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서훈 은폐 지시 배경 담은 공소장 국회 제출이대준 씨 피살 3시간 뒤 文 '남북화해 및 종전선언' 화상연설서훈, 이씨 자진월북했다는 인식 주기 위해 '가이드라인' 직접 만들어
  • ▲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12월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12월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검찰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 총격을 받고 숨진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 씨를 '자진월북'으로 몰아간 핵심 동기가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받을 비판여론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이씨 피살 3시간 만에 유엔 총회에서 '남북화해 및 종전선언'을 촉구하는 화상연설을 앞두고 있었다. 검찰은 이 때문에 북한에 의해 우리 국민이 피살됐는데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촉구할 경우 강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해 피격 사실을 은폐하려고 했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지난 9일 이런 내용이 포함된 서 전 실장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을 대상으로 한 공소장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공소장은 A4 용지 117쪽 분량이다.

    서훈, 정부 부실대응 논란 우려 국방부·해경에 관련 사실 은폐

    검찰에 따르면, 서 전 실장은 이씨가 2020년 9월22일 밤 북한군에 피살되고 난 뒤 정부의 부실대응 논란이 일어날 것을 우려해 국방부와 해경 등에 관련 사실 은폐를 지시했다. 

    그러나 다음날 이씨가 피살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서 전 실장은 하루 뒤인 9월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이씨가 월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정하고 김 전 해경청장에게 자진월북 취지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오전 서 전 실장이 '(이씨의) 주변 인물 진술, 통화 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월북 의도는 발견되지 않음' 등 이씨의 자진월북과 배치되는 증거를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해경에 자진월북 관련 지시를 내렸다고 봤다. 

    특히 서 전 실장은 NSC에서 "일부 언론 등에서 금번 사건을 '제2의 금강산관광객 피격 사망사건'이라는 기조로 보도하나, 금강산관광객 피격사건은 우리 국민이 합법적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라며 "금번 사건의 경우 합법적 절차 진행 간 발생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운 측면, 즉 자진월북한 것으로 보이는 점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공소장에 적시됐다.

    검찰은 또 서 전 실장이 2020년 9월23일 오후 해경으로부터 '이대준 씨 실종 및 수색 계속 중'이라는 취지의 보도자료 초안을 보고받은 후 이씨가 자진월북했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여기에 'CCTV 사각지대에서 신발이 발견' '목포에서 가족 간 문제로 혼자 생활 중' 등의 내용이 담긴 '가이드라인'을 직접 가필한 것으로 파악했다. 

    서 전 실장은 이런 허위 내용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하라고 김 전 해경청장에게 지시했고, 김 전 청장도 이를 해경 실무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피살 보고 후 수색 중인 것처럼 발표… 직권남용 혐의 있다고 판단

    하지만 서 전 실장은 이미 전날 밤 이씨가 북한군에 피살됐고 시신이 소각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검찰은 서 전 실장이 김 전 청장에게 이씨가 이미 사망했는데도 실종 상태로 수색 중인 것처럼 발표하게 하면서 마치 이씨가 자진월북한 듯한 인식을 주는 내용이 포함되도록 해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 혐의가 있다고 봤다.

    검찰은 서 전 실장에게 2020년 9월24일 '이대준 씨는 스스로 북한 해역에 불법침입한 월북자'라는 허위 내용의 자료를 외교부를 통해 모든 재외 공관에 신속하게 배포하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했다.

    서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9일 구속 기소됐고, 김 전 해경청장은 같은 날 불구속 기소됐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과 노은채 전 국정원장비서실장, 서욱 전 국방부장관도 지난해 12월29일 불구속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