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내부 이례적인 노무현 묘역 참배에 우려… '김병준=노무현 사람' 인식 강해 정체성 검증 목소리 나와
  •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30일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역이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 찾았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김 비대위원장의 행보를 놓고 '좌클릭 혁신을 구상하는 것 아니냐'며 정체성 문제를 제기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의'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우리 사회가 통합을 위해 가야 한다"며 "힘을 모아서 국가를 새롭게 해 나가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국민 모두가 하나 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방명록에 '모두, 함께 잘사는 나라'라고 쓰기도 했다. 

    그는 봉하마을 참배를 놓고 당내서 '좌클릭'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 대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통합을 향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국당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의 정체성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국당 지도부가 봉하마을을 찾은 것이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 추도일(5월23일)이 아닌 시기에 한국당 계열 당 지도부가 노 전 대통령 묘역을 방문한 것은 2015년 2월 새누리당(한국당 전신) 김무성 대표가 봉하마을을 찾은 게 유일하다. 한국당은 지난 5월 노 전 대통령의 9주기 추도식에도 봉하마을을 찾지 않았다. 

    한국당 소속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지난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비상대책위원회는 노무현 정신을 살리거나, 햇볕정책에 동조하기 위한 '김대중, 노무현 2중대 역할을 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바랍니다"라고 썼다. 

    김 전 지사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수호의 전사가 되기를 바란다"며 "대한민국을 반공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로 건국하고,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고, 한강의 기적으로 칭송 받는 산업혁명을 성공시키고, 민주화를 발전시켜온 대한민국의 정통 주체세력이 바로 자유한국당입니다"라고 했다. 

    이어 "노무현 정신을 따르는 인물을 왜 비대위원장으로 모시자고 했는지 정말 알고 싶다”며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한국당은 절대로 혁신될 수 없다. 미래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2주간의 '허니문 기간'을 끝내고, 본격적인 김병준 검증 및 견제 움직임이 나온 셈이다. 

    현역 의원들도 당 개혁 과정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세력화 움직임을 보였다. 김기선·김도읍·박대출·박맹우·윤영석·이완영·정용기 등 재선과 강석진·민경욱·박완수·엄용수·이은권·송희경 등 초선들은 지난 주 '통합과 전진'이라는 모임을 구성했다. 새로운 보수 이념을 발굴하고 개혁 방향을 모색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김병준 비대위에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과 전진' 모임에 합류한 한 의원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김 비대위원장의 행보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당분간은 믿고 지켜보려고 한다"며 "다만 당의 정체성과 관련해 신중한 자세를 요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김병준 비대위원장 본인의 구상이나 뜻을 소상히 알 기회가 없었다"며 "좀더 기다려봐야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동의할 수 없는 '혁신 방향'을 들고나올 경우 대규모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비대위원장은 이러한 당내 상황을 인식한 듯 자신이 적은 방명록에 대해 "현충원의 전직 대통령 묘역을 방문했을때와 똑같이 적었다"며 "우리 국민 모두가 정말 다 하나 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고 덧붙였다. 전직 대통령 참배를 위한 것이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한국당 내부에서는 김 비대위원장의 속내를 의심하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어 김 위원장의 정체성을 검증하는 시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성향 논란과 관련 "노무현의 사람이기 때문에 아주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허니문 기간이니 지켜보자"고 했다. 

    학자 출신의 김 위원장이 강도 높은 혁신을 이끌 수 있겠냐는 회의론도 고개를 들었다. 

    한국당 복수의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학자'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당내 지지기반이 없는 김 위원장이 현역 의원들을 대상으로 자기 뜻대로 당을 이끌어나가기는 역부족이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놨다. 

    한국당 한 의원은 "비대위 성공 여부는 당 조직장악 능력이 핵심인데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학자 출신이지 않으냐"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김병준 의원은 먹물이다"며 학자 출신인 점을 부각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체성 논란'을 종식하고 김 위원장에게 초반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김병준 외에 대안이 없지 않으냐"며 "당 내부에는 (개혁을 이끌 사람이) 더 없다. 믿어봐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