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대법원, 검찰 상고 기각… '조영남 무죄' 원심 판결 유지
  • ▲ '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 조영남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그림 대작(代作)' 사건에 연루된 방송인 조영남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공개변론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그림 대작(代作)' 논란에 휘말려 사기 혐의로 기소된 가수 겸 화가 조영남(76)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25일 대법원 제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그림 대작' 사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조영남의 최종심 선고기일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 동종 혐의로 기소된 조영남의 매니저 장OO 씨에 대해서도 무죄를 확정했다.

    재판부는 "애당초 검사가 조영남을 저작권법 위반이 아닌 저작물 사기죄로 기소했고, 사건 피해자들도 이미 '조영남의 작품'으로 인정받고 유통되는 그림들을 구입한 것이었다"며 "미술 작품이 위작 저작권 시비에 휘말리지 않은 이상 기망 행위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미술 작품을 거래할 때 작가의 친작(親作) 여부가 작품 구매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거나 중요한 정보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해당 그림을 조영남의 '친작'으로 착오한 상태에서 구매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원심 판단은 수긍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 "조영남 '그림 대작'은 사기"

    앞서 조영남은 2011년 9월부터 2015년 1월 중순까지 송OO 등 '대작화가' 2명에게 그림을 그리도록 지시하고 자신이 가벼운 덧칠 작업을 가미해 총 17명에게 21점을 판매한 혐의(사기)로 기소됐다.

    조영남의 소속사 대표이자 매니저 장OO씨도 2015년 9월부터 2017년 4월 초까지 총 3명에게 '대작그림' 5점을 판매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조영남과 장씨가 대작그림을 판매해 거둔 수익은 각각 1억5350만원과 268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조영남은 대작화가들로부터 1점당 10만원 꼴로 수백점의 그림들을 사들인 뒤 갤러리에서 높은 가격으로 판매해왔다는 게 검찰의 주장.

    두 사람을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긴 검찰은 2017년 8월 열린 결심 공판에서 각각 징역 1년6개월과 징역 6개월을 구형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재판부(부장판사 이강호 판사)는 2017년 10월 18일 조영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동종 혐의로 재판을 받은 매니저 장씨에게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대작 화가로 조영남의 그림 제작에 참여한 두 사람(송OO·오OO)의 '숙련도'나 '관여 정도' 등을 볼 때 단순 보조작가가 아닌 독립된 작가로 봐야 한다"며 조영남의 그림이 송OO 등의 도움을 받은 뒤로 훨씬 풍부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인 점과, 대작화가들이 독립된 공간에서 능동적인 그림 작업을 해온 점 등을 근거로 내세웠다.

    재판부는 "그런 면에서 구매자들의 '구매 여부'나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대작화가의 관여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조영남에게 피해자(미술품 구매자)들을 속일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화투 소재 그림은 조영남 아이디어… 송씨 등은 보조작가 불과"


    그러나 2심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항소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수영)는 2018년 8월 17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조영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돈을 받고 '대작 그림'을 판 혐의로 집행유예 1년을 받았던 매니저 장씨에게도 동일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조수나 전문 인력을 두고 미술품 제작을 보조하도록 하는 일은 널리 통용되고 있는 추세"라며 "송OO 등은 조영남의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구현한 기술적 보조자일 뿐 독립적인 작가로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한 구매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작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조영남이 보조 작가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 사실을 알았다면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면서 "더욱이 현대 미술 작품의 제작 관행에 비춰봤을 때 작가가 모든 구매자에게 보조 작가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고지할 의무는 없는 만큼, 이를 구매자들을 속인 범죄(기망) 행위로 간주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대작화가가 독자적으로 그림 완성… 조영남은 사인만"


