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신문협회 성명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 즉각 중단하라"… 한변·정교모 "민주주의 토대 무너질 것"
  • ▲ 국회 법사위장 자료사진. ⓒ이종현 기자
    ▲ 국회 법사위장 자료사진. ⓒ이종현 기자
    정부와 여당이 언론개혁을 빌미로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과 관련, 각계각층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 국내 언론단체에 이어 세계신문협회를 비롯해 교육계와 법조계도 언론중재법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12일 한국신문협회에 따르면, 이날 세계신문협회는 "전 세계 언론은 '가짜뉴스' 법률과 싸우고 있는 대한민국 언론과 함께 나서다"라는 제목의 공식 성명을 한국신문협회에 보내왔다. 

    세계신문협회는 세계 언론자유 창달을 목적으로 1948년 설립된 세계 최대규모의 언론단체다. 현재 60여 국 1만5000여 언론사가 가입했다.

    세계신문협회 "한국 언론단체와 연대해 개정안 철회 힘 보태겠다"

    세계신문협회는 성명에서 "한국정부와 여당 등 관계기관은 허위정보를 위해 성급히 마련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 개정안은 비판언론을 침묵시키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전통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담은 이른바 '가짜뉴스'의 발행 의도를 규정하는 기준을 정하려는 시도에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힌 세계신문협회는 "가짜뉴스를 결정하는 기준은 필연적으로 해석의 남용으로 이어져 보도의 자유에 위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질타했다.

    세계신문협회는 "한국신문협회를 비롯한 언론단체(관훈클럽·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연대해 헌법이 보장하는 범위를 뛰어넘는 개정안을 철회하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했다.

    뱅상 페레네 세계신문협회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언론중재법과 관련 "이러한 유형의 규제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주의적인 정권에 의해 조장되어 왔으며,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향한 비판을 잠재우는 데 사용되는 편리한 수단이었다"며 "(이러한 규제는) 결과적으로 언론자유를 침해한다"고 꼬집었다. 

    페레네 최고경영자는 "개정안이 그대로 추진된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고 비판적인 토론을 사실상 억제하려는 최악의 권위주의 정권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세계신문협회 성명은 한국신문협회가 지난 9일 언론중재법 개정 관련 상황을 보고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신문협회는 1971년 세계신문협회에 가입했다. 세계신문협회 회원사들은 언론자유와 관련한 현안이 발생할 경우 상황을 공유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한다.

    한변 "정치·경제권력들 언론 재갈 물리는 데 악용할 것"

    이날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도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언론 징벌법 추진을 즉시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한변은 "세계에서 유례 없이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도 형사처벌하는 우리나라에서 개정안이 특히 언론 상대 민사소송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형벌적 성격을 갖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는 것은 그 자체 과잉입법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최대 5배까지 배상책임을 부과할 수 있고 해당 언론사 매출의 1만분의 1 수준의 손해배상 기준금액을 하한으로 설정한 것은 전대미문의 일로 소득에 따른 차등벌금제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법체계와 조화되지 않고,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한 한변은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추정 역시 손해를 주장하는 자가 이를 입증해야 한다는 입증책임의 대원칙을 무시하는 조항이고, 같은 크기와 같은 분량의 정정보도를 강제하는 것도 언론의 자유를 심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농후하다"고 우려했다.

    한변은 특히 허위·조작 보도(개정안 제2조)라는 불분명한 개념은 개정안이 피해 구제보다는 비판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정치·경제권력의 전략적 봉쇄소송(SLAPP) 근거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정부 고위관료나 정치인·대기업 등 신문·방송의 비판 대상이 되는 권력기관은 언론 보도에 자의적으로 '허위·조작 보도'라고 주장하며 손쉽게 소송을 벌일 수 있게 되고, 언론인들은 상시로 소송당할 위기에 처해 아무 말도 못하게 되는 이른바 '위축효과'가 극대화해 결국 국민의 알 권리는 심각하게 침해되고 건전한 정권 비판이 불가능해져 민주주의의 토대가 무너진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 ▲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뉴시스
    ▲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했다. ⓒ뉴시스
    '사회정의를바라는전국교수모임'(정교모)도 성명을 내고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입법강행에 대해 저항과 불복종의 입장을 천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교모는 "민주당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통과시키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재갈"이라며 "언론사의 악의적 가짜뉴스를 엄단하여 개인이 언론사로부터 입은 피해에 대한 구제를 용이하게 한다는 구실을 내세우지만, 이 법의 조항들은 근대 문명국가 그 어느 언론법제, 손해배상에 관한 일반 사법 영역에 있어서도 유례가 없는 수치스러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판했다.

    정교모 "위선과 정권의 치부를 가리려는 언론재갈법 강행 중단하라"

    정교모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인해 "어떤 언론 매체든 객관적 사실조차도 보도하기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 정교모는 "거기에 매출액의 1만분의 1에서 1000분의 1을 기준으로 3~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하고, 손해배상 하한선을 두도록 한 것은 뉴스를 한 번 내보낼 때마다 언론사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는 협박과 다름없다"고 질타했다.

    정교모는 또 "야당·언론·국민의 무관심이 180여 석의 범여권의 입법독재를 부추긴 책임에서 우리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이제라도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가 공기 속의 산소처럼 중요하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는 모든 국민은 이 희대의 악법 추진에 항거하고 불복종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이라도 당신들의 위선과 정권의 치부를 가리려는 언론재갈법의 강행 시도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인 정교모는 "자신들의 위선, 무능, 부패를 언론에 재갈을 물려 덮어보려는 꼼수를 당장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서 허위·조작 보도에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을 물리는 내용 등을 담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처리했다. 이후 한국기자협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 관훈클럽 등 언론단체는 개정안을 비판하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 9일부터는 관훈클럽·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6개 언론단체가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하고 '언론인 서명운동'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