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까지 인사동 선화랑서 '진달래-축복' 개인전…디지털 이미지로 생명력 펼쳐
  • 진달래가 바구니에 한 잎 한 잎 떨어져 쌓여가고, 도시의 허공과 황량한 벌판 위에 하늘거리며 흩날린다. 삼성 QLED 패널 속에 디지털 이미지로 펼쳐지는 김정수 화백(64)의 작품들이다. 기존의 평면적인 원화 전시가 아니다. 

    '진달래 화가'로 유명한 김정수 화백의 작품이 미디어아트를 만나 새롭게 태어났다. 오는 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김정수 개인전 '진달래-축복'은 삼성전자 QLED TV를 캔버스로 활용한 9점의 미디어작품과 유화 20점을 선보인다.

    전시에서는 삼성과의 협업으로 새롭게 시도한 영상작품을 처음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작가는 구상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QLED와 더 프레임(The Frame) TV 패널을 이용해 원화의 따스하고 아름다운 진달래 꽃잎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이번 전시는 종이, 캔버스, 벽 위에 작업하는 그림의 고정관념을 깨고 현대 사회상에 어울리는 새로운 형태로 바꿔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책, 영화를 옮기듯 그림도 캔버스에서 TV나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매체로 옮겨 하나의 완전한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최근 선화랑에서 만난 김정수 작가는 "작업하는데 2년 정도 걸렸어요. 지금까지 소수의 애호가들이 평면 작품을 샀다면, 앞으로 일반인들도 쉽게 'TV 그림'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중요한 자리죠. 디지털 매체를 통해 좀 더 많은 작품을 공유해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요."
  • 진달래 연작에서 무엇보다 공을 들인 부분은 꽃잎 고유의 색감 표현으로 QLED와 Frame TV 패널을 통해 잘 담아낼 수 있었다. 김 작가는 가치보장의 불확실성, 무단 복제, 사후 서비스 등의 현실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디지털화 방식이 보통의 회화작품처럼 거래될 수 있는 미디어 작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종이나 연필을 따로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요. 저는 모든 스케치 작업을 삼성 '갤럭시 노트'로 해요. 디지털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캔버스를 대신해 모든 작업의 결과물을 TV 화면에서 재현할 수 있어요."

    김 작가는 20년 이상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봄꽃 진달래를 소재로 작업해오면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유의 색을 찾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아마포(삼베와 아사의 중간) 위에 물감을 바르고 말렸다가 또 덧바르는 반복 과정을 거쳐 진달래 색을 우려낸다.

    "한국 사람들도 진달래와 철쭉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햇볕에 반짝이는 맑고 투명한 진달래 색을 찾기 위해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감을 사용해본 것 같아요. 색이 조금만 진하면 중국인이 선호하는 철쭉이 되고, 색깔이 바래면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벗꽃이 되거든요."
  •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다니다가 1982년 2월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우연히 비디오아트 창시자 고(故) 백남준 화백과의 만남과 조언을 계기로 평면 회화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유명 화랑과 전속계약을 맺을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고, 영주권까지 취득해 10년 가까이 파리에서 생활했다.

    1990년대 초, 한국 초대전 문제로 잠시 귀국하면서 화가로서 두 번째 전환기를 맞는다. "반은 한국인, 반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당시 종로 거리를 걷고 있는데 김수희의 '애모'가 흘러나왔죠.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나는 뼛속 깊이 한국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어요."

    오랜 파리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깊게 고민했다. '한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작업을 하자'고 결심한 이후 시나 소설 등 한국 문학작품을 닥치는 대로 읽었고,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진달래꽃이었다.

    김정수의 연분홍빛 진달래 꽃잎은 유년시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 정을 상징한다. "중학생 시절 문제아였어요. 어느날 어머니가 저를 뒷산에 데리고 가더니 '많이 아프냐. 힘들어도 때가 되면 너도 언젠가 진달래꽃처럼 활짝 필거다'라고 이야기 하셨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했어요."

    "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모든 풍경이 한국적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적 어머니가 퍼주시던 고봉밥을 대소쿠리에 한가득 담은 진달래 꽃잎으로 녹여냈어요. 제 그림을 보고 단 한사람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받길 바래요.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가슴에 와닿고, 힐링이 됐으면 좋겠네요."
  • [사진=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