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란핵협정 탈퇴 ③] 북한 비밀핵시설 1만여 곳 '꼼꼼 사찰' 예고
  • 이란 주요 핵시설 지도. 2015년 7월 이란핵협정에서는 이란이 신고한 주요 핵시설에 대해서만 사찰을 합의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란 주요 핵시설 지도. 2015년 7월 이란핵협정에서는 이란이 신고한 주요 핵시설에 대해서만 사찰을 합의했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도널드 트럼프 美대통령이 이란핵협정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한 뒤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이란핵협정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보도는 보기 어렵다. 이란핵협정의 내용이 대체 어떻기에 트럼프 美대통령은 탈퇴를 결심한 걸까.

    이란핵협정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주요 내용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15년에 정리한 보고서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어떤 내용의 핵협정을 맺었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이란핵협정은 핵 폐기라기보다는 핵개발 동결에 가까웠다.

    관련 조항들은 이랬다. 먼저 이란은 우라늄 농축 능력, 농축 수준, 비축량을 지정된 기간으로 한정하고 ‘나탄즈 시설’ 이외에는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기로 했다. 두 번째 ‘포르도 시설’에서는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기로 했다. 세 번째 이란핵협정 규정 이행의 감시를 위해 국제원자력에너지기구(IAEA)의 사찰을 받기로 했다. 이란이 이 세 가지를 이행하면 국제사회는 제재를 푼다는 내용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보면, 이란은 기존에 보유한 1만 9,000여 개의 원심분리기를 1세대 원심분리기 IR-1 기종 6,104개만 보유하도록 하고, 2025년까지 10년 동안 5,060개의 원심분리기만 이용해 농축우라늄을 생산하도록 규정했다. 이때 우라늄 농축 수준은 3.67%이며, 시한은 2030년까지로 정했다. 또한 2025년까지 이란의 핵무기 전용시간을 현재 2~3개월인 것은 최소 1년으로 연장한다고 합의했다.

    ‘포르도 시설’의 경우 우라늄 농축을 영구히 제한한 것이 아니라 최소 15년, 2030년까지만 농축을 하지 않도록 했으며, 해당 시설을 ‘평화적 목적의 핵, 물리, 기술 센터’로 전환하고, 국제사회와 합의한 분야만을 연구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포르도 시설’에는 어떠한 핵분열 물질도 보관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라크 시설’에 있는 중수로의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는 금지하며, 이를 해외로 반출하기로 했고, 기존 중수로의 현대화를 위한 재설계 및 재건축을 국제사회가 지원하기로 했다.

    IAEA의 이란 핵시설 사찰은 회원국들이 핵시설 건설 후 핵연료를 넣기 180일 이전 보고하도록 한 기존의 규정을 준용하도록 했고, 사찰은 IAEA를 통해 강도 높게 실시하기로 했다.

    이 같은 규정들은 일면 강력해 보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허술했다. 이란은 2005년을 전후로 아라크, 파르친, 나탄즈, 포르도에 핵시설을 만들어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 이곳은 이란 정부가 국제사회에 알려준 시설로 비밀 핵시설 존재 여부는 파악하지 못했다.

    때문에 이란핵협정을 체결한 직후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이란의 핵개발로 인한 중동 불안정을 용인하는 것이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 2002년 8월 7일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건설하던 경수로에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던 모습.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 2기 중 하나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02년 8월 7일 함경남도 금호지구에 건설하던 경수로에 콘크리트 타설작업을 하던 모습.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에 지어주기로 한 경수로 2기 중 하나다.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의 이란핵협정 탈퇴, 한국에게는 잘 된 일

    트럼프 美대통령의 이란핵협정 탈퇴 선언을 두고 한국 언론들 또한 해외 언론들의 보도를 받아 “국제평화를 어지럽히는 일”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비핵화를 앞둔 한국에게 이번 일은 잘 된 일이다. 美北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이란핵협정’처럼 비핵화를 추진하자고 했더라면 자칫 ‘무늬만 비핵화’인 과정을 넘어서 한국이 무장해제를 당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란핵협정’은 1994년 12월 ‘제네바 핵합의’와도 너무 닮았다. 당시 한국과 미국, 일본, EU는 북한과의 협상 끝에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경수로 2기를 건설해주고 ▲경수로 완공 때까지 매년 석유 50만 톤을 공급해주며 ▲동시에 IAEA가 북한이 신고한 핵시설을 사찰하고 향후 감시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때 북한은 IAEA 사찰을 받는 동시에 비밀 시설을 통해 우라늄 농축을 포함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작업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합의 8년 뒤인 2002년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 보유하고 있음이 드러나 결국 합의는 파기됐다. 이듬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6자 회담 체제가 시작됐지만 북한은 계속 시간만 끌었고, 2006년 9월 1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이후로도 6자 회담 체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한국과 미국, 이런 체제를 선호한 중국, 러시아가 계속 북한과 대화를 주장했지만 결국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다.

