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차기 국무 등 바이든 측 "북핵 동결-제재 완화" 주장… 빅터 차도 "단계적 군축" 강조
  • ▲ [윌밍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퀸 극장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른발에 깁스를 한 채 나오면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윌밍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 있는 퀸 극장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오른발에 깁스를 한 채 나오면서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하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추가 개발을 막는 방향으로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미국 내에서 연이어 나왔다. 2015년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맺은 핵협정을 모델로 하여 군축과 사찰, 그리고 제재 해제를 교환할 것이라는 말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5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함께 이란과 제한적 핵 사찰을 조건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주는 내용의 '비핵화를 위한 공동종합계획'(이란핵협정)을 체결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의 핵 개발을 막기 위해 "더 나은 대안은 없다"며 외교 성과로 자평했다. 

    FT "블링컨 지명자, 북핵에 이란식 접근이 타당하다는 입장"

    이 협정은 그러나 이란이 사찰을 허용하는 핵시설만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접근하도록 해 비밀 핵 개발을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의 평화를 해칠 것이라며 이 협정에 반대했다. 

    2016년 대선 전부터 이 협정을 "사상 최악의 협상"이라고 혹평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5월 "이란의 비핵화나 테러리즘 지원활동을 억제하는 데 실패했다"며 협정에서 탈퇴하고 제재를 부활했다.(관련 기사)

    문제는 이 같은 이란 핵협정 모델이 북한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바이든 캠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트럼프 임기가 끝나가면서 김정은에게 무기 통제를 제의하라는 요구가 나온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핵문제 해법에 관한 바이든 캠프의 분위기를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이들의 시각은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북핵을 관리하는 방식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북한 핵 포기 절대 안 한다"는 전제… 차라리 군축과 통제가 낫다는 것

    바이든 당선인이 차기 국무장관으로 발탁한 토니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은 2018년 미북 싱가포르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모든 핵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국제적 감시 하에 재처리시설을 동결하며 일부 경제적 구제를 대가로 일부 탄두와 미사일을 파괴하도록 하는 중간 단계 합의가 나을 것"이라고 쓴 기고를 뉴욕타임스에 실은 바 있다. 

    FT는 이 같은 블링컨 전 국무부 부장관의 시각과 관련해 "이란 핵협정식 해법을 촉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 반 잭슨 선임부연구위원은 "북한은 핵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완전한 포기라는) 목표는 공상적이며, 신뢰할 수 없으며, 비현실적"이라고 FT에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인 '완전한 북핵 폐기'라는 목표를 겨냥한 것이다.

    '완전한 북핵 폐기'라는 목표부터 잘못됐다… 바이든, 전략 변화 있을 것

    현재 바이든 행정부 초대 국방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차관 역시 지난 9월 미국 국방뉴스(Defense News)와 인터뷰에서 "군축의 관점에서 보면 북한은 완전한 핵무장 해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핵이 그들의 생존 카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목표 설정부터 잘못된 것이므로, 목표와 전략을 모두 바꿔야 하는 것이다.

    퀸시연구소의 제시카 리 연구원은 "미셸 플러노이 등 바이든 당선인의 외교안보 내각 인선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더욱 전략적인 접근을 암시한다"며 차기 미 행정부에서 대북전략이 수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심지어 조지 W. 부시 공화당 행정부 출신의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역시 최근 단계적 핵 폐기론을 들고 나왔다. 

    차 석좌는 지난달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기고에서 "미북 협상에서는 선례가 없었지만 과거 냉전시대에는 선례가 있었다"며 "북한이 가진 무기 중 가장 위험한 요소를 제거하는 식의 단기적 군축협상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지난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사진=노동신문 캡처) ⓒ뉴시스
    ▲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지난 10월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사진=노동신문 캡처) ⓒ뉴시스
    FT "북한이 40개 핵탄두 자랑할 때부터 무기 통제로 바꾸자는 요구 있었다"

    FT는 이와 같은 발언을 들며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FT는 "현재 북한은 20~40개의 핵탄두를 자랑하는 만큼, 미국이 무기 통제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나온다"며 "이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보다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고 현존하는 무기의 사용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2015년 이란은 아직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라고 해도 이란에 적용한 방식을 핵을 보유한 북한에 그대로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단기적 성과를 위한 전략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심심찮게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 15일 북핵 해법과 관련한 민주당 인사들의 견해를 전하며 "핵 동결이나 핵 상한선 설정이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실었다.

    다만 FT는 북한에 양보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 

    FT는 "많은 전문가는 북한에 양보를 제공하는 어떤 정책도 미국 하원의 반대에 직면할 것이라고 본다"며 "과거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협정을 준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이 비밀스러운 나라에 국제사회의 접근이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