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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거대한 이승만' 복원한 '거대한 연구'

원로 학자 유영익 박사 '24년 연구' 결산…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 비전> 출간

입력 2019-08-08 14:07 수정 2019-11-28 06:55

▲ 이승만이 감옥에서 집필하고 미국에서 펴낸 <독립정신>(1910년).ⓒ이화장 제공

'거대한 생애' 뒤에 '거대한 연구'가 있다. 

우남 이승만―. 그를 두고 '거대한 생애'를 이야기한다. 그게 누구든 육중한 무게를 지닌 한 인물의 생애는 각고의 노력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혁명가로서, 지식인으로서, 신앙인으로서, 외교가로서, 전무후무한 혼란기의 리더로서 시대를 꿰뚫어간 이승만의 혼신은 필부의 노력과는 차원을 달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이 필요하다.  

4·19 이후, 그는 나라를 망친 독재자였다. 노욕의 화신이었다. 독재와 노욕의 화신을 건국의 아버지로 일으켜 세우기까지 한 학자의 집요한 연구가 있었다. 잊히고 난도질당한 한 인간의 삶을 복원하려는 집요한 시도가 있었다. ‘거대한 생애’를 가능하게 한 ‘거대한 연구’―. 

한 학자의 몰입에 대해 언급해야 할 시점이다. 올해 83세의 원로학자 유영익이 신간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 비전>을 냈다. 큼지막한 판형의 신간 한 권을 앞에 두고, 우리는 ‘거대한 생애’를 복원한 ‘거대한 연구’에 감탄한다. 

하버드 동양학도서관에서 발견한 책 한 권 <독립정신>

1964년 유영익은 하버드대학교 동양학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발견한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치고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지 4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8세의 젊은 연구자 유영익은 도서관 구석 서가에서 낡은 표지의 <독립정신>을 집어든다. 

패기만만하던 '청년 이승만'의 저술이다. 유영익은 충격을 받는다. 그는 4·19세대다. 그에게도 이승만은 ‘부패하고 무능한 통치자’였다. 사유의 전회(轉回)를 체험한다. 

“그가 20세기 초 한국의 최고 선각자요, 빼어난 문장가임을 깨달았다. 그를 새롭게 평가해야 했다.”

유영익은 결심한다. 이승만을 연구하리라. 하버드 박사학위 논문을 이승만으로 쓰리라. 포기해야 했다. 동양학의 산실이라는 하버드의 동양학도서관이었지만, 이승만 관련 자료 구비 수준은 박약했다.  

▲ '24년 이승만 연구'를 결산하며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을 출간한 유영익 교수.ⓒ청미디어 제공

"유 교수가 '이승만 문서'를 정리해 주시오"

30년이 흐른다. 1994년 겨울, 이화장(梨花莊)으로부터 갑작스런 연락이 온다. 비장됐던 ‘문서’들의 존재를 알리는 연락이었다. 이승만의 양자 이인수 박사가 말했다.

“유 교수가 ‘이승만 문서’들을 정리해 주십시오.”

유영익은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30년의 세월을 궁구해오지 않았나. 대학의 보직을 사임하고 안식년 휴가를 냈다. 이화장 안에 ‘우남사료연구소’를 차렸다. ‘거대한 연구’의 시작이었다. 당시, 30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이승만 문서’의 규모와 실체에 대한 유영익의 스케치를 들어보자.

“방대한 분량에 놀랐다. 내용의 난해함에 어리둥절했다. 천운이었다. 산처럼 쌓인 자료, 한국 근현대사를 망라한 자료들과의 첫 만남에서 터져 나온 경악! 희열!”

‘이승만 문서’는 한글, 국한문, 한문, 영문으로 작성됐다. 10만 장에 달한다. 시간과 사람이 필요했다. 유영익은 문서 일체를 연세대학교로 옮긴다. 자신도 아예 연세대학교로 직장을 옮긴다. 3년 후 연세대학교에 ‘현대한국학연구소’가 차려진다. 

▲ 1946년 돈암장 사진. 그 해 3월 26일 이승만이 생일을 축하하고, 그 전날 한국에 도착한 프란체스카 여사를 환영하기 위해 돈암장에 모인 이승만 지지자들이 함께 했다.ⓒ송현달 선생 소장 사진

"이승만은 동서양 학문에 통달한 천재였다" 

그리고 다시 2019년 여름. 하버드에서 <독립정신>을 만난 지 55년, 이화장으로부터 10만 장의 ‘이승만 문서’를 건네받은 지 25년이다. 이제 막 출간된 400쪽 분량의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 비전>은 ‘거대한 연구’의 결산인 동시에 ‘거대한 생애’에 대한 정통 품평이다. 

“이승만은 동서양 학문에 두루 통달했던 천재였다. 배재학당을 졸업한 1897년부터 호놀룰루에서 서거한 1965년까지 쉬지 않고 조국을 생각한 애국자였다. 고집스럽게 친미외교 독립노선에 집착한 나머지 정견을 달리하는 독립운동가들과 융화화지 못했다. 그들로부터 소외, 배척당하며 수많은 고초를 겪었다.”

▲ 신간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비전>.ⓒ청미디어 제공

빡빡한 실증과 풍부한 사료... '이승만 전기'의 전범   

수십년 축적된 연구의 깊이에 대해 따로 보탤 말이 있겠나. 신간 <이승만의 생애와 건국 비전>은 가외의 미덕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영웅전’이 아니라 ‘실증적 전기’다. 정적(政敵)들에 대한 분석은 예리하고,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건조하다. ‘거대한 생애’에 대한 결과적 감탄은, 책을 채운 실증과 중립과 학자적 양심으로부터 나온다. 빼곡한 사진들 속 인물과 풍경만으로도 한국 근현대사는 부족함 없이 스케치된다. 책을 마감하는 유영익의 몇 마디가 지나치게 소박해 이채롭다.  

“이승만, 그는 세련되지 않았지만 착실한 건국의 비전을 갖춘 인물이었다.”

투박하고 담대한, 그러나 거대한 생애를 통해 유영익이 읽어낸 이승만의 ‘건국 비전’ 역시 간명하기 이를 데 없다. 너무나 간명해 읽는 이의 마음을 간곡하게 찌른다.   

“그의 건국 비전은 한반도에 자유와 평등이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양의 일등국가와 동등한 개명·부강한 기독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한반도에 자유와 평등을―. 조선과 대한민국이 중첩하던, 그 지난하던 19-20세기에, 아니 시대를 막론하고 그 외에 또 무엇이 있겠나. 
청미디어 펴냄, 392쪽, 2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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