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기획 창' 청와대 외압 논란, 갈수록 증폭… KBS 사측 VS 기자들, 외압 행사 여부 두고 '이견' 극명
  • '청와대 외압' 논란을 불러 일으킨 '시사기획 창 - 복마전 태양광 사업' 편이 방영된지 3주일 만에 KBS가 공식 입장을 내놨다. KBS는 8일 배포한 입장문에서 "프로그램의 재방 보류 결정 과정에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며 청와대의 압력을 받아 '복마전 태양광 사업' 편 재방송이 결방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방송 이후 출입기자를 통해 "해당 프로그램의 일부 내용이 잘못돼 정정보도를 신청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달 받았지만, 이는 공식적인 정정보도 요청도 아니고 '외압'을 받은 것도 아니라는 KBS 간부들의 종전 해명과 다를 바 없었다.

    KBS가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이번 사태를 둘러싼 내부 논란이 더욱 과열되는 모습이다. 황상무 전 앵커와 박승규 전 국장 등 11명의 KBS 고참 기자들은 8일 오후 '어설픈 변명 속에 숨어 있는 그림 찾기'란 제목의 성명을 내고 "청와대가 출입기자를 통해 항의하기 이전에 별도의 정정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폈다.

    또한 같은 날 "청와대가 공개 브리핑을 통해 문제제기를 한 것은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절차"라며 사측을 두둔하는 KBS보도본부의 공식 입장이 나오자, 앞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을 직권남용과 방송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KBS공영노동조합(이하 공영노조·위원장 성창경)은 "KBS보도본부가 윤도한 수석실 아래 있는 기구인가? 윤도한 수석이 해야 할 해명과 변명을 왜 KBS가 하고 있느냐"고 비판의 소리를 높였다.

    KBS "청와대 측 항의, 공식 접수한 사실 없어"

    일단 KBS는 '시사기획 창' 방송 직후 청와대가 출입기자를 통해 문제제기를 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공식적으로 정정보도 요청을 한 게 아니므로, 회사 차원에서 청와대의 항의를 공식 접수한 사실은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앞서 양승동 KBS사장이 지난달 26일 열린 정기이사회에서 "윤도한 수석이 사과 및 정정방송을 KBS에 요청했다고 했는데, 그런 접수를 받지 못했다"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

    KBS에 따르면 '시사기획 창' 방송 다음날인 지난달 19일 저녁과 20일 오전, 국민소통수석실 관계자들이 KBS 출입기자에게 "해당 프로그램의 일부 내용이 잘못 됐으니 추후 정정보도를 신청할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방송 전은 물론 본방송 이후 재방 보류 결정을 내리기까지 보도본부의 제작 책임자들은 해당 프로그램과 관련해 청와대 측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직접 받은 바 없다는 게 KBS가 밝힌 팩트였다.

    이 사실은 지난 4일 홍사훈 시사제작국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을 통해서도 재확인된다. 홍 국장은 "지난달 20일 청와대 출입기자를 통해 ▲대통령이 박수를 치고,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제한을 풀자고 했다는 부분 ▲노영민 비서실장 개인사무실로 언급된 부분 ▲사회적경제비서관이 사업을 주도했다는 부분에 대해 청와대가 자료를 취합 중이고, 추후 정정보도를 요청할 예정이라는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홍 국장은 방송 다음날인 지난달 19일 김의철 KBS보도본부장으로부터 "프로그램 곳곳에 비약이 있고,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으며 비판 대상자에 대한 반론도 빠졌다"는 지적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보도본부장 본인이 보기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게이트키핑'이 부실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내용을 '시사기획 창' 기자들과도 공유해달라는 당부를 건넸다는 것.

    홍 국장의 글에 따르면 당시 김 보도본부장은 ▲"'태양광 패널이 저수지 수면을 덮은 비율이 60%인 곳을 보고 대통령이 박수를 쳤다는 전언이 나온 뒤로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 제한 면적을 풀어버리더라'는 최규성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의 발언이 아무런 검증없이 일방적으로 보도됐고 ▲최규성 전 사장과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듯한 내용에 대한 구체적이 설명이 빠져있고 ▲최혁진 사회경제 비서관이 태양광 사업 비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황상무 전 앵커, 박승규 전 국장 등 11명의 KBS 고참 기자들은 지난 8일 올린 성명에서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시정조치를 요구했는데 사흘이 지나도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한 발언을 볼 때, 출입 기자한테서 듣기 전에 정정 요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송 다음날 김 보도본부장이 홍 국장에게 찾아와 '게이트키핑이 안됐다'고 지적한 대목이, ▲20일 청와대가 출입기자를 통해 항의한 내용과 ▲21일 윤도한 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항의한 내용과 대동소이하다는 점에서, 출입 기자를 거치지 않은 다른 경로로 청와대 측 항의가 KBS 측에 전달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

    KBS "심의 결과, 취재과정 문제 발견돼 재방송 취소"

    KBS가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오류'라고 주장한 내용에 대해 제작진의 입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사실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임박한 재방송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부분도 여전히 사내 기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대목이다.

