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아시아판 나토'·美 전술핵 배치 주장전문가 "美 전술핵 전진배치 한다면 日이 적합"한미일 협력 않으면 '제2애치슨라인' 우려美 이견 분분 … 韓, 외교력 발휘할 때
  • ▲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집권 자민당 총재가 지난달 27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집권 자민당 총재가 지난달 27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설하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비둘기파'이지만 안보에 있어선 '강경 매파'인 이시바 시게루 신임 집권 자민당 총재가 1일 신임 총리로 취임한 가운데, '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과 '미국 전술핵 배치'가 화두로 떠올랐다. 이시바 신임 총리는 냉전시대에 체결된 미국과의 양자동맹으로는 오늘날 북중러의 핵 위협을 막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화두를 한미일에 던졌다.

    그간 동아시아 집단안보체제의 탄생을 가로막은 일본의 '비핵 3원칙'(핵무기 제조·보유·반입 금지)와 '평화헌법'(육해공 전력 보유·교전권 부인), 그리고 한일 역사 갈등 등 주요 장애물이 그의 취임으로 점차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기독교 신자인 이시바 신임 총리는 향후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왕'과 총리의 53회에 걸친 과거사 사죄에도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는 그의 온건한 역사의식은 한일 안보협력 강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비핵 3원칙'을 깨고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추구하는 이시바 신임 총리의 이러한 구상은 한국의 호응 여부에 따라 기회가 되거나 재앙이 될 수 있다. 북핵이 고도화하고 북한과 러시아가 동맹을 복원하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한국 자체 핵무장에 대한 논의를 사실상 금기시해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재에 대한 우려 때문일 뿐 아니라 '미국의 핵패권(확장억제)에 도전해선 안 된다'는 사대주의 때문이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시바 내각의 등장에 따라 우리 정부는 미국 확장억제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전술핵 재배치, 나아가 자체 핵무장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반면, 한국이 '안보 불감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소극적으로 호응하게 된다면 1950년 미국이 한반도를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한 사실상의 '애치슨라인'이 다시 그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시바, '미일동맹 중심 아시아판 나토' 제언 … "美 핵 반입 검토해야"

    1일 외교가에 따르면, 이시바 신임 총리는 지난달 27일(현지시각) 미국 외교·안보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에 게재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의 새로운 안보 시대: 일본의 외교 정책의 장래'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아시아판 나토를 창설하고 이 틀 내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나 핵 반입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시아에 나토와 같은 집단적 자위 체제가 존재하지 않고 상위 방호의 의무가 없어 전쟁이 발발하기 쉬운 상태"라며 "아시아판 나토 창설로 중국과 러시아, 북한의 핵 연합에 대한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일본은 미일동맹 이외에 캐나다, 호주, 필리핀, 인도, 프랑스, 영국과 준동맹국 관계"라며 "한국과도 안보 협력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동맹 관계를 격상하면 일미 동맹을 핵심으로 아시아판 나토까지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비대칭 쌍무조약을 고칠 기회가 무르익었다"면서 1951년 체결돼 이후 개정된 미일안전보장조약의 개정,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법적 특권을 인정한 미일지위협정 개정, 그리고 미국 내 자위대 훈련기지 설치도 제안했다.

    집권 자민당 내에서 기반이 약한 '비주류'인 이시바 총리는 스스로 정치력 시험대에 올랐다. 미일안전보장조약과 미일지위협정을 개정하고,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을 해내고 '핵무기를 제조·보유·반입하지 않는다'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인 '비핵 3원칙'을 뒤집어야 하는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다.

    그는 이르면 오는 9일 중의원(하원)을 조기 해산하고, 같은 달 27일 총선거를 실시할 계획이다. 역대 총리 취임 이후 가장 빠른 중의원 해산과 선거 일정이다. 이는 국민 지지율이 높은 '허니문 기간'에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심산으로 풀이된다.
  • ▲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제주도당이 2017년 9월 21일 오후 제주시청 광장에서 '전술핵 재배치' 길거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제주도당이 2017년 9월 21일 오후 제주시청 광장에서 '전술핵 재배치' 길거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뉴시스
    ◆전문가들 "美 전술핵 전진 배치, 韓보다는 日에 적합"

