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 지역 입국금지, 우한폐렴 발병국 오염지역 지정 등 '뒷북' 대처… 의협 "2주 전 했던 얘기"
  • ▲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뉴시스
    ▲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뉴시스
    우한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관련한 정부 대책이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이 아닌 제3국에서 입국하거나 우한에 체류한 적 없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환자에서 제외하는가 하면, 확진자로 분류된 후 부랴부랴 대응지침을 바꾸는 등 '뒷북행정'을 보여주어서다.

    정부가 언론과 의료계가 제기한 문제들을 무시한 결과,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린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우한폐렴'이라는 단어조차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웃지 못할 행태가 현 위기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병원 가도 검사 못 받아… 정부 지침상 의심환자 아니기 때문

    11일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가 발표한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27번 환자(37·여·한국인)는 우한폐렴 증상을 느끼고 선별진료소를 방문했다. 그는 지난 9일 우한폐렴 양성판정을 받으며 확진자로 확인됐다.

    그런데 확진자 확인 나흘 전인 5일, 이 환자는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소재 신천연합병원 선별진료소에 들렀던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나 선별진료소에서는 정부 대응지침에 속하지 않는 증상자라는 이유로 검사하지 않았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지침 제4판'에 따르면, 의심환자는 △후베이성을 다녀온 후 14일 이내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폐렴이 영상의학적으로 확인된 경우다. 27번 환자는 허베이성이 아닌 광둥성에 체류했고, 중국이 아닌 마카오를 경유해 입국했기 때문에 의심환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는 대응지침 제5판이 나와 중국 방문 후 14일 이내에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다면 의심환자로 분류된다. 제5판은 27번 환자가 선별진료소를 다녀가고 이틀이 흐른 뒤인 2월7일부터 시행됐다.

    방역체계의 허점은 입국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지난달 31일 입국한 27번 환자는 마카오에서부터 기침 등의 증상이 있었으나 발열 증세가 없다는 이유로 입국장 검역을 통과했다. 이 과정에서 마카오에서 입국했다는 이유로 건강상태질문서도 제출하지 않은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에는 중국 출발 입국자만 건강상태질문서 제출이 의무였다.

    12번, 16번 환자도 입국 검역 실패

    12번, 16번 환자도 입국 단계에서 잡아내지 못했다. 2명 모두 27번 환자와 마찬가지로 중국이 아닌 제3국 입국자였기 때문이다.

    12번 환자(49·남·중국인)는 관광 가이드로 일본에 체류하다 접촉한 확진자로부터 감염된 사례다. 그는 지난달 19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할 당시 중국 방문력이 없다는 이유로 의심환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발열·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음에도 부천·강릉·군포 일대를 돌아다니며 의료기관·음식점·KTX 등을 이용했다. 

    이 환자가 지난 3일까지 확인된 접촉자는 666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같이 살던 아내(14번 환자)가 감염돼 양성판정을 받았다. 12번 환자와 14번 환자는 각각 지난 1일과 2일 경기도 분당 서울대병원에 격리조치됐다.

    16번 환자(42·여·한국인)는 태국 방콕과 파타야를 여행한 후 지난달 19일 입국했다. 25일 오한 증상이 나타나 27일 광주 21세기병원을 찾아 진료받았다. 그러나 12번 환자와 마찬가지로 중국 방문 이력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의심환자로 분류되지 않았다. 이후 28일 21세기병원에 입원했고, 지난 3일 전남대병원으로 이송됐다. 결국 병원 측의 판단으로 검사했고 우한폐렴 확진자로 드러났다.

    16번 환자의 딸(18번 환자)도 양성판정을 받아 지난 5일 전남대병원에 격리됐다. 18번 환자는 발목을 다쳐 21세기병원에 입원 중이었는데 이때 어머니인 16번 환자의 간호를 받다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 ▲ 우한 폐렴관련 입장문을 낭독중인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뉴시스
    ▲ 우한 폐렴관련 입장문을 낭독중인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 ⓒ뉴시스
    막을 수 있었던 감염도 못 막은 정부

    14번 환자와 18번 환자는 정부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발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12, 16번 환자가 입국 단계에서부터 의심환자로 분류됐으면 자가격리 및 능동감시가 시행됐을 텐데, 제3국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의심환자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2번 환자가 격리된 지난 1일, 사례정의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왔다. 하지만 당시 질본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사례정의 부분을 어떻게 변경할지 계속 논의하는 상황"이라며 "진짜 의심환자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정도의 수준으로 만들어야 가장 적절한 그물망으로 사례정의를 만들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이날 "일본 입국자에서도 환자가 발생하는 등 국내감염 유행성이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의협은 "중국이 아닌 제3국으로부터의 감염과 관리라는 새로운 문제까지 대두했다"며 "해외로부터 신규감염 유입 차단을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은 국가 혹은 지역으로부터의 입국제한 또는 중단과 검역을 강화를 권고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사례정의 또한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 2주 이내의 모든 '중국' 경유자로 변경하라"며 "사례정의가 현실에 맞도록 수정하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뻥 뚫린 방역체계, 뒤늦은 ‘땜질’처방

    한편 정부는 중국 외 홍콩·마카오 등 우한폐렴이 발병한 국가들도 오염지역으로 지정해 검역을 강화한다고 11일 밝혔다. 

    질본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집계에 따르면 홍콩은 사망 1명, 확진자 36명 등 지역사회 감염사례가 확인"됐고 "마카오는 광둥성 인접지역으로 마카오를 경유한 환자 유입 가능성이 높아 검역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오는 12일부터 홍콩·마카오·태국·베트남이 추가되며, 13일에는 일본, 17일 대만·말레이시아가 추가된다. 질본은 이들 국가와 지역에 대한 여행이력 등을 의료기관에 확대제공할 예정이다.

    본지와 통화한 의협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조치는 의협에서 2주 전부터 이야기해왔던 것"이라며 "우리는 (당시부터)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자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염지역 확대는 좋은 일이지만 여전히 중국에서부터의 입국제한조치는 논의되는 것 같지 않아 아쉽다"며 "최초 발원지인 허베이성 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우한폐렴 감염자가 1000명 이상 나오고 있다.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 부분에 대한 논의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