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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올 하반기 첫 현장방문 일정으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규제혁신'을 강조했다. 규제혁신을 통해 주춤하는 경제지표의 돌파구로 활용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를 방문해 의료기기 규제혁신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이날 소아당뇨를 앓고 이는 정소명 군의 어머니의 사례를 들어가며 "안전성이 확보된 의료기기는 보다 신속하게 시장에 진입하고 활용될 수 있도록 규제의 벽을 대폭 낮추고, 시장 진입에 소요되는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소명 군의 어머니 김미영씨는 소아당뇨를 앓고 있는 아들을 위해 기존 혈당 측정기보다 나은 혈당 측정기를 수입하고 스마트폰으로 연동되도록 개선했으나 무허가 의료기기 하드웨어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식약처로부터 고발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현장 연설에서 "안전성이 확보된 체외진단 기기에 대해서는 절차를 간소화하고, 단계적으로는 사후평가로 전환하는 포과적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겠다"며 "체외진단기 제도를 도입해 시장 진입에 1년 이상 소요되던 것이 80일 이내로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규제개혁이 쉽지 않은 분야이지만 의료기기 산업에서 규제혁신을 이뤄내면 다른 분야의 규제혁신도 활기를 띌 것"이라고 했다. 규제개혁이 의료기기 분야에 국한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셈이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불공단 전봇대 뽑기'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규제개혁 정책은 사실 역대 정부에서 경제 활성화를 견인하기 위해 내세웠던 '단골 메뉴' 중의 하나다. 김영삼 정부는 규제실명체를 처음으로 도입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만에 직속으로 규제개혁위원회를 신설해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노무현 정부도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개혁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1월 당선 직후인 인수위원회 회의서부터 규제개혁을 가장 먼저 강조했다. 당시 이전 대통령은 "대불공단에서 대형 트레일러가 커브길 옆 전봇대 때문에 제대로 운행할 수 없다는 기업들의 민원을 지자체와 정부가 몇 달째 묵살했다"며 규제 완화를 강도 높게 주문했다. 이후 '전봇대 뽑기'는 이명박 정부의 불합리한 규제의 상징으로 대변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대기업집단 지정기준 상향, 국제회계기준 조기도입 등 여러 분야에서 규제완화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세계은행은 기업환경평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기업환경을 30위에서 23위로 상향 평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세세한 규제까지 챙기기는 쉽지 않았다.
◆ 박근혜 전 대통령 "규제는 '손톱밑 가시'"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를 '손톤 밑 가시'로 비유하며 '규제개혁 1호' 사업으로 푸드트력의 합법화를 추진했다. 그간 푸드트럭은 자동차 구조 변경과 식품 판매 허가, 두 가지 측면에서 규제를 받아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4년 3월부터 청년 창업을 위한 규제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푸드트럭'의 합법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노력했다.하지만 같은해까지 유원 시설 등에 대한 푸드트럭 영업신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었다. 각 지자체가 입지를 검토한 후 선정해야 하지만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국내 온라인 공인인증서 시스템도 규제개혁 대상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2014년 3월 열린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최근 한국에서 방영된 드라마가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액세서리나 잡화 등의 인기가 치솟았다"며 "이들이 한국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와 물건을 사려 해도 공인인증서 문제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 규제는 올해 초에 들어서야 사설인증서와 경쟁을 유도한다는 차원에서 폐지 수순을 밟기로 결정됐다.국회를 통한 입법 논의 역시 쉽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서비스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법 등 규제완화를 위한 5개의 법안을 지정해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김무성 전 대표는 19대 국회 전반에 걸쳐 야당인 민주당에 법안 통과를 호소했으나 민주당의 강력한 반대로 결국 법안이 처리되지 못했다.◆ "없어지는 규제보다 같은 기간 새로 생기는 규제가 더 많다"
혁대 정부가 추진한 규제개혁 정책은 대부분 구호로만 그쳤다. 규제개혁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없어지는 규제만큼이나 새로 생기는 규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통계를 봐도 정권이 바뀌면서 규제는 점점 늘어만 갔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본지 기자에 "규제를 없애는 것 만큼이나 같은 기간 새로 생기는 규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날이 갈수록 발의되고 처리되는 법률안이 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결국 대부분 새로운 규제를 생산한 것"이라며 "새로 도입되는 규제를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실제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18일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등 정부부처에 '혁신성장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한 중견기업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규제 입법 심사를 강화하고, 신산업 분야 규제 샌드박스 도입 등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