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증인출석 9차례 불응, 본인 선고도 불출석… 뇌물방조 혐의 2심서 ‘무죄’받아
  •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13일 서울고법 형사3부 심리로 열린 본인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했다. ⓒ정상윤 기자
    ▲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13일 서울고법 형사3부 심리로 열린 본인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했다. ⓒ정상윤 기자
    “김백준이 나타났다.”

    13일 오후, 서울고법에서 기자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렸다. 두문불출하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국정원 특활비 수수와 관련한 자신의 항소심 선고공판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김 전 기획관은 이날 짙은 네이비색 수트를 입고 마스크를 낀 채 아들이 미는 휠체어를 타고 법원에 나왔다. 재판이 진행될 법정 앞에 이른 김 전 기획관은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듯 벽을 보고 대기했다.

    김 전 기획관은 그동안 건강상 이유를 들어 자신의 항소심 공판에 불출석했다. 이날 선고공판은 지난달 4일과 25일 두 차례의 선고기일이 그의 불출석으로 연기된 뒤 세 번째 만에 이뤄졌다.

    두 차례 선고 연기 끝에 이뤄진 김백준 선고공판

    재판이 시작되고 휠체어에 앉아 있던 김 전 기획관은 재판부가 생년월일을 묻자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이내 옆에 있던 아들의 부축을 받아 다시 앉았다. 그동안 재판에 불출석한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이 안 좋아서 멀리서 요양하고 오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이날 김 전 기획관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방조 혐의 등에 대해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김 전 기획관의 뇌물방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국고손실방조 혐의는 단순횡령 혐의로 바꿔 적용한 후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보고 면소판결했다.

    김 전 기획관은 2008년과 2010년 김성호·원세훈 국정원장으로부터 각각 2억원씩 두 차례 총 4억원의 특활비를 받아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전 대통령이 이 사건과 관련해 특수활동비를 받은 것이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이 있다거나 대가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시했다. 이어 “국고손실에 대한 부분은 회계관계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단순횡령죄로 처벌이 돼야 한다고 한 원심의 판단이 적정하다고 보여진다”며 “단순횡령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기 때문에 면소판결한 판단도 정당하다”고 봤다.

    재판부가 판결문을 낭독하는 동안 김 전 기획관은 일절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휠체어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재판이 끝난 뒤 10여 명의 기자가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것이냐’ ‘그동안 불출석한 이유가 무엇이냐’ ’구인장은 받았느냐’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법원을 떠났다.

    항소심도 무죄… 김백준, 재판부 ‘증인신문 없다’고 하자 출석

    이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수수 등 주요 혐의와 관련한 핵심 증인인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재판에 총 아홉 번이나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 김 전 기획관이 이 전 대통령 측의 증인출석 요구를 회피하기 위해 자신의 항소심 공판에도 출석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출석도 지난달 17일 이 전 대통령의 재판부가 ‘김백준에 대한 변호인단의 증인신청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한 뒤 이뤄졌다. 재판부가 김백준의 증인신문을 하지 않겠다고 하자 재판에 출석하는 모양새가 연출된 셈이다.

    이 전 대통령의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이 증인출석을 지속적으로 거부하자 그의 검찰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보고 검찰이 그에 대한 증인신청을 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를 입증하려면 검찰이 직접 그를 찾아 증인신청을 하라는 것이었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을 기소하면서 제출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이 받는 가장 큰 혐의인 삼성 뇌물수수와 다스 자금 횡령 등은 대부분 김 전 기획관과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의 진술을 근거로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 전 기획관의 증인출석을 두고 그동안 검찰과 이 전 대통령 측의 처지가 뒤바뀐 상황”이라며 “그동안 집요하게 법정에 나오는 것을 거부하던 그가 상황이 바뀌자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