동장치(PM)나 일부 전기자전거를 제외하면 자전거 이용자에게 적용되는 구체적인 법적 최고 속도 제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강 자전거도로 등 일부 구간에는 '시속 20㎞ 제한' 또는 '안전 속도 20㎞'라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그러나 이는 강제 규정이 아니라 국토교통부 자전거도로 설계 기준과 지자체의 안전 권고를 근거로 마련된 조치다. 이에 따라 위반 시 과태료 부과 등 처벌조항도 없다. 다만 사고 발생 시 과실 비율 산정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현행 도로교통법은 자전거 운전자와 동승자 모두에게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 역시 처벌조항이 없는 권고사항에 그치고 있다. 도로교통법 제50조 제4항은 "자전거도로 및 도로를 운전할 때 인명 보호 장구를 착용해야 하며, 동승자에게도 이를 착용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같은 규정의 실효성 부족은 시민들의 불안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강공원 등지에서 헬멧 없이 고속 주행하는 자전거로 인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가 무섭다", "헬멧도 안 쓴 채 너무 빠르게 달린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잇따른다.

    여의도한강공원에서 만난 박찬희(22)씨는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갑자기 자전거가 쌩 지나가서 깜짝 놀란 경험이 있다"며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공원인데 자전거가 우선이 되는 거 같고, 다치면 저만 손해 보는 느낌이라서 그냥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다니고 있다"고 했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픽시 자전거'도 유행하고 있다. 픽시는 변속기와 브레이크 없이 단일 기어만 사용하는 경륜 선수용 '고정 기어 자전거(Fixed-gear bicycle)'로, 원래는 경기장에서만 쓰이던 장비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 자전거의 제동거리는 일반자전거보다 최소 5.5배 긴 것으로 나타났다. 시속 20km로 주행할 경우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 자전거의 제동거리는 일반 자전거보다 13.5배 길었고, 시속 10km의 저속 주행 시에도 5.5배 이상 차이가 났다. 돌발 상황에서 즉각 멈추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 사고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달 12일 오후 8시40분께 서울의 한 이면도로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없는 픽시 자전거를 타던 중학생이 제동하지 못하고 에어컨 실외기를 들이받아 치료 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 ▲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 위치한 자전거도로. ⓒ김상진 기자
    ▲ 서울 여의도한강공원에 위치한 자전거도로. ⓒ김상진 기자
    ◆서울시, 도로교통법 개정 건의했지만 무산

    서울시는 자전거 과속 탐지 시스템 설치를 늘리고 자전거 도로와 보행로를 명확히 구분하는 등 사고 예방책을 추진 중이지만 자전거에는 번호판이나 속도계 부착 의무가 없어 현실적인 단속이 어렵다는 문제가 계속 제기된다. 서울시가 일정 구간에서 자전거 속도를 시속 20km 이내로 제한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을 수차례 건의했지만 번번이 무산된 이유다.

    서울시는 2024년 자전거 사고가 끊이지 않는 한강공원 일대에 대해 종합적인 안전 개선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2019~2023년 9월까지 5년여간 한강공원 내에서 발생한 자전거 사고 471건에 대해 과속이 원인으로 추정된 사고가 전체의 48.2%에 이르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2025년까지 한강 자전거도로 자전거 과속 상습 지역을 중심으로 총 40개소에 AI 기반 스마트 CCTV를 활용해 실시간 속도를 감지하고, 전광판·음성 안내·바닥조명 등을 통해 과속 이용자에게 즉각 경고하는 시스템을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도로교통법 개정을 중앙정부에 건의하고 한강 자전거도로 내 법정 속도제한(시속 20km 이하) 규정을 명문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지만, 자전거에 속도계나 번호판 부착 의무가 없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단속과 계도 모두 현실적인 제약이 따른다는 이유로 관련 입법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전거가 자동차와 달리 속도계를 부착하지 않기 때문에 운전자가 자신의 속도를 알 수 없으며 과속 여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없다는 경찰측의 회신을 받았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