    이 같은 판결에 불복, 상고를 제기한 검찰은 지난달 28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공개변론에서 "조영남이 대작화가가 그린 사실을 구매자들에게 고지하지 않은 것은 사기"라며 조영남의 인터뷰 영상과 각종 그림을 증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그동안 조영남은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은 조수가 한 명도 없고 직접 그림을 그린다고 수차례 말했고 직접 작업하는 모습까지 공개했지만, 사실은 송OO 등 '대작화가'에게 추상적인 아이디어만 주고 거의 완성된 그림을 받아 마치 자기가 그린 작품처럼 팔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작가가 조수를 쓰는 관행이 미술계에 존재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조영남이 대작화가의 존재를 숨긴 채 대작화가에게 대신 그림을 그리게 해 10만원짜리 그림을 1000만원에 판매했다는 게 문제"라며 "이로 인해 재산상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게 검찰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독자적으로 그림을 완성한 송OO은 대작화가라 할 수 있는데, 피해자들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거액을 주고 그림을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른 나라 팝아트 거장들은 모두 자신의 작업실에서 조수들을 감독하며 작업을 진행했고 이 사실을 모두 고지했는데, 조영남은 대작화가를 전혀 공개하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영남, 방송에서 조수와 작업하는 장면 공개"


    조영남의 변호를 맡은 김승남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구매자들에게 물어보면 이들은 조영남이 직접 그렸다는 점 때문에 구입한 게 아니라 화투를 소재로 한 독특한 아이디어에 끌리거나 지인의 추천을 받아 구매한 것"이라며 "구매자들이 착오로 작품을 구매한 것이 아님을 알아달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데미언 허스트의 작품 1400점 중에서 직접 그린 건 25점밖에 없고 오히려 그는 빼어난 실력의 조수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시 여겼다"며 "앤디 워홀 등 다른 유명 현대미술 작가들의 경우를 봐도 '손기술'은 예술의 일부일 뿐, 회화나 그림의 본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조영남은 조수의 존재를 결코 숨기지 않고 오히려 공개했다"며 "2009년 9월 KBS '여유만만'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사실을 알렸고 지인이나 기자들, 갤러리 화구상들에게도 조수의 작업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애당초 구매자들을 착오에 빠뜨리려는 인식 자체가 없었음을 강조한 김 변호사는 "더욱이 조영남은 구매자들의 구매 과정과 현장에도 없어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이라며 조수의 존재를 고지할 의무만 강조하는 고전적 시각을 버릴 것을 촉구했다.

    김 변호사는 조영남을 사기 혐의로 기소한 검찰이 정작 그림을 함께 그린 조수들은 공범으로 인정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그는 "화투 그림 일부를 그린 조수들은 검찰 논리대로라면 사기죄 공범으로 처벌받아야 마땅한 데 기소는커녕 입건되지도 않았다"며 "피고인에 대한 섣부른 예단으로 수사가 진행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이 화투 갖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는데…"


    이날 최후 변론을 위해 장문의 편지까지 준비한 조영남은 "화투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앤디 워홀이 코카콜라 병을 있는 그대로 그려 크게 성공한 것에 착안해 대중적 놀이기구인 화투를 찾아내 팝아트로 옮겨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세밀한 화투를 그리면서 조수도 기용하게 됐고 조수와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TV로도 틈틈이 공개했다"며 "이는 저의 작업 방식을 누구에게나 알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부연했다.

    조영남은 "한양음대는 2학년, 서울음대는 3학년까지 다녔는데 현대미술을 공부하면서 음악과 미술이 실현 방법에서 정반대로 구사된다는 것을 알았다"며 "음악은 엄격한 형식과 규칙을 중요시하지만 현대미술은 문법이 몽땅 해체되고 규칙이나 방식이 사라졌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100% 자유가 있고 창의력에 좌우되는 게 현대미술"이라며 "굳이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되고, 액자를 끼우거나 안 끼우거나 전혀 상관이 없으며 그냥 물감을 뿌리기만 해도 훌륭한 작품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돌연 눈물을 흘린 조영남은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화투를 갖고 놀면 패가망신한다고 했는데 오랫동안 화투를 갖고 놀았나보다. 부디 저의 결백을 가려달라. 고맙다"고 최후 변론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