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로 사기 혐의 벗은 조영남, 출판·전시 활동 기지개고희 넘긴 나이에 '인생 2막' 활짝‥ "국가 덕분에 '공인 화가' 됐어요"
  • "솔직히 감옥 갈 준비까지 했었어요."

    지난 25일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그림 대작(代作)' 사기 혐의를 벗은 가수 조영남(76·사진)은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감옥에 갈 마음의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며 "물론 당연히 무죄가 나올 걸로 예상했지만 최악의 상황도 가정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조영남은 "문화심리학자인 김정운 박사와 절친인데, 나한테 (우스갯소리로) '형은 감옥에 갔다와야 더 유명해진다'는 말을 곧잘 했다"면서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 그럼 기꺼이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조영남은 자신에게 무죄를 선고한 대법원 판결은 한국의 현대미술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라며 "타성에 젖어 있던 미술계에 경종을 울리는 좋은 판례가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나를 위해서 수고를 참 많이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나를 일반 가수에서 멋있는 화가로 승격시켜줬다. 오늘로써 나는 공인 화가가 됐다"고 말했다.

    "미대 안 나와도 화가 될 수 있어"


    조영남은 지난달 열린 대법원 공개변론 때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왔던 분이 '화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하고 미술 단체에 소속돼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시대에 굉장히 뒤떨어진 얘기라며 세계적으로 미술대학을 안 나온 위대한 화가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그 유명한 앙리 루소도 전문적인 미술 교육도 받지 않고, 파리 세관에서 세관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림을 그리다가 화가가 됐어요. 화가 김구림도 미대를 자퇴해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하신 분이고요. 무슨 대학을 나오고 협회증이 있어야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가수로 활동하면서도 서울·부산·베이징·뉴욕·LA 등 세계 각지에서 40회 남짓 전시회를 열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온 조영남은 이제 자신을 '트로트파(派)'의 기수이자 창시자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트로트가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장르이듯이 자신이 그린 '화투 그림' 역시 누가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아주 쉽고 대중적인 작품이라는 이야기다.

    "현대미술은 한참 봐도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아리송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내 그림은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어요. 전혀 복잡하지 않고 아주 쉬워요. 나는 아예 제목을 적어버리거든. 이게 이런 그림이라고. 그래서 '트로트파'란 이름을 붙여봤어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맞아 '온라인 전시회'도 고려"


    재판을 거듭하며 사람들이 현대미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조영남은 사람들이 최대한 쉽게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썼다고 말했다. 2007년 발간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에 이은 두 번째 현대미술 해설서다.

    "예전에 미술을 독학하면서 내가 현대미술을 꿰뚫었다, 통달했다는 순간이 와서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이 책을 좀 어렵게 쓴 것 같아 이번엔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현대미술에 관한 책을 내게 됐어요."

    5년 전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후부터 대외 활동을 중단했던 조영남은 그동안 집에서 그려놓은 수백점의 그림을 추려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 윤갤러리 등과 일정을 조율 중인데 코로나19 때문에 아직 날짜는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전히 2G폰을 쓸 정도로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조영남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조심스럽게 변화를 모색 중이다. 가수들의 언택트 공연처럼 온라인 전시를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는 기자의 말에 "좋다"고 화답했다.

    "그런 방법이 제시된다면 해야죠. Why not?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다음은 일문일답.

    - 통화 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주 전화가 불이 났었어요. 이젠 좀 잠잠해졌네.

    - 만약 유죄 판결이 나왔다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감옥 갈 준비는 다 해놨었어요. 일종의 마음의 준비인데, 절친한 김정운 교수 같은 경우는 줄곧 나한테 "형은 감옥에 갔다와야 더 유명해진다"고 말해왔거든요. (웃음) 주변에서 그런 주장을 펴왔기 때문에 기꺼이 가겠다고 생각했죠.

    - 이번 재판에서 대법원이 미술에 대해 상당히 열린 시각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결국 현대미술이, 한국의 현대미술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준 거죠. 현대미술이 전망도 좋다는 것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동안 우리 미술계가 지지부진했었잖아요. 일종의 경종을 울려줬고, 좋은 판례가 됐어요. 그 점에서는 재판부가 참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특히 국가가 나를 위해서 수고를 참 많이했구나라는 생각했습니다. 나를 일반 가수에서 멋있는 화가로 승격시켜줬잖아요. 오늘로써 나는 공인 화가가 됐어요.

