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13일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발표… “실현 가능성 없어” “임금삭감 수단 악용” 노사 모두 '글쎄'
  • ▲ 정부가 노동자의 근속연수와 임금이 같이 오르는 호봉제가 아닌 맡은 업무의 성격이나 강도 등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성과급제(이하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호봉제가 기업의 비용 부담을 늘리고 대·중소기업간 임금 격차 등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뉴시스
    ▲ 정부가 노동자의 근속연수와 임금이 같이 오르는 호봉제가 아닌 맡은 업무의 성격이나 강도 등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성과급제(이하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호봉제가 기업의 비용 부담을 늘리고 대·중소기업간 임금 격차 등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사진은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뉴시스
    정부가 노동자의 근속연수와 임금이 같이 오르는 호봉제가 아닌 맡은 업무의 성격이나 강도 등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성과급제(이하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기로 했다. 저성장과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면서 호봉제가 기업의 비용부담을 늘리고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등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현실성과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을 노사 자율에 맡기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노조 등의 반발이 심해 도입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임서정 고용노동부차관은 1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직무급제 도입을 중심으로 한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매뉴얼을 발표했다. 매뉴얼에는 임금 체계 개편 사례와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하는 이유 등이 담겼다.

    기업체 호봉제 채택비율 2016년 63.7%→2019년 58.7% 하락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일반 기업이 채택한 호봉제는 직급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는 구조다. 일반 사원보다 대리, 대리보다 팀장, 팀장보다 과장이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반면 직무급제는 업무성격과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결정하는 제도다. 비교적 낮은 직급인 사원·대리도 업무 능력을 인정받으면 근속연수나 직급에 상관없이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국내 100인 이상 기업체의 호봉제 채택비율은 2016년부터 매년 낮아진다. 2016년 63.7%→2017년 60.3%→2018년 59.9%→2019년 58.7%다. 하지만 노동부는 "(호봉제가) 감소하고 있으나 여전히 임금체계의 절반 이상이 호봉제이기 때문에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과거 우리나라의 고도성장기에 보편적 임금체계로 자리 잡은 호봉제가 최근 경제구조에서는 부작용을 낳는다고 해석했다. 경제성장률 3% 미만의 저성장세가 매년 지속하는 데다 인구구조 고령화로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상승이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또 최근 기업의 청년 채용 여력이 줄어들고 중·고령자 조기퇴직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호봉제의 부작용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임금체계 개편안이 ‘노동개혁 의지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면책행위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안을 발표했으나 허점이 많고 행동에는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이번 정부 들어 임금피크제를 폐지하는 등 호봉제를 강화하는 행보를 보였는데 갑작스럽게 호봉제를 뜯어고치려 하는 모습을 보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아무래도 (호봉제 폐지가) 노동개혁이라는 방향성은 맞으니 ‘노동개혁에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면책행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말 노동개혁 의지가 있다면 공공기관부터 임금체계 개편을 일괄적으로 실시하고 민간에도 시행하라고 하면 된다”면서 “그러지 않고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니 안 좋은 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김상봉 한성대학교 경제학 교수는 개편안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번에 정부는 임금체계 개편을 주장하면서 8개 분야에 대한 매뉴얼을 발표했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하다”면서 “겨우 8개 분야로 나누겠다는 것은 (임금체계 개편을) 안 하겠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전문가 "임금체계 개편안, 면피용"… 민노총 "노동개악"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직무급제 도입에는 찬성했으나 노조의 반발을 들며 정부의 개편안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대승적 견지에서는 호봉제가 아닌 직무급제의 도입을 찬성하는 편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실패할 것으로 보인다”며 “임금제도 개편은 노사가 합의를 이뤄야 하는 사안인데 양대 노총의 강경한 반대로 요원해 보인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고용부의 임금체계 개편이 개악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노·사·정의 합의를 촉구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안에는 공정한 임금체계 개편의 전제인 대등한 노사관계와 노동자 대표제도의 미비함에 대한 개선책이 제시되지 않아 오히려 사용자 주도의 임금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노총은 깊은 우려를 가지고 있다”며 “사회안전망이 불충분한 우리나라 환경에서 당장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할 경우 노동자의 임금 안정성이 확보될 수 없다”고 성토했다.

    한국노총은 “지난 수십 년간 유지돼온 연공급형 임금체계를 연구기관의 용역 결과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노동부의 지나친 자만”이라며 “우리나라와 같이 수십 년간 대표적 임금체계로 자리잡힌 연공급형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해서는 노·사·정이 충분한 논의 기간을 가지며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직무급제 도입이 임금체계 개악이라고 규탄했다.

    민주노은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도 깎기 위한 임금체계 개악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너무나 많다”며 “정부는 일방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노·정 협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