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 운동권 대부 … 담낭암 투병 중 세상 떠나전태일 분신자살 접하며 학생·노동 운동 투신국회의원·대통령 선거 도전 … 제도권 정치 입문은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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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지난해 여의도 사무실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는 모습. ⓒ서성진 기자
'영원한 재야'로 불리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22일 별세했다. 향년 78세.장 원장은 이날 오전 1시 35분쯤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고인은 지난 7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투병사실을 밝혔다.그는 "며칠 전에 건강상태가 안 좋아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은 결과 담낭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되어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말했다.그러면서 "당혹스럽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한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부연했다.그는 "자연의 순환질서 곧 자연의 이법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 온 사람이기에 자연의 이법에 따른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도 했다.고인은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 후 전태일 분신자살을 접하며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했다. 전태일 열사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는 한동안 서울 도봉구 쌍문동 같은 동네에 살며 노동운동을 도운 것으로도 알려져있다.고인은 서울대생 내란 음모 사건,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그는 김영삼 정부 당시 민주화 운동 관련자 보상법에 따라 민주화 보상금을 지급했지만 보상금을 수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고인은 "누구나 자기 영역에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보상금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밝히기도 했다.재야운동의 한계를 느낀 고인은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하지만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선거, 이어 17·19·21대까지 총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보수정당(미래통합당) 후보로까지 옮겨 출마했으나 낙선했다.세 차례의 대통령 선거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그는 한평생 노동·시민운동에 헌신했으나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한 바 있다.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 씨와 딸 2명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