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고의성' 인정"… KBS ""유죄 유감, 항소 검토"
  • 2018년 'KBS진실과 미래위원회(진미위)'의 운영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취업규칙을 변경한 혐의로 기소된 양승동(60·사진) KBS 사장이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15일 서울남부지법 형사5단독(부장판사 김인택)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양 사장에게 검찰 구형량보다 2배 늘어난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진실과 미래위원회의 운영규정은 취업규칙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으나, 이 규정은 공사 소속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를 위반할 시 구체적인 징계사유를 정하고 있어 취업규칙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진미위 운영규정은 △근로자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여함과 동시에 △조사대상에 제한이 없고 △징계시효가 지난 사안도 조사할 수 있으며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징계대상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한 점 등은 '취업규칙의 불이익한 변경'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사장 취임 공약사항으로 진미위를 만든 피고인은 사규에 대한 최고의사결정권자"라면서 "당시 KBS노동조합은 물론 KBS이사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개진된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고의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KBS "진미위, 사회통념상 합리성 인정‥ 근로자 과반 동의 필요없어"

    판결 직후 KBS는 "진미위를 만든 취지는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고 공영방송으로서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서였다"며 "이를 위한 규정 제정과정에서 발생한 일부 미비점에 대해 법원이 유죄를 선고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재판은 '진미위 규정' 제정과정에서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은 것일 뿐, 규정의 전체적인 정당성을 부정하거나 이후 인사위원회를 거친 징계절차가 무효라는 판단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KBS는 "진미위는 공영방송 KBS의 공적 책임 준수와 공정성·독립성·자율성 등을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돼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진미위 운영규정'은 사전에 이뤄진 다수의 외부 법무법인 자문 과정에서도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에 대한 지적은 없었고, KBS 최고의결기관인 이사회에서도 충분한 논의 끝에 의결됐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한 고의성 또한 인정돼서는 안 된다"며 "항소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KBS노조 "공사에 손해 입힌 사장 위해 왜 회사가 소송비 내나?"

    앞서 양승동 사장을 '검언유착 오보'에 따른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고발한 허성권 KBS노동조합 위원장은 "이번 판결은 검찰이 약식기소로 사실상 양승동 사장을 봐주려 했음에도 법원이 정식재판에 회부하고 형량까지 높였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며 검찰이 150만원의 벌금을 구형했지만, 재판부가 그 두 배인 300만원을 선고했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이 사안이 최종적으로 유죄로 확정될 경우, 지금까지 발생한 모든 변호사 비용과 회사 내부의 법무실 지원 비용, 벌금까지 양 사장 본인이 내야 한다"며 "양 사장이 버티면 바로 구상권 청구가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영풍 KBS노조 정책공정방송실장은 "앞서 양승동 사장과 김종명 보도본부장 등 등 총 9명을 '검언유착 오보'에 따른 업무방해·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발하자, KBS가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LKB)를 양 사장 등의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하고 약 5000만원의 수임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양 사장이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피소된 이번 사건에도 KBS가 같은 법무법인을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아마도 비슷한 수준의 수임료가 책정됐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KBS노조는 "KBS 경영진과 보도 관계자들을 변호하기 위해 KBS가 '소송비용'을 부담한 것은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 재정에 손실을 가져온 범죄행위"라며 양 사장과 국은주 전략기획실장, 류해남 법무실장 등 3명을 지난달 경찰에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진미위 운영규정, 근로자 과반 동의 없어 절차상 하자"

    앞서 KBS공영노동조합은 2018년 7월 "KBS진실과미래위원회가 방송법 등을 어기면서 직원들에 대한 무차별 보복성 징계를 추진하는 한편, 직원들의 과거 보도활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자들의 이메일을 몰래 열어보기도 했다"며 양승동 사장과 진미위 관계자들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영등포경찰서에 고발하고, 서울남부지방법원에 진미위 활동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에 법원은 같은 해 9월 "진실과미래위원회가 사내 구성원들을 상대로 징계 등의 인사조치를 요구하는 것은 기존의 인사규정과는 다른, 새로운 징벌조항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따라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지만 진미위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지 못해 절차상 하자를 안고 있다"며 진미위 설치 및 운영규정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판결했다.

    이처럼 법원이 진미위의 운영규정과 활동 일부가 법에 저촉된다는 판결을 내리자 공영노조는 같은 해 11월 양승동 사장을 단체 협약 위반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부에 고발했다.

    사건을 접수한 고용노동부 서울남부지청은 2019년 5월 "양승동 사장이 진실과미래위원회를 만들면서 근로기준법상 규칙의 작성 변경 절차를 위반했다"고 판단, 서울남부지검에 양 사장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이에 검찰은 지난해 8월 양 사장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약식기소했으나 약식명령 청구를 접수한 재판부가 "사안의 성격상 신중한 심리가 필요하다"며 정식재판에 회부해 이날까지 4차례 공판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