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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첩활동을 하는 국가 기관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유명무실해진 데 이어 국군 기무사령부까지 사실상 해체 후 재창설 수순을 밟게 됐다.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오후 충남 계룡대 인근 주요 군 시설을 방문한 모습. ⓒ청와대 제공
정부는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당분간 비슷한 기조를 이어가려는 모양새이지만, 국가 안보의 중핵 역할을 하는 기관들이 잇따라 수술대에 오르면서 방첩 기능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기무사 해편…방첩 기능 그대로 둔다지만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3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국군 기무사령부 개혁안으로 기무사의 근본적인 해편(解編)을 언급했다고 밝혔다. 과거·역사적으로 단절된 '새로운 사령부'를 창설하도록 지시했다는게 윤 수석의 설명이다.
윤 수석은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과 새로운 기무사령관에게 기무사 댓글공작 사건, 세월호 민간인 사찰, 그리고 계엄령 문건 작성 등 불법행위 관련자를 원대복귀시키도록 지시했다"며 "또한 신속하게 비군인 감찰실장을 임명하여 조직 내부의 불법과 비리를 철저히 조사하고,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보고받은 기무사 개혁위원회 개혁안과 국방부의 기무사 개혁안을 모두 검토키로 했는데, 기무사 개혁위원회의 안은 ▲현재 사령부 체제를 유지한 개혁 ▲국방부 내 본부 체제로 변경하는 개혁 ▲독립적 외청 형태로 창설 등 3개 안이다. 청와대는 이날 새로운 사령부 창설 준비단과 사령부 설치의 근거규정인 대통령령 제정을 최대한 신속히 추진키로 했다. 사령부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재창설을 언급, 위원회가 제시한 복수의 안을 폭넓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전날 휴가중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로부터 국가안보실을 거쳐 국군기무사령부 개혁위원회와 국방부 장관의 기무사 개혁안 양쪽을 모두 보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무사 개혁안만큼은 꼼꼼히 챙겼다는 이야기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기무가 개혁에 나선 것은 기무사 계엄령의 존재를 청와대가 심각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난 6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무사 문건에 대해) 언론 보도만 보았다"며 "(파악해보거나 진상조사할 계획은) 없었다"고 했지만, 나흘 뒤인 10일에는 문 대통령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 독립수사단을 구성해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할 것을 직접 지시했다. 군의 정치개입 근절이 기무사 개혁의 핵심 아젠다라는 의미다. 이때문인지 새 사령부의 명칭도 기무사를 보안·방첩 임무에 국한한다는 의미로 국군보안방첩사령부, 국군정보지원사령부 등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개편은 군의 방첩기능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새 사령부가 독립적으로 분리되지 않는 구조여서, 정부의 개입이 여전히 가능한 구조여서다. 기무사 개혁위 관계자는 "새 사령부령에는 사령부와 요원들의 임무, 범위 등을 명확히 규정해 자의적으로 부대령을 해석, 마음대로 활동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개입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이야기지만 방첩활동을 폭넓게 해석해 활동하는 것이 어려워 진다는 말로 해석이 가능해 방첩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 힘 잃은 국정원도 '정치와 절연' 가장 앞세워
국가정보원 역시 개혁 바람이 한창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0일 국가정보원을 방문했을 당시 강조된 부분 역시 정치와의 절연을 위한 내부개혁 노력이었다.
국가정보원의 당시 업무보고는 ▲국내정보 부서 폐지 등의 조직개편 ▲위법 소지업무를 원천 차단한다는 취지의 '준법지원관 제도' 도입 ▲직무범위를 벗어나는 부서 설치 금지에 초점이 맞춰졌다. 국정원 본연의 업무인 정보기관으로서 역량강화를 위한 방안이 후순위로 밀린 셈이다.
서훈 국정원장 역시 "(국정원은)1년간 과거의 잘못된 일과 관행을 해소하고 국내정치와의 완전한 절연 및 업무수행체제·조직혁신에 주력해왔다"며 "개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각오로 미래 정보 수요와 환경변화에 대비하는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만들겠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 또한 국정원에 격려와 당부를 담은 메시지를 내면서 "국정원이 적폐의 본산으로 비판받던 기관에서 국민을 위한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며 "국정원을 정치로 오염시키는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국정원의 경우는 문 대통령이 대선 시절 공약한 것 처럼 국내정보 수집 업무의 전면 폐지에 방점이 찍혀있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가 '국정원 명칭 변경과 수사권 이관'을 뼈대로 한 국정원법의 연내 개정을 추진하는 상황이다.
◆ 보수 야권의 반발 "기무사 본연의 기능 역할 흔들릴 수밖에"
청와대가 나서 정보기관들을 다잡는 모습이 계속되자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훗날 교각살우의 안보 자해행위로 판명될 수 있다"며 "기무사를 이렇게 흔들면 기무사 본연의 기능과 역할인 군사보안 및 방첩기능 마저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윤 수석대변인은 "기무사 문건에 대한 특별수사단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격적으로 해체를 지시한 것은 유감"이라며 "대통령의 지시 한마디에 국가안보기관이 해체되는 모습을 보며 무소불위 제왕적 권력의 모습을 본다"고 했다.
이어 "결국 기무사를 해체하기로 미리 결론을 내놓고 국민들을 호도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과정을 진행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무사 개혁은) 특수단의 수사결과를 보고 면밀한 검토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바른미래당의 경우 "계엄 문건 청문회로 기무사 사태의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면서도 "군 기율을 감독하는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나 공작기관으로 활동해온 기무사에 해체에 준하는 전면적 개편은 당연한 조치"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과는 온도차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김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에서 제기하고 있는 노무현 정부 당시 작성됐다는 계엄문건 의혹 역시 확실히 밝혀내야 한다"며 "대통령이 임명된 기무사 특별수사단의 최종수사결과가 발표되기 전에, 갑작스러운 기무사령관 경질이 드루킹 특검의 김경수 지사 의혹을 가리기 위한 국면전환용 정치적 술수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