    앞서 설명한 ‘이란핵협정’에 트럼프 정부가 잔류를 결정, 계속 살아 있는 체제가 되었다면 美北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이를 이용하지 않았을까. 이를 이용한다면 북한 비핵화는 이란핵협정과 크게 차이가 없는 수준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군사전문가들과 탈북자들, 해외 언론들이 1만여 곳 이상이 될 것이라고 추정하는 북한 비밀 핵시설은 제대로 사찰할 도리가 없어진다. 또한 이란핵협정과 같이 ‘평화적 핵이용’과 ‘우라늄 농축’을 조금이라도 허용한다면 김정은 정권에게 대놓고 핵무기를 만들라는 말이나 다름 없다.

    이는 트럼프 美대통령이 취임 이후 거듭 강조해온 CVID 또는 PVID 원칙에 따른 북한 비핵화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가 이란핵협정을 탈퇴한 것은 한국을 비롯해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에게서 핵무기와 운반 수단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치였다는 뜻이다.
  • 2016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오바마 대통령과 만난 모습. 둘 중 누가 더 한국에 도움이 될까.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6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 오바마 대통령과 만난 모습. 둘 중 누가 더 한국에 도움이 될까.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럼프 정부와 오바마 정부, 누가 더 한국에 도움이 될까

    트럼프 美대통령의 이란핵협정 탈퇴 선언 이전에는 존 케리 前국무장관이 미국 곳곳과 이란, 유럽 등을 돌며 이란핵협정의 우수성과 정당성, 합리성을 주장했고, 직전에는 조 바이든 前부통령이 “미국이 이란핵협정에서 탈퇴하면 국제적 리더십과 신뢰도를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탈퇴 선언 직후에는 버락 오바마 前대통령이 “트럼프의 결정은 심각한 실수”라며 “중동에서 새로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부 ‘反트럼프 언론들’은 이런 오바마 정부 관계자들의 주장을 반복해 보도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세계대전에 몰아넣은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모습이다.

    오바마 정부 관계자들은 진심으로 이란핵협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자신들의 과오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걸까. 이들에게 거짓말 테스트를 한 것은 아니라 사실 확인은 어렵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 시절에 일어난 일을 떠올려 보면 이들이 ‘다른 정치적 이유’ 때문에 미국의 국가안보를 희생했다는 짐작은 할 수 있다.

    2009년 1월 오바마 정부가 출범한 뒤 2017년 1월 문을 닫을 때까지 미국은 리비아에서 현직 대사가 살해당하고, 테러조직 ISIS가 이라크와 시리아를 휩쓸면서 수만 명을 학살하고 난민 수백만 명을 만들어 내는 환경을 허용했다. 또한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무대응 정책’을 펼치면서 지금과 같은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걸프협력회의 회원국에 레바논 헤즈볼라, 이란 혁명수비대까지 끼어든 예멘 내전과 시리아 내전도 미국이 초기에 적극 나섰다면 진화할 수 있었던 분쟁이라는 평가들이 나온다.

    오바마 정부는 이런 일에 대해 끼어들지 않는 대신 국제사회에서, 특히 세계 진보진영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미국인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전통적인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도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국이나 동유럽 국가,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 북한, 러시아, 중국의 위협 때문에 불안에 떨어야 했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출범 전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주장했고,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국익 증진과 자국민 보호라고 외치며,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들을 제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을 가하는 일, 이란핵협정에서 탈퇴하는 일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정책 추진 과정과 일처리가 투박해 불안한 면이 보인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능력 제거, 중국의 일방적인 패권주의와 통상압력에 반발하는 것 등은 한국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책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를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며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아무튼 ‘제네바 합의’와 같은 이란핵협정을 깨버림으로써 美北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을 더욱 압박할 수 있게 된 점은 한국에게도 결과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