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의회 연설서 韓 무역불균형 압박성 발언 쏟아내"韓에 많은 군사도움 주는데 관세는 4배나 높다" 주장"韓, 알래스카 천연가스 참여 원해"…투자 종용"반도체법 끔찍, 폐지해야…관세가 투자유치에 더 효과적"삼성·하이닉스, 바이든 때 투자로 약속받은 보조금 사라질 판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 C. 연방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 C. 연방의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APⓒ뉴시스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향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 시간) 미국제품에 대한 한국의 평균 관세가 4배나 높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한국에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 한국이 수천조원에 이르는 미국 내 천연가스 사업에 참여할 것이라면서 투자를 종용했다.

    이날 오후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 D. 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의회 합동회의 연설에서 "유럽연합(EU), 중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캐나다, 그리고 다른 수많은 나라들이 우리에게 불공정하게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면서 "인도는 (미국 관세의) 100%, 중국은 2배, 한국은 4배 높다"고 한국을 거론했다. 미국 대비 무려 400% 고율 관세를 부과한다고 한국을 저격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한국에 군사적으로도, 다른 여러 방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데 공정하지 않은 처사"라며 "우방국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은 대부분의 상품을 무관세로 교역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400% 관세' 수치의 구체적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식 '상호관세'에 기반해 명시적인 관세율 뿐 아니라 기술 장벽, 환경 규제, 보조금, 환율 정책 등 비관세 장벽까지 감안해 추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그래서 4월2일 상호관세가 도입된다"며 상호관세 도입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면서 한국을 비롯한 잠재적 상호관세 부과국들에게 '옵션'을 제시했다. 관세를 피하고 싶다면 미국 현지에서 생산을 하라는 원론적인 기존 입장에서 더 나아가서 구체적인 투자처를 명시한 것이 눈에 띈다.

    그는 이날 "나의 행정부는 알래스카에 세계 최대 규모의 거대한 천연가스(LNG)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있다"며 "일본, 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각각 수조달러씩 투자하면서 우리의 파트너로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일은 여태 결코 없었으며 정말 멋진 일이 될 것"이라며 "모든 것은 진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언제라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사업기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 C. 연방의회에서 연설 중 객석을 가리키고 있다. 출처=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 C. 연방의회에서 연설 중 객석을 가리키고 있다. 출처=APⓒ뉴시스
    한국 정부로서는 당황스러운 상황이다. 주요 대미 흑자국인 한국은 미국의 관세 부과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 일환으로 알래스카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또는 개발 참여도 검토는 하고 있으나 확정 단계는 아니다.

    그런데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측만 마음 먹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인 양 국정연설에서 발표해버린 것이다. 수조달러 지출을 하는 주체도 한국인데 선심을 써서 투자할 기회를 준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이날 연설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은 거래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압박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우방임에도 지원만 받고 고관세 불공정 무역을 한다고 콕 집어 비난한 뒤, 면죄부 격인 투자처를 지목해 참여를 종용하는 식이다.

    또한 이 같은 행보는 미국의 무역 적자 규모를 줄이는 동시에 미중 패권 경쟁에 앞서 동맹국들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관세폭탄을 주고 받으며 중국과의 무역전쟁 신호탄을 쏘아올린 가운데, 동맹국들이 미국의 입장을 따를 수 밖에 없도록 압박을 가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관세와 함께 투자 정책을 통해 국가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강화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우선 투자 정책(America First Investment Policy)'이다. 이 정책에 따라 미국 정부는 동맹·우방국의 투자를 우선 승인하고 중국 등 경쟁국이 미국의 핵심 기술과 전략 산업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한다.

    이에 따라 한국의 알래스카 LNG 가스관 사업 참여와 투자 역시 자본의 논리만 따져서는 결정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미국이 냉전 체제에서처럼 미국에 투자할 것인지 여부를 두고 상대국을 아군 혹은 적군으로 분별하고 있어 애매한 태도를 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당근보다는 겁박으로 미국 내 투자를 종용하고 있다. 

    이날 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투자 시 혜택보다 투자를 하지 않는 경우 불이익을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반도체법은 끔찍하고 끔찍한 법"이라며 "그들(외국 반도체 기업)은 우리 돈을 가져만 가고 지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도체법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 당시 제정된 법률로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바이든 행정부 당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약속 받은 47억4500만달러(약 6조8000억원), 4억5800만달러(약 6600억원)의 보조금을 주기 싫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TSMC 사례 등을 언급하면서 보조금 대신 관세를 통해 외국 기업 투자를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그들은 관세를 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공장을) 짓고 있고 다른 여러 기업도 오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돈(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수십 명의 공화당 소속 의원이 반도체법 통과에 찬성했고, 공화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에서도 반도체법의 수혜를 받은 공장이 있어 트럼프가 반도체법 폐지가 의회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4배' 주장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한국의 대미 수입품 평균 관세율은 0.79% 수준에 불과하다는 반론을 내놨다. 환급까지 고려하면 실질 관세율은 더 낮다는 주장이다. 미국 측과도 소통해 오해를 바로 잡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평균 최혜국 대우(MFN) 관세율을 기준으로 비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MFN 관세율은 13.4%로 미국(3.3%)의 약 4배다. 그러나 실제로는 FTA의 적용으로 대미 관세율은 0%대라고 정부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