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내 인도적 위기 고조에 외교적 압박 나서英 "원조물자 봉쇄, 잔인하고 변명 여지없는 일" 항의'이스라엘 최대 교역국' EU서도 강경론…"제재 추진해야"
  • ▲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IDF)의 대규모 군사작전이 이어지면서 베이트라히야를 탈출한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자발리야에 도착하고 있다. 250518 AP/뉴시스. ⓒ뉴시스
    ▲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IDF)의 대규모 군사작전이 이어지면서 베이트라히야를 탈출한 팔레스타인 피란민들이 자발리야에 도착하고 있다. 250518 AP/뉴시스. ⓒ뉴시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군사작전 확대로 인한 인도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그간 신중론을 고수했던 유럽이 차츰 외교적 압박을 시작하는 분위기다.

    AP·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은 20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확대에 따른 가자지구의 인도주의 상황 악화를 이유로 이스라엘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치피 호토벨리 주영 이스라엘 대사를 외무부로 불러들여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원조물자 지원 봉쇄 결정이 "잔인하고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다.

    아울러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한 개인과 단체에도 추가 제재를 가했다. 이는 영국이 지난해 국제 인도주의 법 위반 위험을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면허 30건을 중단한 가운데 이뤄진 추가 조처다.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하원에서 "우린 이 같은 악화를 좌시할 수 없다"며 "이는 양국 관계를 유지하는 원칙들과 양립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특히 가자지구 주민의 제3국 강제 이주 가능성을 언급한 베잘렐 스모트리히 이스라엘 재무장관을 겨냥해 "극단주의적이고 위험하며 혐오스럽고 괴물 같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이스라엘 외무부는 외부 압력이 자국 방침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AFP가 전했다.

    오렌 마르모르스테인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은 "이미 영국은 협상을 진척시키지 않고 있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영국의 위임통치는 정확히 77년 전에 끝났다"며 "외부 압력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적으로부터 안보를 지키기 위한 길에서 벗어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 이스라엘 남부 케렘 샬롬 국경검문소에서 구호물자를 싣고 가자지구로 향하는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250519 AP/뉴시스. ⓒ뉴시스
    ▲ 이스라엘 남부 케렘 샬롬 국경검문소에서 구호물자를 싣고 가자지구로 향하는 트럭들이 대기하고 있다. 250519 AP/뉴시스. ⓒ뉴시스
    유럽연합(EU) 내에서도 강경론이 고조되고 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외교장관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가자지구의 인권침해 상황 관련, 회원국들이 EU-이스라엘 협정 재검토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칼라스 고위대표는 이스라엘과의 협력 협정 제2조에 대한 재검토 방침에 대해 전체 27개국 중 다수 회원국의 지지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EU 소식통들은 이날 회의에서 27개국 중 17개국이 재검토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EU·이스라엘 협력협정(Israel-EU Association Agreement)은 양자관계의 법적 기반을 담은 성격의 협정으로, 2000년 체결됐다.

    상호 지역을 자유무역 지대로 설정한다는 내용이 담겨 자유무역협정(FTA)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협정 제2조는 양자관계가 "인권과 민주주의 원칙 존중에 기반한다"고 명시하며 이를 협정의 "필수요소"로 규정한다.

    EU는 이스라엘의 최대 교역 상대국으로, 2024년 기준 이스라엘 전체 상품 교역량의 32%를 차지했다. 따라서 이번 검토 결정은 이스라엘에 상당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지난해에도 친(親) 팔레스타인 성향 회원국인 아일랜드가 네덜란드와 마찬가지로 협정 2조를 근거로 재검토를 요청했으나, 회원국간 이견에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세가 강화되고 구호물자 반입이 장기간 중단된 데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협정 재검토 주장이 다시 불거졌다.

    앞서 유엔은 최근 11주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봉쇄한 이후 일부 구호트럭의 진입이 허용됐지만, 가자지구 내에 원조물자가 전혀 배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엔은 더 많은 구호품이 가자주민들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48시간 내로 1만4000명의 아기가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호세 알바레스 스페인 외교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EU 차원에서 이스라엘 압박을 위한 외교적 조치를 활용해야 하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제재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은 전했다.

    마리아 말머 스테너가드 스웨덴 외무장관도 AFP통신에 보낸 입장문에서 "가자지구에서 (인도주의적 상황에 대한) 분명한 개선이 보이지 않고 있는 만큼 강경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이스라엘 장관들에 대한 EU 차원의 제재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22개국 외무장관은 공동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에 가자지구 구호물자 반입을 완전히 재개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성명에는 독일·영국·프랑스·호주·일본·뉴질랜드 등이 참여했고, 칼라스 고위대표를 비롯한 EU 집행위원 3명도 연명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