    KBS는 "청와대가 문제를 제기하기 전,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사내 심의에서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했다"며 "KBS 심의실은 해당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하루 전인 6월 17일, 청와대와 관련된 일부 내용에서 연관 관계 등 맥락 설명이 충분치 않고 추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는 심의 결과를 제작진에게 통지한 바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KBS의 한 기자는 지난 8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일 3건의 심의평에도 반론 누락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청와대가 지적한 내용과는 일치하지 않고, '태양광 사업 권력 실세들의 비리를 파헤친 의미 있는 고발 프로'라는 호평이 더 많다"면서 "재방송 취소 결정에는 청와대의 불만 표시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사기획 창'에 대해 이뤄진 심의평가 내용이 KBS가 밝힌 것과는 달리 긍정적이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홍 국장은 청와대 측 '외압' 때문에 재방송 방영을 취소한 게 아니라며 방영 직전 복잡한 내부 사정이 있었음을 밝혔다.

    홍 국장은 "'시사기획 창' 취재기자에게 '대통령께서 박수치는 모습을 본 김OO 농림부 차관이 저수지 태양광 제한면적을 풀자고 말했다'는 얘기가 사실인지 (김 차관 본인에게) 확인했는지를 물었는데, 취재기자가 김OO 차관으로부터 직접 확인을 거쳤는지 여부를 확실하게 밝히지 않아, 편성본부장에게서 재방송 여부에 대한 문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불방' 결정을 내렸다"고 해명했다. 취재기자가 의혹 당사자에 대한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보도에 하자가 있다고 판단해 재방송 방영을 취소했다는 얘기였다.

    공영노조 "윤지오 허위주장 인터뷰는 왜 검증 안하나"

    이와 관련, 공영노조 관계자는 "시사제작국장은 취재기자가 최규성 전 농어촌공사 사장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철저한 검증을 하지 않았고, 이와 관련해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민주당 3선 의원 출신인 최 전 사장의 증언은, 과거 문재인 대통령 후보 선거캠프에서 농어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는 등의 이력 등을 볼 때 충분히 뉴스가치가 있다"며 "인터뷰한 내용까지 다 검증하라고 한다면, 대한민국 장·차관, 대통령이 주장하는 내용도 모두 검증해서 보도해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인터뷰이의 발언을 사전 검증해야 한다면 윤지오 씨가 'KBS뉴스9'에 출연해 고(故) 장자연 씨와 관련한 일방적인 주장을 무려 8분 넘게 방송한 것은 왜 검증하지 않느냐"며 "KBS가 청와대를 보호하기 위해 취재기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몰아세우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KBS보도본부장실이 8일 사내 전자 게시판에 '시사기획 창'과 관련한 추가 Q&A 형식의 글을 올리면서, 과거 세월호 사건 때 당시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살살 보도해 달라'며 부탁했다가 유죄판결을 받은 것과, 이번 윤도한 수석이 브리핑을 통해 KBS에 정정보도와 사과 등을 요구한 것은 다르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KBS와 보도본부장실은 '이정현 당시 수석의 경우는 청와대가 아닌 해경 등에 대한 보도를 잘 해달라는 취지였지만, 이번의 경우는 문재인 대통령과 노영민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들이 보도 대상이었기 때문에 방송 후 공식적으로 반론을 제기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코미디 같은 변명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권력으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지켜야 할 위치에 있는 보도본부장이 왜 윤 수석을 걱정하는 식의 글을 올렸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미디어연대 "윤도한 수석·양승동 KBS사장, 함께 사퇴해야"

    미디어비평 단체인 미디어연대(공동대표 이석우·조맹기·황우섭)는 지난달 18일 방송됐던 KBS '시사기획 창 - 복마전 태양광 사업'에 대한 청와대의 정정보도 요구는 위법적인 외압이라고 해석했다.

    미디어연대는 6일자 성명을 통해 "KBS 수뇌부는 조직적인 거짓말에다 청와대와 연계된 조직적인 방송법 위반과 함께 조직적인 은폐를 진행해 온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며 "KBS 보도국에 대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간섭'을 한 윤 수석은 즉각 사퇴하고 검찰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비판 강도를 높였다.

    미디어연대는 방송 다음날인 6월 19일 김 보도본부장이 홍 국장에게 문제제기를 했다는 사실을 거론, "보도본부장은 방송 다음날 어떻게 그렇게 소상하게도 청와대가 제기할 문제들을 알고 있었고, 재방송 취소 조치는 어떻게 그렇게도 곧이어 결행했느냐"며 "청와대 측 전화를 받은 적이 없고, 청와대 브리핑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껴 재방송 결방 조치를 내렸다는 양승동 KBS사장의 주장도 신뢰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연대는 "설사 청와대 주장이 맞다고 해도 정정보도나 사과방송 요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나 법원의 권한이고, 청와대는 공식 브리핑을 통해 사실 여부를 밝히는 것까지"라며 "양 사장과 김 보도본부장을 비롯한 KBS 집행간부들이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자 한다면 모든 과정을 밝힌 뒤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