    특히 일본은 미 전술핵 전진 배치의 중심이 되기에 가장 적합한 곳으로 꼽힌다. 일본은 한국에 비해 북한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가 있고, 미사일방어체제도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핵 전략가인 박휘락 국민대 특임교수는 뉴데일리에 "미사일 방어 시스템은 미사일과 표적의 사이에 있어야 요격 확률이 높기에 (한반도 내 전술핵 재배치가) 가능한 선택지는 제주도뿐"이라며 "제주도에는 '바다 위의 사드'라고 불리는 해상배치용 요격 미사일 SM3를 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의식 수준을 생각하면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 전술핵 전진 배치의 중심으로 일본을 꼽으면서도 "일본은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를 겪은 만큼, 여전히 반(反)핵 기조가 상당하다"며 "평양으로부터 3400㎞ 떨어진 미국령 괌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하고 한미일 전투기가 유사시 투발하는 방안, 그리고 전술핵 탑재 미 잠수함을 관련 국가들이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美 전술핵 재배치北 선제타격' 평면적 사고 … '호기' 놓칠 우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이러한 호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최근 한 최고위 외교·안보 당국자는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면 북한이 선제공격할 타겟을 하나 늘려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한미동맹의 '철통같은 굳건함'을 대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수단임을 간과한 단순하고 평면적인 인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비핵국인 한국이 '불법 핵무장국'인 북한에 대해 '공포의 핵 균형'을 달성할 물리적이자 심리적인 수단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재 동아시아의 안보 환경은 나토 결성 당시의 유럽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장은 최근 칼럼에서 점증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두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그리고 대만해협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중국의 해양 패권 야욕,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위압적 영향력, 러시아와 일본의 영토 갈등 등을 언급하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러면서 "냉전이 끝난 오늘날에도 미국은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이탈리아, 튀르키예에 약 100∼120개 정도의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고 있다"며 "유럽에는 전술핵무기를 배치하면서 유럽보다 안보 상황이 더 심각한 한반도에는 배치를 안 하겠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 ▲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8월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8월 18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미국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정상회의 일정을 마친 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
    ◆"한미일 안보협력에 적극 호응해야 … '제2의 애치슨라인' 우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는 한미동맹에 기반한 자체 핵무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한다. 아시아판 나토 창설과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하는 이시바 내각의 취임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 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핵무장을 반대하는 국내 안보 전문가들조차도 만약 한국과 일본이 함께 핵무장을 추진한다면 제재를 회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은 자국의 국익에 부합하는 국가가 핵무장하면 '형식적인 제재'에 그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2020년 언론 기고문을 통해 "경제 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의 성향을 보면, 자국의 가치와 국익에 일치하는 국가가 핵무장하면 제재가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며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그랬고, 인도도 마찬가지다. G3 일본과 G11 한국을 동시에 제재하는 것은 미국에도 큰 부담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이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한국군 최초로 주한 미8군 부사령관을 지낸 김태업 미8군 정치군사상임고문(예비역 육군 준장)은 최근 뉴데일리와 만난 자리에서 "아시아판 나토 창설에 우리도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 오커스와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비공식 안보협의체)는 경제에 기반을 둔 협의체이기에 방위비 분담은 하지 않는다"며 "그런데 아시아판 나토를 만들고 방위비를 분담하면 책임이 따르게 된다. 이럴 때 자칫 일본에 밀리게 되면 좀 과장해서 '제2의 애치슨라인'이 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맹국인 미국을 신뢰하는 강력한 한미동맹주의자"임을 자처하면서도 "자국의 안보를 위해 자국의 우산만 쓰는 나라는 없듯이, 동아시아나 태평양에서도 미국의 우산만 쓰고 있을 수는 없다. 1951년 애치슨라인,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 국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1969년 '닉슨 독트린'이 발표됐듯이 미국은 자국의 국익에 따라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술핵 재배치' 美 이견 분분 … 韓, 외교력 발휘할 때

    동아시아 내 미국 핵 공유에 대한 의견은 미 정계에서조차 어느 하나로 딱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공화당 소속 미 하원 외교위 마이클 롤러 의원은 지난해 12월 인도태평양 조약기구(IPTO) 설치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 법안을 발의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올해 4월 "아시아의 국방과 안보 구조는 유럽 구조와 상당히 다르다"라며 '아시아판 나토 창설' 가능성을 일축했다. 미 상원 군사위원회의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상원의원은 같은 해 5월 "한반도에서 억제를 강화하기 위해 인도·태평양에서 핵 공유 합의와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