    - 지난 대법원 공개변론 때 검찰 측 참고인으로 나왔던 신제남 한국전업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께서 "화가로 인정받기 위해선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하고 미술 단체에 소속돼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었는데요.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세계적으로 미대 안 나온 위대한 화가들이 많아요. 그 유명한 앙리 루소도 세관원 출신이고, 김구림도 미대를 자퇴해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어요. 앞서 미술가협회 자문위원장께서 말씀하신 얘기는 시대에 굉장히 뒤떨어진 얘기예요. 미술과 음악은 아트이기 때문에 특별한 교육이 없어도 할 수 있어요. 무슨 대학을 나오고 협회증이 있어야 화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 당시 신 자문위원장께서 "액자를 끼웠다는 건 그 그림이 이미 완성됐다는 것인데, 조영남은 이젤 위에 액자를 꽂은 상태로 덧칠 등의 작업을 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였다"며 "그런 상태에서 손을 봤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셨거든요. 이런 지적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말이죠. (웃음) 너무 웃기는 얘기인데. 화가마다 취향이 다른 것이지 맞다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액자도 미술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그건 자유에요. 그런 룰이 어디있어요? 그림을 그린 후에 반드시 액자를 끼워야 된다는 법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발상이죠. 내 그림에는 다 액자 틀이 끼워져 있어요. 저는 액자도 캔버스의 일부라는 뜻으로 그렇게 작업해요. 그러한 주장들이 역설적으로 나를 살렸다고 봐요.

    - 전시회를 열 계획은 있으신가요?
     
    ▲계획은 있는데 코로나가 심해서…. 이걸 언제 어떻게 하느냐가 제일 고민이에요.

    - 가요계에선 언택트 공연을 많이 합니다. 미술 전시회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런 건 미술이 훨씬 더 여건이 좋다고 봐요. 미술은 워낙 관객수가 적기 때문에, 사실 지금해도 상관은 없다고 생각해요.  

    - 그럼 온라인 전시회도 염두에 두고 계신 건가요?

    ▲물론 할 수 있죠. 그런데 나는 기계를 워낙 좋아하지 않아서…. 내 전화도 2G폰이잖아.

    - 그래도 코로나 시대에는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방법이 제시된다면 해야죠. Why not? 좋은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 축하전화를 많이 받으셨을텐데. 혹시 진중권 교수하고도 통화하셨나요?

    ▲축하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진 교수하고는 아직 통화를 못했는데, 진 교수가 정말 이번에 부인할 수 없는 큰 공을 세웠어요.

    - 이번 판결에 대해 나름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나를 대중가수에서 화가로 둔갑시켜줬어요. 아주 고맙기 이를 데 없지. 게다가 선고 당일이 6.25잖아요. 그래서 더욱 뜻이 깊어요. 이젠 내가 나이가 들어서 노래도 잘 안 나오는데…, 그러니까 이제 화가나 해라. 뭐 그런 뜻일지도. (웃음)

    - 그동안 작품의 주 테마가 화투였습니다. 혹시 다른 주제를 그릴 생각은 없으신지요?

    ▲다른 주제가 아주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학파 하나를 창설했어요. 미술사를 보면 '추상파', '인상파', '입체파' 같은 게 있잖아요? 나는 '트로트파'야. '트로트파'의 기수이자 창시자가 바로 나라는 거죠. 현대미술은 한참 봐도 이게 뭔가 싶기도 하고, 아리송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어요. 반드시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가능하고. 복잡하죠. 나는 누가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아주 쉽고 대중적인 그림을 그리거든. 그래서 '트로트파'란 이름을 붙여봤어요. 요즘 트롯이 대세잖아요? 이름 참 멋지죠?

    - 학파가 생기려면 제자나 추종자들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아마 추종자들이 있을 거야. 일단 내 그림이 잘 팔려서 사건이 생긴 것 아녜요? 그건 기정사실이니까. 추종자가 매우 많이 생길 거예요. 법원으로부터 확실한 미술품으로 인정을 받았으니까. 물론 제자 양성까지는 힘들어요. 나혼자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 지난번 공개변론 마지막 때 울컥하셨잖아요?

    ▲그건 평생…, 내가 후회하는 대목.

    - 울 타이밍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 글쎄 말이야. 나도 모르게 주책을 부렸어. 5년 동안 마음 속에 한이 서렸던 것 같아요. 그게 나도 모르게 터져나온 거지. 되게 창피해요.

    - 따님하고도 통화하셨어요?

    ▲이래라 저래라 난리 났죠. 요즘엔 딸 덕분에 살고 있어요. 전 국민에게 딸 낳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딸을 낳으면 정말 다른 세상이 열린다는 거지.  

    - 향후 계획 좀 말씀해주세요.

    ▲예전에 내가 미술 책(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을 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재판을 하면서 보니까 여전히 사람들이 미술을 너무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이라는 책을 또 썼어요. 아주 알기 쉽게. 270페이지짜리인데, 이제 곧 출판될 거예요. 출판기념회나 북콘서트를 여는 문제는 출판사와 상의를 해봐야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